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2003. 4. 14. 오전 2:46:56

글자

오늘은 봄기운이 담요처럼 따듯하고, 햇볕은 가는 눈을 떠야할 만큼 화창하다.

식목일로서는 더없이 좋다. 여의도에는 벚꽃이 한창이다. 개나리도 여기저기 시끄럽게 피었다.

 

교사들은 다시 중고등부 교사실에 모여서 늦은 점심으로 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언덕을 한참 내려가야 있는 분식점이며 수퍼를 다녀오는 일은 늘 새로 들어온 막내들의 몫이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해서 아직도 여고생티가 나는 아셀라가 팔을 두드리는 것을 보니 스무명이 넘는 교사들이 먹을 양이 무겁긴 무거웠나 보다.

 

창문과 문을 다 열어두니 봄바람도 서늘하게 불어 피로한 맘이 조금 가신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요한 신부님은 몇 마디 농담을 던지고, 사제관에 가서 잠시 쉬는 듯 하더니 또 하얀 로만 칼라를 낀 정장차림으로 병자성사를 주러 갔다. 애써 농담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남아있는 사람들의 맘을 돌봐주고 싶어하는 온정이 느껴졌다. 이런 때 병자성사라니 다른 사람의 길이 그렇듯 사제의 길, 역시 쉽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여교사들은 책상 위에 엎드려 하나 둘 씩 짧은 잠을 청하기도 했다. 오늘 미현 엘리사벳이 꽃시장에서 사온 후리지아는 예쁘다. 보라색이 좀 섞인 희한한 색깔이다. 누가 집어 왔는지 교사실에 있는 생활정보지에 후리지아 한 단을 쌌다. 집에 가져갈 생각이다.

 

희진이는 정말 말이 없다. 99년에 신입으로 들어 온 희진이가 저렇게 성숙한 아이가 되다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힘든 시기 중고등부를 꿋꿋하게 잘 지켜준 로사, 며칠 전까지 누나를 찾아가서 아픔을 함께 했으므로 상실감이 가장 큰 것은 희진일거다.

 

여기 오늘 모인 교사들은 깊은 상실감을 마음에 묻어두고, 또 서서히 일상의 기쁨을 뿜어내면서 축제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교사회의 삶은 계속되는 축제다. 나는 선생님들이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참된 기쁨과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을 보고, 나도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고 싶어서 교사를 시작했다. 삶은 선물이고, 각자라는 존재는 서로에게 주어진 선물이고, 모든 영혼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고’, 남을 위하는 데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데에서 깊은 평화를 느끼는 것이다.   

 

조희누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좋은 주일학교 선생님이셨다.

’그녀가 이제 없다.’ 오랜 세월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건강해지면 수원 율전동과 우리 본당의 ’주일학교 교사회’로 복귀했던 누나는 이번에는 돌아오지 못했다. 성당 앞에서 긴 머리에 정장을 하고 중고등부 아이들을 맞아 주던 조희누나의 모습은 이제 우리의 기억과 관념 속에만 있다.

 

우리는 지금도 교사실에 둘러앉아 여름날의 소낙비처럼 쏴악 쏴악 웃음을 터뜨린다. 장례미사 때문에 하얀 와이샤츠를 입은 요한이가 사람들의 안경을 닦아주고 다시 씌워줄 때 우린  꼭 안경사 같다면서 놀렸다. 안경을 서로 바꾸어 끼고 낯선 모습이 우수꽝스럽다고 웃었다. 그러나 조희 누나와의 만남을 한번뿐인 이 지상에서의 삶이 주는 선물로 여기는 우리 모두의 영혼 안에는 텅 빈 공허함이 있다. ’그렇게 착한 사람이 가다니 이럴 수가?’,’하느님은 우리 기도를 끝끝내 외면하셨나?’ 그리고 ’삶은 유의미한가.?’라는 질곡과 같은 의심으로  마음은 그늘진다. 우린 그녀가 인간의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평화의 안식 속으로 갔다고 믿지만, 슬픔과 상실의 고통은 한 참 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제 그녀는 공허하게 빈자리에, 또 마음의 그늘진 그곳에서 그리스도처럼 문득 우리 마음을 열고 들어오셔서 영혼을 뜨겁게 적시는 참된 사랑으로만 현존할 뿐.  

 

 

2003년 4월 5일

한조희 말가리다 선생님 장례미사 後

까치山 바람 지나는 교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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