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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당 최남선의 개종
나는 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는가? 인생과 종교와의 관계는 마치 인체와 공기와의 관계와 같으니 특히 양자가 잠깐이라도 떠나 있을 수 없는 점에서 그렇다. 종교란 무엇인가? 우선 일반학자의 통설을 따라 신과 인간과의 관계라고 하여두자.
그러면 인간은 신이라는 개념을 어디서 얻어왔을 까? 신학상, 철학상 다 어려운 문제려니와 우리는 학자의 구구한 이론을 떠나 솔직히 말해서 우주에 충만한 신의 광명이 자연히 인간 마음속에 촉발하여 신이라는 계시가 된 자이다. 이렇게 생각하므로 우리에게는 유신론과 무시론과의 갈등을 느낄 까닭이 없다.
신의 광명이 인간 마음에 들어가서 갖가지의 신앙형태를 만들어내니 이에 인간세계에는 많은 종교가 병행하고 있다. 어느 종교든지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구제에 있느니 구제란 무엇인가? 우주의 대생명과 자기의 소생명이 하나가 되도록 인격을 통일해나가는 생활태도의 확립이다.
사람은 자기의 생명이 짧다는 것을 생각할 때 무한한 생명욕을 일으키고, 자기의 능력이 미약함을 인식할 때 무한한 권능의 욕망이 일어나니 이 생명욕과 권능욕을 합한 것이 인간의 향상심이다.
사람이 무한한 생명과 능력을 아무 데서도 찾지 못하다가 마지막 그것을 우주의 신에게서 얻고, 열렬한 희망과 동경으로써 신과 합일되기를 원하고, 향하여 최대한 정성을 쏟으면, 신인합일이라는 경지가 종교의 구제력으로서 인간 앞에 나타난다.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의 무한한 연장과 능력의 무한한 확대를 알아듣게 하는 것이 종교의 구제요 그 작용이 구제력이니, 이 구제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 종교의 가치가 달라지게 된다. 종교는 이론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론은 좋아도 구제력이 거기 따르지 못하고 또 일찍이 크게 구제력을 발휘한 적도 있으되 그 참생명이 위축되어 이제 와서는 구제의 기능이 거의 상실된 것도 있다. 그런데 구제력 없는 종교는 효력이 없는 약품과도 같으니 다만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왕왕 해독을 끼치는 폐도 없지 아니하리라.
종교의 구제는 진실로 개인적인 것으로, 때에 따라서는 국가 민족의 집단적 요구에 적응해야 할 경우도 있다. 오늘날 우리 대한이 요구하는 종교는 각 개인의 정신적인 미약을 보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오늘날 우리 대한의 특수한 모든 문제해결에 가장 유효적절한 기능을 가져야 한다. 그 기백과 위력과 기구와 전통이 이러한 역할을 구비하여서 능히 오늘의 부패를 말소하고 무기력을 없이하고 혼란하고 무절제한 이 세상의 기둥이 될 만한 것이 오늘 우리 대한의 종교이다.
이상은 내가 가지고 있는 종교관인바 이러한 정신으로 어려서부터 인생문제, 신앙문제에 자못 정신을 기울여오다가, 부처의 이상이 이 혼탁한 세상을 구제할까 하여 마음을 불교에 붙여왔으되 여기서는 얻은 바가 하나도 없고, 늙어가는 몸을 껴안고 세상의 어지러움을 보고 한탄만 한다. 그러면 오늘 이 처지에 서서 이 백성을 구제할 만한 정신적인 지주가 무엇일까? 이것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나의 중대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 오늘날 이 정세에서 한국의 내일을 믿음직하게 맡길 곳은 이 가톨릭을 제하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1955년 11월 17일에 과거 5,60년간의 종교적 체험을 청산하고 가톨릭에 입교하여 영세하니,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구령인 동시에 국가와 민족에 대하여는 조국근대화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나의 개심을 천하 동료들에게 약술하여 비정을 청하기로 한다.
우둔한 나에게 이러한 식견을 열어주신 천주께 무한한 성총을 감사하면서 이 붓을 놓는다(1955년 12월 17일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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