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기 - 허형석 프란치스코★

2007. 2. 17. 오후 1:47:34

글자
 -제가 2006년 3월 21일부터 30일까지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여행기를  한국산업기술대학교에서 내는 'Pu Journal' 2006년 6월호에 실었습니다. 이 학교의 홍보실장인 신현덕 교수가 이를 부탁했습니다. 신 교수와 저는 전 직장인 세계일보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교우분께서 인도를 이해하는데 이 글이 도움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당시의 여행기를 올려봅니다.

 

 

                                           * 인도 여행의 편린(片鱗) *

 

    인도는 '동화의 나라'다. 두번 째 여행을 통해 이를 다시 확인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동화에서 나오는 요정이나 선녀가 보였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보기가 힘든 현상이 눈앞에서 종종 전개됐기 때문이었다. 인도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와 너무 달라 보였다. 짐승과 사람이 구분없이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는 일, 탁한 갠지스 강물을 성수(聖水)로 생각하는 일, 상상을 벗어나는 빈부차, 불가사의한 문화 유적 등은 동화의 나라에서만 경험하는 일이다.

 

    우선 인도의 빈곤을 보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초일류급이었다. 뭄바이를 관광하려고 소형 버스를 타고 문밖을  나서자  마자 땟국물 흐르는 건물, 먼지와 소음과 매연이 뒤엉킨 거리, 빈곤한 사람의 모습 등 제3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이는 최근 신문 지상에 나온 60-70년대 청계천의 사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더구나 뭄바이시가 도로를  확장하려고 집을 잘라냈는데 잘려나간 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길에서 다 보였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안과 호텔 밖은 그야말로 천지차였다.

 

    도비 가트라고 하는 야외 세탁장은 뭄바이의 볼거리다. 세계 최대의 빨래터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비라고 부르는 최하층 카스트다. 외국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이들을 상대로 구걸하는 인도인도 많았다. 외국인은 이들에게 후한 편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런 카스트가 남아 있고 이  카스트에  속한 그들이 그런 험한 일을 전담하고 있다는 점이 인도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했다.

 

    뭄바이 동쪽의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은 장관(壯觀)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필자가 처와 함께 다시 오고 싶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말이다. 엘로라 석굴의 경우 1.6㎞에  걸쳐 천연 암석을 쪼개지 않고 다듬어 사원을 만든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잔타 석굴도 마찬가지다. 기간도 수백년이 걸렸다. 이 건축물이 전제자가  축조를 지시한 결과인 지 고대 인도인이 신앙에 대해 열정을 가졌던 결과인 지는 모르겠다. 다만 인간은 끈기와 저력이 있는, 정말 위대한 존재라는 점이 가슴에 다가왔다.

 

    다른 이들도 이구동성의 탄성을 내뱉는다. 건축 방식은 거대한  바위를  위에서 파내려가거나 옆으로 파들어가 사원을 만드는 식이었다. 엘로라 석굴의 카일라쉬 사원은 파르테논 신전 1.5-2배 규모로 바위를 파내려가 만들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진행됐을까? 엘로라 석굴은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사원이 함께 있다. 반면 좀  떨어진 아잔타 석굴은 스님들이 정진했던 불교 유적이다. 이 석굴은 옆으로  파들어가 만들었는데 세계문화유산에도 등록됐다. 아잔타 석굴은 모두 28개이며 1번 굴의  연꽃을 든 보살 그림과 26번 굴의 부처님 열반상이 인상적이었다. 장비도 좋지 않았을텐데 이런 훌륭한 문화 유산을 남긴 인도인의 저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로 조각으로 유명한 사원이 있는 카주라호(Khajuraho)로 가려고 부사발  역에서 야간 열차를 탔다. 인도인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기회라 은근히 그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역 안의 철길은 정말로 더러웠다. 냄새도 상당히 역겨웠다. 온갖 쓰레기가 다 있는가하면 인분도 보였다. 급한 김에 하는 실례는 다반사다. 아그라로  가려고 두번 째로 야간 열차를 탄 무갈 사라이 역도 마찬가지였다. 역내 철길이  이렇게 지저분하니 밤에는 쥐의 천국이었다. 열차를 기다리며 많은 쥐들이 먹이를  찾으려고 다니는 광경은 싫컷 봤다. 위생은 없었다. 인도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세계문화유산인 카주라호의 에로 조각은 대단했다. 당시 인도인이 방중술의  측면에선 현대인보다 훨씬 앞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성애 자세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이상하게도 그 조각들이 추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1000년 전 인도인이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가르쳐 주는 듯 했다. 인간은 그런 '신성한' 행위를 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필 신성한 힌두교 사원에 성을 장려하는 조각을 왜 했는 지는 이론이 분분하다. 남녀 교합을 통한 후손의 생산이 힌두교 교리에  합 치하는데다 국가 운영에 사람이 필요해 그랬다는 설이 유력하다.

 

    힌두교의 성지이자 고도인 바라나시(Varanasi)는 갠지스강의 성스러운 목욕터라 인상적이었다. 도시를 끼고 흐르는 갠지스강은 인도인에게 성스러운 곳이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고 화장터가 있어 사람과 소의 배설물부터 덜 탄 시신까지 갖가지  부유물이 떠다닌다고 한다. 배를 타고, 떠다니는 소 사체를 실제로 보았다. 이곳을 방문한 힌두교도들이 이곳에서 목욕하고 이 물을 마시는가하면 통에 담아 떠가는 모습에 놀람을 넘어 경외심까지 든다. 이 물이 성수라는 것은 힌두교 교리에 나와  있다고 한다. 종교는 인간에게 무엇인지라는 수수께끼는 풀기가 어려웠다.

 

    화장터 풍경은 분위기가 오히려 평온했다. 힌두교도는 시신을 완전히 태워 유골을 수습하지 않는다. 화장하는 광경을 보려고 기다렸으나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다. 힌두교 교리에서는 누구라도 이곳에서 화장돼야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고해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도인도 윤회 고리에서만은 벗어나려 한다.  힌두교도를 위시한 인간은 사는 일 자체가 괴로워 윤회 고리를 끊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타지 마할도 불가사의한 건축물이다. 잘 알다시피 이는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이 출산하다 죽은 부인 뭄타즈 마할을 기념해 만들었다. 부인이 사망한 이듬해인 1632년부터 22년간 공사를 했다고 한다. 여기에 투입된 물량과 인원은  엄청났다고 한다. 그 황제는 부인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대리석과 보석으로 만든 대칭형의 타지 마할은 달밤에 더 오묘한 맛을  낸다고  한다. 덧신을 신거나 맨발로 입장한다. 맨발로 입장하니 대리석의 감촉이 아주 좋았다.

 

    뉴델리를 포함해 이처럼 다시 주마간산식으로 본 인도는 필자의 눈에 제3  세계였다. 다만 훌륭한 고적은 예외였다. 인도를 좋게 말한 이야기도 많다. 혹자는 인도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야기는 관념의 차이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인도가  90년대 초 개방정책을 수용해 경제 개발을 이루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선진국  기준으로 볼 때 인도는 아직 먼 길을 가야한다고 봤다. 한편으로는 저력과 잠재력있는 이  나라를 이처럼 아주 가난한 나라로 만든 역대 위정자에게 은근한 분노감도 들었다.

 

    마스크와 귀마개를 해야할 정도의 먼지와 소음이 있는 도시들, 관광지마다 있는 수많은 행상, 거리마다 넘쳐나는 사람, 차도와 인도는 물론 기차역 승강장에서도 어슬렁거리는 소, 가축과 사람의 공존, 황량하고 척박한 농촌 풍경만 생각난다. '적응의 종교'와 '저항의 종교'가 있다. 지금의 인도 현실은 위정자보다는 오히려 대표적인 '적응의 종교'라는 힌두교의 탓이 더 크다고 보인다. 인도인이 현실을  개선하기보다 받아들인 결과가 '동화의 나라' 인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060417  

 

댓글 4

  • 2007년 2월 18일 오후 2:59

    제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인도인데... 두번씩이나 다녀오셨다니 부럽습니다!~ ^^*

  • 2007년 2월 19일 오후 6:19

    좋은여행 이셨던듯 두번씩이나 저도한먼 가보고싶습니다....

  • 2007년 2월 20일 오후 1:51

    프란체스코 형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쓰시는 글 종종 올려 주시고요 또한 회원여러분들 많은 산행기 ,여행기 기타 글들 많이 많이 올려 주세요

  • 2007년 2월 20일 오후 7:35

    이십여년전 봄베이, 타지마할 방문했을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여서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몬순철 수해는 매년 반복되어 기자는 취재에 나설 필요없이 전년도 기사를 다시 옮겨놓으면 된다고 했던 소문.. 사람과 동물의 공생이외에 충격으로 받아졌던 일은 바로 그 사람, 다양한 인종에 놀란 적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됩니다.

기행글.좋은영상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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