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목요일]혼인 예복(마태22,1-14)

2019. 8. 22. 오전 4: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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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목요일]혼인 예복(마태22,1-14)


입타는 암몬 자손들을 쳐부수고 돌아와 주님께 서원한 대로 딸을 번제물로 바친다. (판관11,29-39ㄱ)
그 무렵 29 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길앗과 므나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길앗 미츠파로 건너갔다가, 길앗 미츠파를 떠나 암몬 자손들이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30 그때에 입타는 주님께 서원을 하였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31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32 그러고 나서 입타는 암몬 자손들에게 건너가 그들과 싸웠다. 주님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33 그는 아로에르에서 민닛 어귀까지 그들의 성읍 스무 개를, 그리고 아벨 크라밈까지 쳐부수었다.
암몬 자손들에게 그것은 대단히 큰 타격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굴복하였다.
34 입타가 미츠파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의 딸이 손북을 들고 춤을 추면서 그를 맞으러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다. 입타에게 그 아이 말고는 아들도 딸도 없었다.
35 자기 딸을 본 순간 입타는 제 옷을 찢으며 말하였다.

 “아, 내 딸아! 네가 나를 짓눌러 버리는구나. 바로 네가 나를 비탄에 빠뜨리다니! 내가 주님께 내 입으로 약속했는데, 그것을 돌이킬 수는 없단다.”
36 그러자 딸이 입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주님께 직접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원수인 암몬 자손들에게 복수해 주셨으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하십시오.”
37 그러고 나서 딸은 아버지에게 청하였다. “이 한 가지만 저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두 달 동안 말미를 주십시오. 동무들과 함께 길을 떠나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이 몸을 두고 곡을 하렵니다.”
38 입타는 “가거라.” 하면서 딸을 두 달 동안 떠나보냈다. 딸은 동무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자신을 두고 곡을 하였다.
39 두 달 뒤에 딸이 아버지에게 돌아오자, 아버지는 주님께 서원한 대로 딸을 바쳤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에 비길 수 있다며,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고 하신다. (마태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민수기30장...여자의 맹세(어린 소녀의 서원)


연중 제20주간 목요일(판관 11,29-39ㄱ)

주님의 영에 사로잡힌 판관 입타는 암몬 자손과의 한판 승부를 앞두고 서원을 한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때,

저를 맞으러 제 집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30절)

 

주님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셔서 암몬 자손들을 제압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이 손북을 들고 춤추며 그를 맞으러 나온다.

 

옷을 찢으며 비탄에 빠지는 입타~~그는 하느님 앞의 약속(서원)이라 지키고자 하고,

딸도 아버지의 서원을 존중한다.

 

사람을 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던 고대 관습은 후대 예언자들의 비판을 받고 율법에서 금지된다.

 

그러나 우리는 입타의 서원의 정신만은 알아 들어야 한다.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모리야산에서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이사악을 희생제물로 바쳤던

대목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때도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순명하는 태도와 정신을 본 것이지, 생명의 단절은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악 대신에 나무위에 숫양을 마련해 주셨다. 

 

봉헌할 때의 서약은 대죄가 없는 은총 지위에서,

타인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 원의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반드시 서약의 내용은 지켜져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판관 입타에서처럼, 생명의 단절을 가져 오는 무모한 서약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니, 하지 말아야 한다.

 

봉헌과 서약의 정신, 곧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되돌리는 정신은 일상의 삶속에서 사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결심과 서약은 구분해야 한다.

하느님 대전의 서약의 파기는 죄가 되지만, 자신이 자신 앞에 하는 결심의 파기는 죄가 되지 않는다.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다.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3-37참조)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22,1-14)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11~12)

 

마태오 복음 22장 11절은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원문에는 접속사 '데'

(de; and; but)로 시작한다.

 

이것은 여기서부터 또 다른 국면의 사건이 전개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준다.

 

말하자면, 지금부터 임금이 등장하여 임금 중심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임금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부터 잔치가 본격화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인데,

영적으로 천국 잔치의 본격적 시작 시점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통치는 지금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리스도 재림 이후에 있을

본격적인 천국의 잔치에서 예복을 입은 자에게는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날이

될 것이고, 예복을 입지 않은 자에게는 큰 슬픔의 날이 될 것이다.

 

여기서 '예복'으로 번역된 '엔뒤마 가무'(endyma gamu; wedding clothes)

'결혼식 때 입는 옷'을 뜻한다.

 

본래 '엔뒤마'(endyma)'겉옷'이나 '외투'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옷 위에 덧입는 옷이다.

 

유다인들의 혼인 잔치에는 혼주가 나누어 주는 예복을 입어야만 했다.

 

이들에게도 분명히 임금이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창세45,22; 판관14,12).

 

하지만 한 사람이 이 예복을 입지 않은, 너무나 무례하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임금의 잔치 석상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심판의 자리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심판의 날에 입어야 할 예복은 무엇인가?

 

이것은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그리스도를 입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갈라3,27),

자기 육(肉)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대신 성령의 능력을

얻어 입어서(갈라5,22~24) 의로운 행위를 추구하는 삶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묵시19,8).

 

한편,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을 향해 '친구'라고 부르고 있다.

'친구'로 번역된 '헤타이레'(hetaire; friend) '헤타이로스'(hetairos)의 호격이다.

 

'헤타이로스'(hetairos)는 다정한 느낌의 '동료', '동무'를 뜻하기도 하지만(마태11,16),

문책과 심판의 대상을 지칭할 때도 사용된다.

 

포도밭 임자가 품꾼 중에 원망하는 자들을 부를 때 이 단어를 사용했고(마태20,13),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배반하기 위해 오는 유다 이스카리옷을 부를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마태26,50).

 

따라서 여기 본문의 '친구'도 카리옷 사람 유다처럼 거짓으로 하느님의 나라의 공동체 안에

몸붙이고 있으면서도, 의(義)로움을 좇지 않고 악(惡)을 고집하는 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면 무방하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로 번역된 '에피모테'(ephimothe;

was speechless)의 원형 '피모오'(phimoo)'재갈로 입을 막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임금의 질문 앞에 마치 입에 망을 씌운 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임금이 예복을 준비하여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으며, 결국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표현은 최후의 심판 때에 그리스도 예수의 지엄하신 위엄과 그분의 책망으로

말미암아, 악인들이 겪게 될 비참한 운명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016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오늘 복음은 혼인 잔치의 비유와 혼인 예복의 비유를 함께 들려줍니다.
둘째 비유는 본디 독립되어 있었으나
마태오가 중요한 교육 목적을 갖고서 덧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그를 밖으로 쫓아 버립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하늘 나라에 대한 보편적인 초대가 일으킬 수 있는 오류를 피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자유롭게 부름을 받은 이들은 유다인들이든
이방인들이든 구원의 그릇된 확신에 빠지면 안 됩니다.
심판 때에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
죄인들과 함께하신 행위를 정당화하시려고 당신을 비난하는 이들과 원수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기쁜 소식의 비유’이기도 하지만, 심판이라는 면에서
‘위기의 비유’인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무관심과 자만으로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무한하게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마태오는 초기 공동체들, 곧 개종한 이교인들로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구체적인 상황에 맞서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새 백성은 옛 백성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망가뜨리는 암담한 상황이 아니라
일찍이 얻은 명예에 만족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임금이 요구하는 혼인 예복은 마음의 회개를 통한 삶의 변화,
곧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새 인간의 옷으로,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으라는(에페 4,23-24 참조) 권고입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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