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행데스네

2002. 6. 10. 오전 10:20:24

글자

아침마다 도봉산에 걸친 산안개가 보이는 이 집으로 이사온지 4년째이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고운 노을이 보이는 화곡본동 성당엘 다녔다. 한시간 반씩이나 걸리는 거리도 멀다고 생각해 본 일이 거의 없었다. 늘 지난 일들을 회상하는 것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보도 블럭이며 가로수며, 내가 나온 초등학교 운동장, 하얀 중학교 화단 난간, 구석구석 작은 오락기 몇대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게며, 가끔 ’안녕하세요’하는 성당 꼬마들 소리가 들리는 문방구며 그런 것들이 소중하다. 그런 것들이 속삭여주는 옛이야기들을 자양분으로 마시고 먹고 살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화곡동에 있는 떼제 공동체로 기도하러 가는 것도 사실은 거기서 기도하는 것이 좋아서이기도하지만, 화곡동과 마지막 남은 인연의 끈을 계속 붙들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지난 금요일 후지이 수녀님과의 일어 수업이 끝나고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감정의 원인을 추적해 보니, 그 학교 중국어 선생님이 일부러 수업하는 작은 방까지 찾아와서 인사를 나누어 주셔서였다. 예전에 중학교 영어과 연수를 갔다가 한 번 밖에 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신촌에 가야하는데 어떻게 가는지 몰라서 걱정하길래, 주일학교 교사중에 숙대다니는 꼬맹이한테 전화해서 알아봐 주었더니 아주 고마와 했다. ’선생님 언제 언제 저희학교로 일어 공부하러 오세요?’ ’선생님, 너무 반가와요.’ 두손을 한쪽 어깨쪽으로 모으고 어린이 처럼 좋아하는 시늉을 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환히 밝아져 왔다. 나를 만나고 반가와 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번 기도 모임에는 스위스 분인 막스 수사님이 안오셨다. 막스수사님께서 노래를 가장 잘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안계시면, 좀 기도가 밋밋해진다. 어렸을 때 주일마다 우리 성당으로 미사를 오시던 파란눈의 서양 아저씨들은 바로 이 떼제공동체의 수사님들이었고, 이들은 이미 할아버지가 되셨다. 떼제라는 수도회 현판이 하필이면 목욕탕 맞은 편에 걸려 있어서 우린 늘 그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왜 이분들은 프랑스의 아름다운 시골마을 떼제에 머물지 않고 여기까지 오셔서 20년을 넘게 사시고 계실까? 개신교와 천주교 그리고 성공회 출신의 형제들이 함께 살면서 화해와 일치를 표징적으로 사는 모습이다. 이 기도 모임에서 반복하는 잛은 성가를 통해서 나는 많이 평화로와지고 깊은 위로와 용기를 얻어왔다.

 

금요일, 기도 모임 조금 시간이 남아서 대학교 1학년 때 성당 형, 누나들 심부름 하러 자주 다니던 시장 길에 있는 수퍼에서 물을 한 병사고, 작년에 새로 생긴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을 쿠킹호일에 싸달라고 해서 놀이터에서 요기를 했다. 혼자 뭘 먹는 건 참 싫어했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 졌다. 대신 책을 읽는 시늉을 하거나 하면서 혼자먹는 초라함을 누그려뜨리는 게 나름대로의 수법이라면 수법이다.

 

요즘은 대학원 학기말 보고서를 내야하는 때이기 때문에 사실 바뻐야한다. 그런데 전공책은 아예 집어던지고 오래 전에 사두었다가 안읽은 책, ’은총, 선사된 자유’라는 신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은총’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읽는 건 아니고, 너무 오래 전에 산 책인데 안읽어 두어서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읽는다. 아니 사실 ’만사가 은총이라는데 도대체 이렇게 살기 어려운 사람이 많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많은데 누가 그런 얘기를 하는거야?’하는 호기심에서 읽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아님 나에게 은총이 필요한 시기여서인지도. 사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잘 흠을 찾지 않고 객관적이지 못한 나는 심상태 신부님이 쓰거나 번역한 책은 뭐든 좋아한다.

 

김밥을 씹고, 물을 마시고, 놀이터의 아이들 노는 걸 잠깐 쳐다보고, 지하철에서 읽다 끊긴 부분부터 다시 읽었다.

 

"고독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철저하게 수용되지 못하는 불능성으로 부터 생겨난다. 인간 상호간의 관련 속에서 생겨나는 체념이나 불신에서부터 생겨난다. 때문에 인간은 자기 자신의 껍질 속으로 퇴각한다. 그는 이 속에서 안전하기는 하지만, 사랑이 일깨우려 하는 바로 그 사랑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김밥이 목에 걸리는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어느 사람들에게든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써왔다. 그들을 생각만 해도 그 사람들을 좋아하는 그 느낌때문에 내가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수락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질려서 ’역시 혼자있는게 안전해’, ’역시 사랑하지 않는게 안전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의 삶의 지향점이 고작 ’안전제일’이었단 말인가?

 

저런, 그렇다면 정말 큰일인데.

 

"우리 안에 의심이 있을 때조차, 평온한 날들이나 메마른 시간이나, 성령은 여전히 남아 계십니다. 우리는 복음의 가난한 이들이 아닙니까? 님의 현존을 맞이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작은 믿음만으로도 족합니다. 그분의 현존을 향한 열망만으로도 우리 영혼은 생기를 얻습니다. 영원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그 날 저녁 기도 모임 Taize의 편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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