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간 월요일]어리석은부자 비유(루카12,13-21)

2019. 10. 21. 오전 4: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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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월요일]어리석은부자 비유(루카12,13-21)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을 믿는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로마 4,20-25)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은 20 불신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져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23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기록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24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을 믿는 우리도 그렇게 인정받을 것입니다.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화답송 루카 1,69-70.71-72.73-75(◎ 68 참조)
◎ 찬미받으소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주님은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우리를 위하여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힘센 구원자를 세워 주셨네.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하셨네. ◎
○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그분은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네. ◎
○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 우리가 원수들의 손에서 풀려나, 아무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게 하셨네. ◎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하시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신다. (루카12,13-21)
그때에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제1독서 (로마4,20-25)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기록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을 믿는 우리도

그렇게 인정받을 것입니다." (23-24)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4장 23-24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적용된 믿음을 통한 의화

하나의 실례이며, 이것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밝힌다.

 

'아브라함만이 아니라'에 해당되는 부분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그러나 그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가 된다.

 

창세기 15장 6절에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의 효력이 아브라함 하나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부정의 부사인 '우크'(uk ;not)가 문장의 맨 앞에 와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혼자만을 위한 것이'에 해당하는 '디 아우톤 모논'(di auton monon)에서

'아우톤'(auton ;him ;그 ;아브라함)을 지배하는 전치사 '디아'(dia)는 목적격을 지배할 때

어떤 일이 생기거나 존재하게 되는 이유를 나타내서 '~때문에',

혹은 '~을 위하여'(for his sake)라는 뜻이 된다.

 

아브라함 이야기가 단지 과거의 역사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원리라는 점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만일 의화의 선포가 아브라함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믿음은 아무 가치나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의 중요성과 가치를 모든 사람에게 알리시고자

하느님께서 세우신 모델인 셈이다.

 

사실 율법을 바라보면 사람은 누구나 절망한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율법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의롭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로마3,20).

 

그러나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 아브라함을 바라볼 때 희망을 가지게 된다.

아브라함의 선례(先例)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인생들이

하느님의 약속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제 로마서 4장 24절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한 의화가 그와 동일하게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적용되어짐을 말하고 있다.

 

'그렇게 인정받을 것입니다'로 번역된 '멜레이 로기제스타이'(mellei logizesthai)에서

'로기제스타이'(logizesthai)'로기조마이'(logizomai) 현재 수동태 부정사이며,

기본 의미는 '계산하다', '평가하다','(계산의 결과로서)생각하다' 등이다.

 

그리고 '멜로'(mello)3인칭 단수 현재 시제인 '멜레이'(mellei)는 여기처럼

현재 부정사와 함께 쓰일 때에는 '~하게 되어 있다', '~할 수밖에 없다',

'확실히 ~할 것이다'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따라서 '멜레이 로기제스타이'는 '(의롭다고)평가될 것이 확실한'이라는 의미이다.

죽은 이를 살리시는 하느님을 믿는 아브라함이 그로부터 의롭게 된 것처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느님을 믿는 신약의 모든 믿는 이들 역시,

반드시 하느님께로부터 의롭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12,13-21)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5)

 

원문에는 '탐욕'(貪慾) 혹은 '탐심'(貪心)이라는 단어가

'플레오넥시아스'(plleoneksias)이다.

 

기본형은 '플레오넥시아'(plleoneksia)인데, '더 많은'이라는 뜻의

'플레이온'(plleion)'가지다'는 뜻의 동사 '에코'(echo)에서 파생된

'엑시아'(eksia)의 합성어이다.

영어로는 'greed','avarice','covetousness'로 번역되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분수에 넘치도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가리킨다.

그런데 복음은 '모든'('파세스'; 'pases'; all) 탐욕을 경계하라고 했으므로,

단순히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도히 욕심을 부리게 되는

세상에 속한 모든 것(금전, 부, 권력, 지식,명성, 쾌락 등등)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하여라'라는 원문의 단어는 '호라테'(horate)로서

특별히 경계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용법으로 쓰였는데, '삼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경계하여라'라는 원문의 단어는 '퓔라세스테'(phyllassesthe)로서

원형 '퓔랏소'(phyllasso) 현재 중간태 명령형이다.

 

여기서 중간태그 결과가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나타낸다.

영어로는 'beware','watch out','be on your guard'로 번역될 수 있다.

 

모든 탐욕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것을 명령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원문은 수시로 마음속에 들어오는 탐욕(탐심)을 물리치는 데

급급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한 것이 애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굳게 막아 지킬 것을 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세상 것들의 한계, 예를 들어 물질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물질이며,

그것을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와 이웃의 선익과 공동선을 위해 올바로 쓰지 못하고

그것의 노예가 되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느님도 영원한 생명(구원)도

잃어버린다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아예 애당초 자신의 분수를 벗어난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한편, 여기서 '생명'으로 번역된 단어는 '죠에'(zoe)인데,

'죠에''죽음'과 대조된 육체적 생명(1코린3,22)과 하느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초자연적 생명'(요한3,15)으로 구분된다.

 

루카 복음 12장 15절의 '생명'은 당연히 후자의 의미이다. 

이 세상의 소유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everlasting life)을 말한다.

이 생명의 속성은 '영원성'(eternity)인데,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영생을 얻을 수 없고 영원한 평화와 기쁨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이야기 하신다.

이 비유는 하느님의 계산법과 인간의 계산법은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에 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탐욕을 부려 더 깊은 지옥에 떨어질 것 같으면,

한마디로, 영원한 생명(구원)을 받기에 삯이 노랄 것 같으면,

그 어리석은 부자가 가진 것을 다 거두어 가버리신다는 말씀이다.

 

'맑은 가난'의 의미를 지닌 '청빈'(淸貧; poverty)

'탐욕'(貪慾)의 글자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청빈''빈'(貧) '조개 패'(貝)'나눌 분'(分)이지만,

'탐욕' '탐'(貪) '조개 패'(貝)'지금(이제) 금'(今)자이다.

 

옛날에는 조개 껍질이 화폐의 구실을 했으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가난(청빈)이며,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더 가지려고, 아니면 더 이상 빼앗기지 않으려고

꼭 움켜잡는(grasp; grip; take hold of; seize)것이 탐욕인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망가뜨리는 탐욕의 병  

 

어떤 사람이 예수께 형제들의 유산분배를 중재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그 사람은 정의를 내세워 재산의 공평한 분배를 예수께 인정받으려 하지만 실은 그 또한 탐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시며 이르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12,15)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믿는 우리도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끌어들이곤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본능 때문에 이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려 드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욕심 때문에 가장 소중한 생명을 망가뜨리고 품위를 손상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하십니다. 

왜 사람들은 탐욕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일까요? 그 까닭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잊고 그분의 힘을 확고히 믿지 않으면 현세 사물과 재물과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지요. 사람들은 세상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거꾸로 살아갑니다. 

사실 재물은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재물은 다양한 형태의 자본으로 작용하는 막강한 권력을 지닙니다. 이제 자본은 정치권력과 언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권력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돈의 우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오늘날 모든 것이 경쟁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놓이게 되면서 힘없는 이는 힘센 자에게 먹히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배척되고 소외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일자리도, 희망도, 현실을 벗어날 방법도 없습니다. 인간을 사용하다가 그냥 버리는 소모품처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53항) 

“우리는 돈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고대의 금송아지에 대한 숭배가 돈에 대한 물신주의라는, 그리고 참다운 인간적 목적이 없는 비인간적인 경제 독재라 는 새롭고도 무자비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인간을 소비욕의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55항) 

우리 모두 인간 사이에 차별과 소외를 불러오는 돈의 우상과 탐욕에 사로잡혀서는 안되겠습니다. 재산은 결코 생명보다 소중할 수 없으며 그것을 보장해 주지도 못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로지 ‘세상 재물 쌓기’에 몰두하여 자신의 미래와 죽음 이후의 삶, 영적 삶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불쌍한 부자가 되지 말아야겠지요.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돈은 봉사해야 하지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복음의 기쁨, 58항) 우리는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재화를 하느님 뜻대로 사용하고 되돌리기 위한 사명을 받은 하느님 나라의 청지기들입니다. 탐욕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을 차지함으로써 영으로 부유한 자가 되어, 재물을 궁핍한 이웃을 돌보고 하느님을 섬기는 데 사용하는 아름다운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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