[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마태 12,46-50)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했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이다.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성모님께서 세 살 되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쳤다고 전해 온다. 이날은 본디 6세기 중엽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모 성당의 봉헌을 기념하는 날이었으나,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즈카르야 예언자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께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고 말한다. (즈카 2,14-17)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너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화답송 루카 1,46ㄴ-47.48-49.50-51.52-53.54-55
◎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 ◎
○ 그분은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셨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
○ 그분 자비는 세세 대대로, 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라. 그분은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네. ◎
○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셨네.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네. ◎
○ 당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돌보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그분의 자비 영원하리라. ◎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당신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신다. (마태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제1독서 (즈카2,14-17)
"딸 시온아,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0)
즈카리야서 2장 10절 이하 13절에서는 주님께서 선민과 함께 할 것과 선민과 예루살렘의 회복 및 주님께서 임재할 것이 예언된다.
그 가운데 서두에 나오는 10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징계가 다 끝나고, 그들과 하느님이 원래 처음 맺었던 계약의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을 암시하는 예언이다.
여기서 '시온의 딸'로 번역된 '치욘 빠트'(tsiyon bath; o daughter of zion)는 구약의 관점에서는 예루살렘 성읍의 거주민들을 지칭하고, 신약의 관점에서는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
많은 주석가들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해 준 메시지 안에(루카 1,28. 30.31~33. 49. 54~55) 선민이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환한 후에 예언자 즈카리야(즈카 2,14-15; 9,9-10), 스바니아(스바 3,14-17), 요엘(요엘 2,21-27)이 '시온의 딸' 즉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신탁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사건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도시('시온의 딸'이라 불리우는 도시)는 약속의 땅에 거주하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기뻐하라는 초대를 받는다.
그토록 기뻐해야 하는 동기는 유배의 어두운 시기 가 지난 후, 하느님께서 재건된 성전 안, 성도 한 가운데에 거처하러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 있다. 두려움에 떨 이유가 전혀 없다.
실제로 주님께서 그들의 왕이고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실제로 마리아를 '시온의 딸'로 묘사하려 하였다. 복음사가의 눈에 동정녀 마리아는 자신의 인격안에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백성을 종합한다.
온 이스라엘이 동정녀 마리아안에 총괄된다. 동정녀 마리아야말로 이스라엘을 가장 훌륭하게 나타낸다. 나자렛의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앞서 실현하셨다(루카1,49ㄱ.54-55참조).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이유 접속사 '키'(ki; for)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시온의 딸이 노래하고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새 성경에 단순히 '정녕 내가'로 번역된 '힌니'(hinni)는 문자적으로 '보라 내가'라는 의미이며, 이 예언을 읽는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표현이다.
장차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에 머무를 것이다.
'머무르리라'에 해당하는 '웨샤카느티'(weshakanthi; i will dwell)의 원형 '샤칸'(shakan)은 어원상 여행자가 장막을 쳐서 머무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창세9,27; 탈출25,8; 여호18,1).
본문에서 이 단어는 단지 얼마 동안 임시적으로 머문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장막을 치시고,그들과 함께 거처할 것임을 나타낸다.
희랍어 구약 성경 번역본인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카타스케노소'(kataskenoso)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장차 종말의 날에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 하느님께서 친히 장막을 치시고, 그의 구원받은 백성들과 거처하실 것을 예언하는 묵시록 21장 3절의 내용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예언이 종말론적 성취를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묵시21,3)
한편 하느님께서 당신백성과 함께 거처하신다는 표현은 애초에 히브리 민족을 계약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 베푸셨던 계약의 본질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과 함께 거처하시고,그들은 주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계약의 기본 내용이었다(탈출6,7; 레위 26,12).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의 효력을 결코 중단하거나 계약을 폐기하시는 법이 없다.
비록 바빌론에 의한 멸망과 성전의 파괴로 인해 그 계약의 중단되는 듯이 보였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다시 고향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고,성전 역시 재건하게 하셨다.
그리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근거로 세워진 교회를 통해 계약의 백성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게 하셨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의 백성들 가운데에 친히 임재하셔서 그들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그들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이러한 계약은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이다.
성모님께서 원죄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했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원래 자식이 없었는데,자식을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하느님께서 점지해 주시면, 다시 바치겠다는 약속을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가 지키신 것이다.
세살이 되던 해에 성모님을 성전에 바쳤는데, 성모님께서는 그날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다시 자발적으로 되돌려 드리며 평생 동정 서약을 하신 것이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복음(마태12,46~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50)
여기서 '실행하는 사람이'로 번역된 '포이에세 ~ 아우토스'(poiese ~autos; dose ~ the same)는 '실행하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바로 그 당사자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다.
'포이에세'(poiese)의 원형 '포이에오'(poieo)는 어떠한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거나 존재하는 물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인데, 여기서는 '내 아버지의 뜻'을 목적어로 취하고 있기에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여기서 '포이에오'(poieo)는 '~하는 자는 누구든지'를 뜻하는 '호스티스 안'(hostis an; whoever)과 함께 가정법으로 쓰여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만 하면 누구든지'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바로 그 조건이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본 문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실행한 것은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하면서 묵묵히 듣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에는 눈에 보이는 행위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결단을 내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로마8,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