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 주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인 1월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 일치 주간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와 개신교(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가 공동으로 준비한 ‘일치 주간 기도문’을 전 세계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공동으로 바치게 되어, 한국의 교회 일치 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일치 주간을 맞으며, 이 기간(18-25일)에는 ‘오늘의 묵상’에 이어,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에서 제공한 ‘일치 주간의 묵상’도 함께 싣는다.
특별히 올해 일치 주간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와 개신교(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가 공동으로 준비한 ‘일치 주간 기도문’을 전 세계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공동으로 바치게 되어, 한국의 교회 일치 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일치 주간을 맞으며, 이 기간(18-25일)에는 ‘오늘의 묵상’에 이어,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에서 제공한 ‘일치 주간의 묵상’도 함께 싣는다.
일치 주간의 묵상 - 1일째
우리는 누구나 첫 만남과 첫 경험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예수님과 첫 만남을 가졌던 장소와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교회 안에서 세례성사로 하나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함께 고백합니다.
일치 주간의 첫날인 오늘은 갈라진 우리의 현실에 대한 성찰로 시작합니다. 민족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교회마저 갈라진 채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분명히 분열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현실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복음적 증언 능력에 막대한 손상을 입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십자가 안에서 끌어안으시는 하느님과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친교의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서로가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대화와 공동 증언, 선교의 노력을 기울일 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일치시키시고, 반목과 질시로 얼룩진 우리를 서로 화해시켜 주실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며 그 구원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화해시켜 주시고자 하시니, 갈라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일치를 위하여 일하고 기도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한 형제자매라는 것을 체험하게 하시고, 주님 손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아멘.”
우리는 누구나 첫 만남과 첫 경험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예수님과 첫 만남을 가졌던 장소와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교회 안에서 세례성사로 하나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함께 고백합니다.
일치 주간의 첫날인 오늘은 갈라진 우리의 현실에 대한 성찰로 시작합니다. 민족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교회마저 갈라진 채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분명히 분열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현실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복음적 증언 능력에 막대한 손상을 입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십자가 안에서 끌어안으시는 하느님과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친교의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서로가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대화와 공동 증언, 선교의 노력을 기울일 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일치시키시고, 반목과 질시로 얼룩진 우리를 서로 화해시켜 주실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며 그 구원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화해시켜 주시고자 하시니, 갈라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일치를 위하여 일하고 기도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한 형제자매라는 것을 체험하게 하시고, 주님 손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아멘.”
일치 주간의 묵상 - 2일째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우리가 즐겨 쓰는 성경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겪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현실 앞에서 하루빨리 하느님께서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아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폭력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치유되지 않은 분열의 결과이며, 우리 삶의 참토대를 회복하지 못하게 하는 인간적 오만의 결과입니다.
일치 주간 2일째인 오늘은 전쟁과 폭력으로 분열된 이 세상에 맞선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소명을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과연 이 땅에 전쟁과 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신”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비폭력 원리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창조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모순처럼 여겨지지만 십자가의 역설의 신비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선포할 때 온갖 형태의 전쟁과 폭력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용기를 하느님에게서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용기와 희망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으시는 하느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주님, 온 인류의 일치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바치신 주님께 이기주의와 교만, 허영과 분노로 일그러진 저희 인간 본성을 바치나이다. 온갖 폭력과 분노와 증오로 고통 받는 억눌린 이들, 그릇된 신념과 이념 대결의 희생자들을 저버리지 마소서.
주님, 주님의 백성을 자애로이 굽어보시고 돌보시어, 저희가 주님 창조 질서에 없어서는 아니 될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또한 저희 인간의 정의보다는 주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협력하며, 이웃의 어깨 위에 저희 십자가를 지우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그들을 돕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 저희가 저희 원수들을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소서. 아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우리가 즐겨 쓰는 성경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겪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현실 앞에서 하루빨리 하느님께서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아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폭력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치유되지 않은 분열의 결과이며, 우리 삶의 참토대를 회복하지 못하게 하는 인간적 오만의 결과입니다.
일치 주간 2일째인 오늘은 전쟁과 폭력으로 분열된 이 세상에 맞선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소명을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과연 이 땅에 전쟁과 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신”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비폭력 원리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창조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모순처럼 여겨지지만 십자가의 역설의 신비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선포할 때 온갖 형태의 전쟁과 폭력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용기를 하느님에게서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용기와 희망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으시는 하느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주님, 온 인류의 일치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바치신 주님께 이기주의와 교만, 허영과 분노로 일그러진 저희 인간 본성을 바치나이다. 온갖 폭력과 분노와 증오로 고통 받는 억눌린 이들, 그릇된 신념과 이념 대결의 희생자들을 저버리지 마소서.
주님, 주님의 백성을 자애로이 굽어보시고 돌보시어, 저희가 주님 창조 질서에 없어서는 아니 될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또한 저희 인간의 정의보다는 주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협력하며, 이웃의 어깨 위에 저희 십자가를 지우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그들을 돕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 저희가 저희 원수들을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소서. 아멘.”
일치 주간의 묵상 - 3일째
유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율법의 준수는,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장 중요한 삶의 토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 준수의 본래 의미를 잊고 율법 자체를 신성시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탓하십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분명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치 주간 3일째인 오늘은 세상의 논리로 복음의 논리를 폄하하려는 온갖 형태의 경제적 불의와 가난에 맞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소명을 상기시킵니다. 오늘날의 경제 위기는 경제 체제의 모순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있습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자신의 재화에 대해 감사하면서 이웃들과 나누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인생의 목표이자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리의 탐욕에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율법 정신보다 율법 자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재화의 축복 역시 하느님께로 되돌릴 수 있을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가난한 이를 외면한 채 교회의 외적 성장에 매달린다면 결코 참된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로 거듭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의의 하느님, 이 세상에는 먹을 것이 넘쳐 나는 곳도 있지만, 먹을 것이 없어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병들어 가는 곳도 있습니다.
평화의 하느님, 이 세상에는 폭력과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도 있지만, 전쟁과 폭력 때문에 강제로 자기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된 이들도 있습니다.
자비의 하느님, 저희가 돈만으로는 살 수 없고 하느님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서는 저희가 생명을 얻고 참된 번영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유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율법의 준수는,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장 중요한 삶의 토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 준수의 본래 의미를 잊고 율법 자체를 신성시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탓하십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분명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치 주간 3일째인 오늘은 세상의 논리로 복음의 논리를 폄하하려는 온갖 형태의 경제적 불의와 가난에 맞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소명을 상기시킵니다. 오늘날의 경제 위기는 경제 체제의 모순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있습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자신의 재화에 대해 감사하면서 이웃들과 나누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인생의 목표이자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리의 탐욕에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율법 정신보다 율법 자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재화의 축복 역시 하느님께로 되돌릴 수 있을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가난한 이를 외면한 채 교회의 외적 성장에 매달린다면 결코 참된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로 거듭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의의 하느님, 이 세상에는 먹을 것이 넘쳐 나는 곳도 있지만, 먹을 것이 없어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병들어 가는 곳도 있습니다.
평화의 하느님, 이 세상에는 폭력과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도 있지만, 전쟁과 폭력 때문에 강제로 자기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된 이들도 있습니다.
자비의 하느님, 저희가 돈만으로는 살 수 없고 하느님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서는 저희가 생명을 얻고 참된 번영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일치 주간의 묵상 - 4일째
휴일이 되면 사람들이 답답한 도심의 매연을 벗어나 대자연 속으로 되돌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 서구 사회가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왔기에 인간의 유복한 삶을 위해 자연은 철저히 파괴되고 훼손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의 환경 위기는 인간 생존의 위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당장 지구의 미래가 걱정되는 현실입니다.
일치 주간 4일째인 오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목소리로 환경 위기에 맞설 것을 요청합니다. 오늘의 인류는, 무서울 정도로 급속한 환경 파괴와 생물의 종들의 소멸로 말미암은 ‘피조물의 탄식’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환경 재앙 속에서 병들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치유는,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해도 되는지의 자가당착의 논리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창조 질서를 보전해야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긴급한 소명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더 이상 피조물의 착취자가 아니라 피조물에게 축복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태초에 인류에게 맡기신 소명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는 병든 세상에 참된 치유자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함께 보전하는 시대의 소명에 함께 응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저희 창조주 하느님, 하느님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던 이 세상에서, 오늘날 죽음을 퍼뜨리고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저희가 저희 욕심을 뉘우치고, 다 함께 하느님의 피조물을 보호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돌보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휴일이 되면 사람들이 답답한 도심의 매연을 벗어나 대자연 속으로 되돌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 서구 사회가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왔기에 인간의 유복한 삶을 위해 자연은 철저히 파괴되고 훼손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의 환경 위기는 인간 생존의 위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당장 지구의 미래가 걱정되는 현실입니다.
일치 주간 4일째인 오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목소리로 환경 위기에 맞설 것을 요청합니다. 오늘의 인류는, 무서울 정도로 급속한 환경 파괴와 생물의 종들의 소멸로 말미암은 ‘피조물의 탄식’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환경 재앙 속에서 병들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치유는,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해도 되는지의 자가당착의 논리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창조 질서를 보전해야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긴급한 소명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더 이상 피조물의 착취자가 아니라 피조물에게 축복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태초에 인류에게 맡기신 소명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는 병든 세상에 참된 치유자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함께 보전하는 시대의 소명에 함께 응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저희 창조주 하느님, 하느님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던 이 세상에서, 오늘날 죽음을 퍼뜨리고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저희가 저희 욕심을 뉘우치고, 다 함께 하느님의 피조물을 보호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돌보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일치 주간의 묵상 - 5일째
예수님께서는 늘 군중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은 병들고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 바로 자신들을 괴롭히는 병과 모든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서 해방되는 것이었습니다.
일치 주간 5일째인 오늘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종류의 편견과 차별에 맞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동등성을 세상에 선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찾게 해 줍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인종과 민족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성차별, 장애인과 특정 종교에 대한 차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차별 요소는 비인간화를 조장하고 갈등과 큰 고통의 원천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군중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두 당신 품에 안으셨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참된 치유와 자유를 체험했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기뻐하였습니다.
온 인류의 일치 회복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 사명이자 희망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온갖 차별에 대항하여 다 함께 싸워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인간이 어떠한 차별도 없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서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가 사회를 해치는 차별과 소외를 깨닫도록 도와주시고, 저희 눈을 밝혀 주시어 저희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하시며, 멸시하는 모든 마음을 버리고 일치 안에서 함께 사는 기쁨을 누리도록 가르쳐 주소서. 아멘.”
예수님께서는 늘 군중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은 병들고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 바로 자신들을 괴롭히는 병과 모든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서 해방되는 것이었습니다.
일치 주간 5일째인 오늘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종류의 편견과 차별에 맞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동등성을 세상에 선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찾게 해 줍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인종과 민족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성차별, 장애인과 특정 종교에 대한 차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차별 요소는 비인간화를 조장하고 갈등과 큰 고통의 원천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군중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두 당신 품에 안으셨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참된 치유와 자유를 체험했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기뻐하였습니다.
온 인류의 일치 회복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 사명이자 희망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온갖 차별에 대항하여 다 함께 싸워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인간이 어떠한 차별도 없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서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가 사회를 해치는 차별과 소외를 깨닫도록 도와주시고, 저희 눈을 밝혀 주시어 저희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하시며, 멸시하는 모든 마음을 버리고 일치 안에서 함께 사는 기쁨을 누리도록 가르쳐 주소서. 아멘.”
일치 주간의 묵상 - 6일째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들을 뽑으십니다. 열두 사도를 뽑으신 이유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옛 열두 지파를 신약의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으로 모으시려는 의지를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이 주어질 것입니다. 마귀는 하느님과 맞서 세상의 온갖 죄악과 유혹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일치 주간 6일째인 오늘, 우리는 현실의 질병과 고통에 맞서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을 묵상합니다. 오늘날 병자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많은 의료 시설과 제도가 있음에도, 우리 주변에서는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도 받아 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 대한 연민은 단순히 마음으로 함께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고통 받는 이들의 현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절한 손을 붙잡고 참된 치유로 이끌어 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기 교회만을 챙기는 이기적 관심에서 벗어나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기며 고통 받는 이들에게 참된 치유와 위로를 선사하는 치유 공동체로 성장할 때,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일치는 시작될 것입니다.
“하느님, 질병과 고통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는 이들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건강한 이들이 그들의 행복에 감사드리며, 사랑하는 마음과 펼친 손으로 병자들을 돌보게 하소서.
하느님, 저희가 모두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며, 저희가 참으로 치유 공동체가 되어 다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들을 뽑으십니다. 열두 사도를 뽑으신 이유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옛 열두 지파를 신약의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으로 모으시려는 의지를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이 주어질 것입니다. 마귀는 하느님과 맞서 세상의 온갖 죄악과 유혹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일치 주간 6일째인 오늘, 우리는 현실의 질병과 고통에 맞서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을 묵상합니다. 오늘날 병자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많은 의료 시설과 제도가 있음에도, 우리 주변에서는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도 받아 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 대한 연민은 단순히 마음으로 함께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고통 받는 이들의 현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절한 손을 붙잡고 참된 치유로 이끌어 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기 교회만을 챙기는 이기적 관심에서 벗어나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기며 고통 받는 이들에게 참된 치유와 위로를 선사하는 치유 공동체로 성장할 때,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일치는 시작될 것입니다.
“하느님, 질병과 고통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는 이들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건강한 이들이 그들의 행복에 감사드리며, 사랑하는 마음과 펼친 손으로 병자들을 돌보게 하소서.
하느님, 저희가 모두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며, 저희가 참으로 치유 공동체가 되어 다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일치 주간의 묵상 - 7일째
종교는 죽음을 넘어서 영원에 대한 희망을 향해 살아가려는 인간의 삶의 자리입니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인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는 다종교 사회입니다. 한국 사회가 종교인들 사이의 갈등과 종교 편향 문제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본래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구원하시려는 의지를 갖고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의지는 다른 종교들 안에서도 펼쳐질 수 있습니다.
일치 주간 7일째인 오늘, 우리는 다양한 종교인들과 마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성찰하고자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후 모든 종교가 지닌 ‘옳고 성스러운’ 요소들을 결코 배척하지 않고, 이를 복음의 준비로 여깁니다.
이웃 종교인들과 이루어지는 만남과 대화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돕고, 갈등의 요소들을 극복하여 평화를 이루며, 하느님의 폭넓은 사랑을 선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과 나누는 대화는,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상실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중요한 길입니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리 주 하느님, 하느님 말씀에서 얻은 지혜에 감사하며 비오니,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와 다른 종교의 이웃들에게 마음과 정신을 활짝 여는 용기를 주시고, 무관심이나 편견, 증오의 장벽을 극복하는 은총을 내려 주시어, 저희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잔치를 향해 함께 나아가며 눈물과 불화가 사랑으로 극복되는 마지막 날을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종교는 죽음을 넘어서 영원에 대한 희망을 향해 살아가려는 인간의 삶의 자리입니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인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는 다종교 사회입니다. 한국 사회가 종교인들 사이의 갈등과 종교 편향 문제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본래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구원하시려는 의지를 갖고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의지는 다른 종교들 안에서도 펼쳐질 수 있습니다.
일치 주간 7일째인 오늘, 우리는 다양한 종교인들과 마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성찰하고자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후 모든 종교가 지닌 ‘옳고 성스러운’ 요소들을 결코 배척하지 않고, 이를 복음의 준비로 여깁니다.
이웃 종교인들과 이루어지는 만남과 대화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돕고, 갈등의 요소들을 극복하여 평화를 이루며, 하느님의 폭넓은 사랑을 선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과 나누는 대화는,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상실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중요한 길입니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리 주 하느님, 하느님 말씀에서 얻은 지혜에 감사하며 비오니,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와 다른 종교의 이웃들에게 마음과 정신을 활짝 여는 용기를 주시고, 무관심이나 편견, 증오의 장벽을 극복하는 은총을 내려 주시어, 저희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잔치를 향해 함께 나아가며 눈물과 불화가 사랑으로 극복되는 마지막 날을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일치 주간의 묵상 - 8일째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자 목표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인 오늘로 일치 주간이 끝납니다. 그러나 일치를 위한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언제나 바쳐져야 할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의 희망입니다. 비록 온갖 분열과 소외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지만 균열과 분열을 일치와 통일로, 죽음에 이르는 증오를 생명을 주는 사랑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권능과 항구한 원의에 우리는 희망을 두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에서 생겨났기에 깊은 고통 속에서도 계속 살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창조 활동은 갈라진 교회의 현실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일치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들은 이러한 희망으로 고무되고 힘을 얻습니다. 일치를 위한 기도의 힘은 세상을 새롭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힘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의 도구가 되고자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열어젖히는 기도 속에서 교회 일치와, 더 나아가 하느님과 온전한 일치의 삶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고통과 혼란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세상 끝 날까지 저희와 함께 계시니, 저희가 참행복으로 살아가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치를 위하여 봉사하는 희망에 가득 찬 백성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자 목표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인 오늘로 일치 주간이 끝납니다. 그러나 일치를 위한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언제나 바쳐져야 할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의 희망입니다. 비록 온갖 분열과 소외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지만 균열과 분열을 일치와 통일로, 죽음에 이르는 증오를 생명을 주는 사랑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권능과 항구한 원의에 우리는 희망을 두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에서 생겨났기에 깊은 고통 속에서도 계속 살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창조 활동은 갈라진 교회의 현실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일치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들은 이러한 희망으로 고무되고 힘을 얻습니다. 일치를 위한 기도의 힘은 세상을 새롭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힘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의 도구가 되고자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열어젖히는 기도 속에서 교회 일치와, 더 나아가 하느님과 온전한 일치의 삶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고통과 혼란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세상 끝 날까지 저희와 함께 계시니, 저희가 참행복으로 살아가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치를 위하여 봉사하는 희망에 가득 찬 백성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가톨릭성가 399번 / 주님 안에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