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소중함을 알아야
몸의 언어를 느낄 때 영적성장이 따릅니다.
사람들은 영적성장을 위해 영성가를 찾고
많은 영적도서 등을 통하여 도움을 받지만
간접체험으로 받아드려진 것은 실천적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면 지식으로 받아드려질 뿐
직접적인 체험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언어가 인간의 삶 안에서 소통되기 전
인간은 상호 뜻을 소통하기 위해 몸짓,
손짓, 발짓 등으로 서로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안간 힘을 쏟았음을 고대문명과 문화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습니다,
육체는 본질적으로 우리 존재 안에 속해 있으며
말하는 행위 안에 소리와 의미도 결합되어 있음으로
인간이 존재한다는 행위 자체 안에도 육체와 영혼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육체가 없는 가운데 영혼이 있을 수 없고
영혼이 없는 가운데 육체가 살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죽으면 육체와 영혼이 갈라져서
육체는 땅에 묻히고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은 무엇이 부활인가요?
영혼이 하느님의 숨결이고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생명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더 이상 부활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바오로 성인은 인간의 육체를 성령의 궁전으로
정의하여 말합니다.
성령의 궁전이라 함은 곧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영혼들만 들어가서
복락을 누리는 곳이 아니라 육신이 부활되어
영과 함께 복락을 누리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통해 성령의 궁전이 되고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육체가 성령의 거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됨을 깨닫고
그리스도인으로 위탁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어떤 자긍심으로 우리 맡겨진 육체를 관리해야하는지
분명한 답을 얻은 것 같습니다.
거룩함으로 불린 우리들이 육신을 거룩하게 만들지
못할 땐 이 또한 불경의 죄를 짓게 됩니다.
교회가 부활을 고백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영혼만이 천국의 복락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육신이 부활되어 영혼과 함께 천국에서
복락을 누림을 가르치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위탁된 육신이 자신의 것이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위탁된 육신이고 죽음의 순간까지 잘 관리하여
육신을 부활시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면
마지막 날 부활된 육신을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려드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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