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이기는 게 아니라 안고 사는 거란다”
전신마비 장애인인 심리학 박사가 자폐증 손자에게 들려주는 인생편지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임을 알려줘
»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이문재 김명희 옮김/문학동네·1만원
“샘, 처음 내가 사랑한 것은 ‘내 손자’였다. 그리고 여섯 달이 지난 뒤에서 비로소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여섯 달이 지난 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러니까 샘의 외증조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샘은 외할아버지 고틀립의 무릎 위에 자꾸만 기어오른다. 그 순간 ‘우리가 서로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란 걸, 내가 다른 사람들이 쉽게 하는 일들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네가 알게 된 것 같았다’고 깨달은 고틀립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 앞길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법’을 일러주기로 마음먹는다.
책은 할아버지이자 심리학 박사인 고틀립이 그 때부터 4년 동안 샘에게 쓴 서른두 통의 편지 모음집이다. 사실 이런 책의 의도나 형식은 너무 ‘상투적’이다. 하지만 책을 먼저 읽은 ‘시골의사’ 박경철씨처럼 “졸린 눈을 비비면서,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자세를 바로잡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에는 어느새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고틀립 박사는 서른세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왼손 엄지손가락에만 감각이 살아 있고, 2000년 그의 둘째딸이 낳은 유일한 손자인 샘은 자폐아다. 그러니 정작 샘은 이 편지를 읽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박사는 유대 경전과 성경과 이슬람의 시 등 재미있는 우화들을 활용한 쉽고 꾸밈없는 표현으로, 자신이 헤쳐온 역경 속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샘에게 ‘인생 지도’를 찾는 길을 안내한다.
청소년기에 학습장애로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두 번이나 낙제를 한 끝에 정신의학 전문가로 성공한 고틀립의 삶은 한마디로 기구하다. 결혼 10돌을 맞아 아내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가다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신체적 고통과 절망에 빠진 와중에, 4년 전부터 암 투병을 해온 아내는 이혼을 선언한다. 극심한 분노와 우울증을 안기고 떠난 아내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먼저 저세상으로 간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인생의 스승으로 의지해온 5살 많은 누나마저 뇌종양으로 죽고, 뒤이어 부모마저 잃는다. 하지만 그는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부러진 목을 고정시킨 채 누워 있는 순간에도, 바로 옆 병상의 여자 환자로부터 실연의 고통을 듣고 다른 상담사를 소개해주며, 자신이 세상에 여전히 쓸모가 있는 존재란 사실을 깨달은 덕분이다. 이후 휠체어에 앉은 심리치료사로 30년 가까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며 살고 있는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공영방송의 진행자로, 신문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왕성한 사회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샘에게 자신처럼 이겨내고 성취하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법, 실패와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법, 상처를 안되 스스로 치유되도록 돕는 법’을 말하고, ‘사랑하라, 어제보다 조금 더’라고 당부한다. “내가 너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오랫동안 사랑해온 사람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가슴속에 차오르는 느낌 같은 것이다. 눈물이 어리는 슬픔과 사랑, 말이 가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깊은 감정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춤사위 같은 것 말이다.”
샘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는 마지막 장에 이르면, 옮긴이의 한 사람인 이문재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이 글은 마음의 미성년자인 나에게 들려주는 육성이다. … 세상의 모든 샘에게 보내는 편지다. … 편지를 읽으며 마음의 성년식을 치르기 바란다.”
책의 수익금 중 일부를 자폐증치료재단 등에 기부한 지은이의 뜻을 이어 국내 수익금의 일부는 아름다운재단에 전달될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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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이 주 후, 나는 제퍼슨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그 때 나는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전신마비로는 살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전신마비로도 살아갈 수 있는지
정말 모를 때였다. 물론 나에겐 아내와 두 아이가 잇었고, 직업도 계속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고 날 사랑한다고,
나는 살아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내겐 그 말들이 들리지 않았다.
전신마비인 내게 무슨 미래가 있단 말인가.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목뼈가 부러지면, 머리를 완전히 고정시켜야만
치료가 가능하다. 옛날에는 머리부터 허리까지 통쨰로 깁스를 한 후에
얼굴만 겨우 내놓고 지내야 했다. 미라가 따로 없었다!
요즘은 할로베스트라는 경추보조기구를 사용하는데, 여기서 할로라는
단어는 천사의 머리 위에 있는 도넛 모양의 후광과는 별 상관이 없다.
할로란 삼 밀리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두피를 둘러싼 후 두개골에
나사를 박아 고정시키는 둥근 금속 테를 말한다. (중략)
두개골이 나사에 박혀 고정되어 있었으니 머리를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 천장의 흐릿한 불빛을 보거나 각종 의료 모니터에서
울려나오는 기계음을 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링거액은 혈관을 타고 계속 들어가고 있었고, 방광에 삽입한 관을
통해 소변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대로 잠이 들어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인기척이 느껴졌다. 내 병상 옆 의자에
누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릴 수 없으니 그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간호사이겠거니 했다.
"간호사에게 들었는데요, 혹시 심리치료 하시는 의사분이세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럼 말씀 좀 드려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한밤중의 중환자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그녀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남자를 너무나 사랑했다고,
그런데 그만 그가 떠나가버렸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니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엄습했다고,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급기야 스스로 생을 마감할까 하는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그런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라 겁이 났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나 자신이 그녀만큼이나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걸
그녀는 알 리가 없었다. 난 그녀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듣는 내내 깊은 연민으로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이야기했을까? 속삭이는 목소리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십오 분, 아니 어쩌면 몇 시간 동안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자기 삶의 고통과 시련, 사랑을 잃은 아픔과
견디기 힘든 상실감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 두개골에 박혀 있는
나사못, 소변이 흘러나오는 관, 링거 같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걸을 수 있는지, 춤을 출 수 있는지, 사랑을 나눌 수 있는지
따위는 그녀에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바로 앞에서 자기
고통을 듣고 있는 사람의 끔찍한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고통이 전부였고, 오직 고통받는 자신을 내가
도와주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말이다, 샘. 그녀의 얘기에 귀기울이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거였다. 비관적인 내 처지도 잊을 수 있었다.
사고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때 나는 오로지 그녀의 고통에 집중했고,
그녀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 얼굴이 천장을 향하도록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곁에 앉은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영혼을 어루만지는 신비스런 목소리로
내 마음 속에 들어온 그녀는 지금도 내 삶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날 밤 대화를 마칠 즈음, 난 그녀에게 심리치료사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그녀가 떠난 뒤, 나는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전신마비로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을 잃고 절망에 빠진 낮은 목소리가 내게 들려주었다.
아직도 내가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말이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내게 살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며 용기를 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내게 그 깨달음을 준 사람은, 내게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한
낯선 사람이었다.
그날 밤, 그녀와 나는 서로를 살려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