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의 년전글을 옮김 이스라엘 聖地巡禮(1)(3-11-23) 아주 가까 운 친구가 이스라엘 대사로 부임한지 1년이 넘었다. 이 친구가 지난 여름에 일시 귀국해서 자기가 이스라 엘에 있을 때에 꼭 한번 구경오라고 누누히 강조를 했고 특히 11월이 계절적으로 제일 좋다며 장기 계획 을 세우라고 권고했다.
하기사 친구가 그런 지역에 대사로 나간다는 것이 결코 흔치 않은 일일진대 적극적인 계획을 구상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본사회의가 11월에 있을 예정인데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다가 드디어 확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18일부터 21일까지 – 그렇다면 나는 22일에는 파리에서 텔아비브로 날아갈 수가 있 겠다
작금의 국제정세와 중동지역의 불안함으로 주변 사람들은 여행을 만류했지만 전화로 그 곳의 안전상태 를 확인했는데 전혀 아무 문제가 없으니 염려말고 오라는 것이다. 나는 18일에 출국 파-리에서 회의를 계 속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참으로 아슬아슬했다. 미결된 사항이 있으면 일정을 연장해서 회의를 계속한다 는 것이었는데 몇번의 고비를 넘기고 다행히 초기 일정대로 회의를 마칠 수 있었다.
드디어 22일 아침 파리에서 텔아비브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에 도착했다. Check in counter 가 지하층에 있단다. 내려가 보니 검문소가 하나 있고 통과하니 다시 여자 검색원이 여러가지 질문을 한 다. 무기를 소지하고 있냐, 타인이 부탁한 짐이 있냐, 짐은 네 스스로 쌌냐 등등을 묻는다. 그리고는 줄 뒤에 붙었는데 약 30분을 기다려도 줄이 별로 진전이 없다. 아마도 무지하게 자세히 검사를 하는 모양이 다.
그럭저럭 내 차례가 되어 짐 검사를 받는데 우리는 동양인이라 그런지 몸수색도 적당히 하고 짐 검사 도 상당히 호의적이다. 이렇게 근 한시간에 걸친 검사과정을 거쳐서 겨우 check-in.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 터미널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또 한번 철저한 짐 검사를 실시한다. 30여분을 기다려 다시 가방을 열고 검사를 받은 뒤에 겨우 비행기에 자리를 잡았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하기사 그렇게 주변국가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으니 철저하게 대비할 밖에… 이 스라엘까지 비행시간만 4시간 20분이 걸린다. 지중해가 작은듯하면서도 제법 크다는 이야기다.
텔아비브에 도착하니 한국대사관에서 나온 아가씨가 비행기 트랩 바로 밑에서 이름을 크게 써서 들고 나를 기다린다. 자동차도 별도로 배치해서 나만 먼저 공항으로 나왔다. 입국 수속이 매우 복잡한데 대사 관 직원이 무어라 자기나라 말로 하더니 그냥 통과다. 짐은 자기가 찾아 준다고 공항 라운지에서 차나 마 시며 기다리란다.
라운지에서 대사 부부를 만났다. 나를 영접하러 공항에 부부가 나와 준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라운지 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짐을 찾아 왔단다. 기온이 27도라는 데 덥지 않 고 아주 쾌적하다.
공항이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고 도로도 아주 잘 되어있어 생각보다 일찍 대사관저에 도착했다. 이스 라엘 양식으로 지은 2층집인데 무지하게 크다. 1층은 영접실과 식당 그리고 중앙 전체가 회랑 비슷한 응 접실로 되어있고 2층의 한쪽은 부부침실, 응접실, 서재로 되어 있고 다른 한쪽에 침실이 두개에 중간에 응접실이 있다.
23일 아침 오늘의 일정은 예루살렘과 사해 방문이다 아이스박스에 맥주, 콜라를 잔뜩 싣고 수영복에 슬리퍼에 수영장에서 몸에 걸칠 옷가지를 꼼꼼하게 챙겨들고는 출발 -
차 안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정말로 복잡하다. UN에서 승인 받은 이스라엘은 지 역이 정해져 있는데 아랍 지역을 모두 접수해서 이스라엘 나름대로 관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가는데 여기까지는 이스라엘 통치구역 여기부터는 아랍통치구역 뭐 이런 식으로 계속 남의 구 역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예루살렘도 둘로 갈라져 있지만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스타일로 아랍구역까지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란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오르셨다는 골고다의 언덕- 말로만 듣던 언덕을 직접 가서 보니 골목길에는 아랍 장사꾼들의 가게로 꽉 차있고 언덕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닌데다가 정작 십자가를 지고 도 착한 목적지는 언덕의 중앙쯤에 위치하고 있다.
언덕 맨 위에는 다윗의 탑이 위치하고 있고 중간쯤 내려오니 그곳에성분묘 교회가 세워져서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골고다언덕 꼭대기 거리의 모습
골고다언덕 위에있는 다윗의탑
성분묘교회 정면
십자가에 못박힌 자리며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고 시체를 내려서 염을 한 장소, 그리고 예수님을 묻 었던 무덤이 고증에 의해 그대로 확인 보존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내리는 장면 벽화
예수님을 염하는 장면 벽화
염을 마치고 묘로 이동하는 장면 벽화
실제로 이위에서 예수님을 염했다는 대리석판
십자가에 못박혔던 위치에 만들어 놓은 제단
예수님의묘 입구
예수님의 묘
십자가를 묻어놓았던 장소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 와서 감동하고 돌아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다. 도시 전체가 그리스도와 연관된 유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고다의 언덕을 돌아 옆으로 내려오니 회교성전과 유대교성전이 보인다.
유대교 성지(돔이 보인다)
회교 성지(금색돔이 보인다)
아이러닉하게도 유대교와 회교의 성전이 같은 곳이다. 두개가 붙어서 한 곳에 있으며 담도 없다. 유대 교가 부패해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교리를 정리해서 회교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는 이 론이 과연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니 적어도 시대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니 성전이 같은 곳일 수밖에 …
성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한 덕에 지하 수십 미터까지 연결된 구조물이 발견되어 지금은 확실히 유대교의 성전 임이 확인되었지만 이미 그 위에 회교사원을 건조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통곡의벽은 회교사원의 서쪽벽을 일컫는다. 결국 남의 자리에 올라 앉아있다가 다 빼 앗기고 어찌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 통곡을 할 수 밖에… 영어로는 western wall로 표기되어 있다
통곡의 벽
통곡의 벽을 보고는 맞은편에 있는 올리브동산 밑에 위치한 게쎄마네동산을 향했다. 이 곳에서 그리스 도가 로마병정에게 잡혀간 곳인데 현재는 만국교회가 자리를 잡고있고 나름대로 유적을 잘 보존하고 있다 . 특히 하나 놀라운 것은 예수님 시대부터 몇천년을 자라고 있는 올리브 나무이다. 나무의 모양부터 예사 롭지 않다.
수령2000년이 넘는 올리브 나무
게쎄마네동산에서 예수님이 로마병정에게 잡혀가는 장면 벽화
바로 사해를 향했다.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닭다리를 비롯해서 3가지 음식으로 구성된 점심을 먹었 다. 닭다리의 맛이 제법이다.
사해로 가는 길은 참으로 험하다. 해저 400미터인데 고개의 위치가 해상 700미터이니 무려 1100미터를 곧장 내려가는 셈. 오른편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며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돌이라 보기에도 금새 굴러 내 려올 것 같다. 왼쪽은 사해를 따라 계속 바다를 보며 달린다. 2차선 도로를 겨우 설치한 이유를 알겠다. 운전기사는 이 길을 무려 150km로 달린다. 한참 뒤 드디어 도착.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갇힌 바다로 수면 높이가 지구 평균 수면보다 400m 아래에 있으며, 염분 함유량이 보통 바닷물에 비하여 10배에 가까운 35%이고, 공기중 산소 함유량은 인근 지중해 해변보다 10%정도 높게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
사해는 요르단강 남단에 위치한 길이 80km, 최대 폭 17km, 수심 400m, 수중 고형물질 25%, 비중 1.17 로 수영을 하지 않아도 물에 뜨며, 인체에 유익한 각종 광물질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 건강 치료를 위하여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곳이다. 사해 주변에는 많은 온천장과 함 께 휴양 리조트 시설들이 잘 발달되어 있다. 사해에 온천이 있다니…
온천 입장권을 사면 옷장을 준다. 옷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약 1.5 km 떨어진 바다로 가는 셔틀차를 탔다. 드디어 도착. 몸을 사해에 담그니 기분이 너무나 이상하다. 책에서만 읽었던 사해. 사람의 몸이 둥 둥 뜬다는 사해. 엉덩이를 밑으로 빼니 손발이 물 위로 나오고 어깨와 얼굴이 물 밖으로 쑥 나온다. 참으 로 이상한 느낌이다. 몸을 비비니 미끈미끈한 것이 꼭 기름을 바른 것 같다. 바닷물의 염분은 7%인데 사 해는 30%라고. 그런데 이는 단순히 염분의 차이가 아니고 완전히 다른 물이다. 분석이 안되는 화학물질이 된 것이리라…
사해에 떠있는 모습
수영을 마치고 머드팩을 했다. 온 몸에 머드를 바르고 셋이서 사진을 찍었다. 사해에 와서 머-드를 바 르고 사진을 찍다니… 옆에 보니 해저 413미터 표시가 보여서 그 팻말 밑에서 기념 사진을 한장 찍었다.
해저 413미터 표시판 앞에서
사해 머드팩을하고(뒤에 보이는 바다가 사해)
사해를 마주보며 높고 긴 산이 있다 그 중간쯤이 쿰란인데 이속이 바로 사해사본을 발견한 장소다. 사 해의 북서쪽에 있는 쿰란은 사해사본을 기록한 엣센파 사람들의 주거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이 발 견된 것은 1951-1956년 사이로 최근의 일이며, 폐허속의 주건물은 폭 27m, 길이 44m 정도로서 석고가 거 칠게 발라져 있는 큰 돌로 만들어졌다.
북쪽에는 수비탑이 있으며 부엌과 붙어있는 식당에서는 1,000여점의 토기가 발견 되었다. 주건물 주변 에는 옹기장이집, 방앗간, 염색집, 7개의 저수탱크등이 발견 되었으며, 의자, 책상, 말라버린 잉크가 담 겨진 잉크스텐드가 있는 기록실이 발견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쿰란 주변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 개이며 나머지는 수없이 많은 조각들로 발굴 되었다. 이들중 약 1/4이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주석, 신학서, 쿰란공동체의 규율집들로써 대부분 양피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놓은 것들 이다. 사해구약사본은 현존하는 구약사본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에스더서만을 제외하고는 구약의 모든 책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
돌아오는 길은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기로 했다. 운전사가 필리핀인인데 지리도 소상히 잘 알고 종 교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별 걱정없이 이스라엘지역과 아랍지역을 넘나든단다. 게다가 운전도 제법 잘해서 믿음이 간다. 올 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무지 밟아댄다. 그렇지 않아도 온천을 해서 몸이 녹 작지근한데 차 안에서 흔들리니 살살 잠이 쏟아진다.
오후 4시 30 분이 되니 해가 진다. 빨갛게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하늘이 주는 은총으로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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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지순례 - 족집게과외 1
2007. 9. 8. 오후 9: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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