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내성지

위치 : 경기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95-7
관 리 청 : 미리내 성지 031-674-1256
개 요 : 경기도 안성에서 북쪽으로 40리쯤 떨어져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리우고 있는 미리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품 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성지에 들어서면 고요하면서도 편안함이가슴에 와 닿는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지를 둘러보면 가슴이 깨끗해짐은 느낄 수 있다.
이곳이 미리내로 불리게 된 것은 천주교신자들이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
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붙여졌다.
본래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등 초기 천주교 선교지역을 이루었던 곳의 하나이다. 따라서 김 신부가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비로소 본당이 설정됐을 때 이곳에는 이미 1천6백여명의 신자가 있었다. 26세의 나이에 처형당한 김대건
신부는 조정에서 장례마저 치루지 못하게 하여 처형당한 지 40일이 지난 다음에야 이민식 빈
체시오가 간신히 시신을 빼내어 남의 눈을 피하며 일주일을 등에 지고 이곳 미리내로 옮겨와 안장할 수 있었다.
미리내는 1972년부터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고 1989년에 웅장한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이 완성되었다.
성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어는 것은 성지 한 가운데 웅장하게 서있는 기념성당이다. 이 성당은 천주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고 기념성당 뒤쪽으로 난 십 자가의 길에는 예수가 로마병사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져 있는 청동조각 15점이 서 있다.
김대건 신부의 무덤과 하악골(아래턱뼈)이 모셔져 있는 미리내성당, 김신부의 동상, 성모성당, 게쎄마니 동산(여기저기 나뒹구는 바위를 자연 그대로 이용한 동산)등을 돌아보는데 2~3시간이 소요된다.
미사시간 : - 연중 평일 오전 11시 30분
- 연중 주일, 공휴일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 성시간 미사 매주 목요일 밤 11시 30분
- 철야 : 새벽 1시 30분 ~ 3시 30분. 장소 : 103위 지하성당
- 토요신심미사 : 매월 첫째주 토요일 오전 11시
고해성사 : 미사전후
< 주의사항 >
미리내 성지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신앙 선조들의 순교 선열을 기리는 거룩한 곳으로
기도하는 장소이니 경건한 신심과 자세로 순례에 임한다.
1. 기도서, 성가집, 묵주 지참
2. 복장 단정, 금연, 고성 방가 금지
3. 취사 도구 사용 금지
4. 쓰레기 반드시 개인 수거
교통정보 : 영동고속도로 용인 IC 에서 용인 시내로 빠져 나와 45번 국도를 타고 11km 가면
송전리이다. 여기서 이동저수지를 끼고 4.8km쯤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좌회전하여
2.5km쯤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미리내 입구이다.
교통안내 : 안성 버스터미널 뒤 농협(직매장)에서 승차
- 첫차 : 오전 8시 45분
- 막차 : 오후 9시 10분
- 주소 : 우)456-930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141
주변관광지 : 편운재 문학관, 미리내 농촌테마마을, 예지촌
드라이브코스 :◈안성시내 → 굴암사(4km) → 노곡호수 (6km) → 노곡삼거리(0.5km) → 미리내성지(5km)
◈안성 I.C → 중앙대입구(안성맞춤박물관) → 보개면(아트센타 마노) → 남사당전수관→
너리굴 문화마을 → 태평무전수관 → 고삼면 → 미리내성지
주변숙박지 : 젠모텔 031-673-0653, 쉐르빌 031-671-2221, 베르사유 031-671-0113
주변음식점 : 물레방아가든 031-674-8145, 약수터식당 031-672-4728, 청솔가든 031-672-6615
정보제공자 : 1) 456-930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95-7.
미리내 성지 (031-674-1256)
2) 456-701 경기도 안성시 봉산동 31-3.
안성시청 문화관광계(031-678-2065)
2.미리내 성지
경기도 안성에서 북쪽으로 40리쯤 떨어져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리고 있는 미리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고(高) 우르술라, 김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미리내는 본래 경기도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등 초기 천주교 선교지역을 이루었던 곳의 하나이다. 따라서 김 신부가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비로소 본당이 설정됐을 때 이곳에는 이미 1천6백여 명의 신자가 있었다. 성김대건의 일생은 짧았다. 26세의 나이에 생을 마친 그는 그러나 '뛰어난 지식, 열렬하고 꾸밈 없는 신앙, 놀랄 만한 언변'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정든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하고 낯선 이국 땅에서 선진 서구 문명에 정진하기 10개 성상. 그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최초의 방인 사제가 되어 이 땅에 돌아온 그는 극히 짧은 사목 활동을 마치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김 신부의 처형 소식을 들은 페레올 주교는 그의 빼어난 인품과 재능을 두고 "과연 그에게는 어떤 일이든지 맡길 만하였고 그의 성품이나 일하는 태도로나 지식 등 어느 모로 보든지 성공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그를 잃은 것은 무엇으로도 대상(代償)하지 못할 재앙"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심지어 조정에서조차 많은 대신들이 외국 문물에 능하고 박학 다식한 그의 재능을 아쉬워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굽히지 않는 신앙으로 결국 헌종에 의해 직접 그의 사형이 선고되고 이튿날인 16일엔 떠들썩한 규모로 새남터에서 처형된다. 김 신부는 형장에서도 추호의 두려움도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최후의 시각이 다가왔으니 여러분은 나의 말을 잘 들으시오. 내가 외국 사람과 교제한 것은 오직 우리 교(敎)를 위하고 우리 천주를 위함이었으며 이제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에 영보를 얻으려거든 천주교를 믿으시오." 마침내 희광이의 칼을 대하고서도 김 신부는 태연하게 "이 모양으로 있으면 칼로 치기 쉽겠느냐?"고 묻고 "자, 준비가 되었으니 쳐라."하고 말했다.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 신부의 경우 장례마저 막아 참수된 자리에 묻고 파수를 두어 지켰다. 하지만 죽음을 피해 살아 남은 신자들은 이를 그대로 둘 수 없었고 그들 중 한 사람인 이민식(1829-1921년)은 파수의 눈을 피해 치명한 지 40일이 지난 후 김 신부의 시신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시신을 등에 지고 험한 산길을 틈타 1백50리 길을 밤에만 걸어 일 주일이 되는 날 자신의 고향인 미리내에 도착했다.자신의 선산에 김대건 신부의 묘를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보살피던 그는 그로부터 7년 후 페레올 주교가 선종함에 따라 주교의 유언대로 그를 김 신부의 옆자리에 안장했다. 그 무렵 김 신부의 어머니인 고 우르술라도 비극적인 처지에서 숨을 거둔다. 7년 사이로 남편과 아들을 여의고 이집 저집으로 문전 걸식을 하다시피 한 눈물겨운 생애였던 것이다. 이민식은 고 우르술라도 김대건 신부의 묘 옆에 나란히 모셔 생전에 함께 있지 못한 한을 위로한다. 그리고 미리내의 오늘을 있게 한 당사자인 이민식 자신도 92세까지 장수하다가 죽어서 김 신부 곁에 묻혔다. 미리내는 1883년 공소가 설치됐다가 3년 뒤인 1886년 본당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은 지난 1972년부터 시작됐다. 성모 성심 수도회와 천주 성삼 성직 수도회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을 비롯해 주차장 시설, 김대건 신부 동상, 피정의 집 등이 완공됐다. 1980년 들어서는 경당 옆에 3만 평 규모로 광장을 확장하고 미리내 성당에서 경당까지 길 옆에 14처 조각을 세웠고 1987년부터 1989년까지 2년에 걸친 공사 끝에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경당에는 현재 모두 여섯 분의 묘소와 함께 김 신부의 하악골(아래턱뼈)을 모셨다. 다른 유해는 가톨릭 대학교 신학 대학(성신 교정) 성당 안에 안치돼 있다.
성당 앞마당에서 보이는 성모상을 지나 조금 올라가다 보면 여기저기 나뒹구는 바위를 자연 그대로 이용해 게쎄마니 동산을 꾸며 놓았는데 이는 피땀을 흘리며 기도를 바치는 예수, 그와 반대로 잠에 곯아떨어진 제자들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둔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오른쪽 등성이로는 수원 교구 성직자 묘원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위편으로는 18위 무명 순교자들의 합장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