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일! 삼각지에서는 귀빈 여러분(고3, 우리로서는 놓칠 수 없는 예비교사들)을 모시고 치밀한 준비 하에 전교회(간만의 대외적, 공식적인 회합)를 가졌습니다. 이해가 잘 안 가시겠지만 저희 본당은 이중적 회합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외적, 공개적 회합은 비교적 형식적, 체계적인 회합으로서 참여인원이 4인 이상일 때 이루어지며 교사회의록에 수정 없이 기록되는 회합을 말합니다. 반면 비공식적, 대내적 회합은 회합의 특성상 기밀사항으로 분류되며 회합 참여인원이 3인 이하일 때 이루어집니다. 이는 형식을 파괴한 회합인 관계로 주로 성당 외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며 약식회합으로 간주됩니다. 물론 당연히 교사회의록에는 다소 가감된 사항이 기록되기 마련이지요...
예를 들면, 볼링장에서 회합을 한다고 칩시다. (이건 그냥 예를 든겁니다..)
"이번 주는 연중 제 19주일이다. 다 알지? 전례는 네가 알아서 해라.. 아자! 스트라익!" "누나, 이번 주 교안 꼭 써야 돼요? 그냥 합동 교리 하지.. 으으...오늘 왜 이렇게 안 풀리냐.."
뭐 이런 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관계로 이번 전교회는 정말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저희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요. 나름대로 회합 전에 주의를 주고 입을 맞춘 다음에, 전의를 다지며 회합에 들어갔습니다.
총화 단결하여 번영된 교사단 이룩하자!
그러나...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비극은 우리의 막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작기도에 이어 복음묵상시간이었습니다. 하도 오랜만이라 적응이 안되기도 했지만 뭐 그런 대로 경건한 분위기였지요.
하지만 그 진지한 분위기를 깨는 한마디... "어! 이런 것도 해요? 전교회 때에는 이렇게 하는 건가 보죠?.."
이 신입교사는 7월이 넘어서 입단한 관계로 뭐 제대로 보고 배운 것이 없습니다.. 순간 일시에 긴장된 분위기.. 갑자기 모두 뜨악한 눈으로 신입을 째려봄..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애써 태연한 척 한번 방긋 웃어줬습니다.. "아이..선생님...농담도 잘하셔.." 왠지 처음부터 뭔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자, 그럼 안건토의로 들어가겠습니다. 초등부 성탄제 이야기인데요.. 중고등부 선생님께서 좀 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현재 진행된 사항은 어디까지인가요?"
"이제까지는 별 진전이 없습니다.."
그러자 또 철없는 신입 왈 "초등부 회합 몇 달동안 한번도 안했잖아요.."
순간 저는 하얗게 질리는 교사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지요. "그래도 많이 모였잖아요.." (임마..그걸 누가 모르냐..)
아직까지도 사태 파악 못하는 신입.. "뭐, 모여서 술마시는 것도 회합인가."
이어서 거침없는 신입의 발언이 터져나옵니다."저는 방송제 맡았는데요. 지금까지 준비된 게 하나도 없어요. 정말 못하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텔레비젼을 많이 보셔야 할 거예요.. 쇼프로그램이나 토크쇼요.."
"매일 교사들하고 술마시느라고 요즘 저녁에 텔레비젼 뭐하는지도 몰라요..헤헤...우리 어제도 마셨잖아요.."
쿼바디스 도미네...아니 오 마이 갓! 좀 더 단속을 했어야 했는데.. 그뿐 아니었습니다. 그날따라 왜 이리 전화는 많이 오는 것인지.. 들락날락하는 교사들을 보며 가슴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뭐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전교회를 마치고 중국집을 갔습니다.
"자... 일년동안 수고했어.. 힘들었지?"
그러자 우리의 영악한 고3들.. "선생님, 설마 이거 사주고 교사하라고 하는 거 아니죠?"
귀신같은 것들.. 하지만 제가 또 한 가증 하지요.. 손사래를 설래설래 치며 말했습니다.
"아이...무슨 소리.. 전혀 상관 없지..정말 아니야.."
그러자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 "어. 교사시키려고 부른 거 아니예요? 저번에 그랬잖아요. 이제 나도 잔심부름에서 벗어나나보다 했는데.." 예의 또 그 신입이었습니다. 속에서 육두문자가 절로 나오더군요..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더니.. 제가 또 언제 그렇게 잔심부름을 했다고..
게다가 비극은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화가 무르익었을 때 한 당돌맹랑한 고3이 제 동기(92학번)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애인 있죠?"
"없어.." (전 제 동기가 이때만큼 애처롭게 보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에이..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은 있을 것처럼 보여요..정말 없어요?"
그러자 쐐기를 박는 제 동기의 발언."야! 교사하면 연애 절대 못해.. 여기 있는 선생님들 애인있는 사람 하나도 없어.. 그리고 생겨도 성당 한번 데려오면 그날로 그냥 깨진다."
저는 그 때 고3들의 마음에서 교사에 대한 호감이 우지끈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여튼 그저 나이 어린 X이나 나이 먹은 X이나...가지 가지 한다..정말... 한번 매섭게 째려봤더니 그제서야 움찔하더군요....
덕분에 그 철없는 고3들에게 도리어 동정을 받았습니다.."어머.. 선생님들 너무 불쌍하다..그치?"
아...이것말고도 이야기를 하자치면 수도 없습니다. 속터진 거 말도 못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것을.. 눈치도 없는 것들이 그 날 따라 왜 그렇게 말이 많은지...
새삼 느낀 것은...번영된 교사단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우리 본당은 왜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되는 일이 없는 겁니까?
혹시 효과적으로 고3 끌어들이는 비법을 아시는 분 메일 주십시오. 후사합니다...
P/S 아! 전교회에서 나온 이야기.
저희 중고등부 교사들까지 교사 피정 갑니다. 아마 7~9명 쯤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6학년 어린이 피정도 참여합니다. 워낙 소수이긴 하지만.. 4~5명 쯤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