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시간과 관상생활

2004. 8. 4. 오전 11:35:49

글자

현대인의 시간과 관상(觀想)생활<헨리 나웬>

시간은 항상 우리의 커다란 적이 될 수 있다.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 자주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것 같다.

우리는 말한다.

”나는 내가 해야 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다.

오늘 내가 해야 될 모든 일들을 생각만 해도 나는 피곤하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시간이 없음을 느끼고 있지만, 시간은 그들을 잡고 있다.

조급함의 묘한 의미가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누가 또는 무엇이 우리를 떼밀고 있는가?

나는 살아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것 같다”고 의아스럽게 생각할 만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시간이 불투명하고 어두우며,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크로노스(Chronos)로 체험된 시간이다.

인생이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과 사고들을

닥치는 데로 수집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한 삶의 체험들은 자주 지루함을 가장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지루함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거나

우리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말하거나 실제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느낌으로

괴로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지루함은 크로노스인 시간 안에 살고 있다는 징후이다.

관상(觀想, contemplation) 생활은

시간이 천천히 자신의 불투명함을 잃고, 대신 점점 투명하게 되어 가는 삶이다.

이것은 보통 대단히 어렵고 느린 과정이지만, 재창조의 힘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루, 한 주간, 한 해의 많은 사건들은

충만한 삶을 탐구하기 위한 여정 가운데서 일어난 단순한 사건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충만한 삶을 향한 여정 그 자체라는 것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편지를 쓰고, 수업을 기다리고, 사람들을 방문하며

그리고 요리를 하는 것이 가장 심오한 나 자신을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는

부질없는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건들 안에 우리가 찾는 변화시키는 힘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다면,

이때 비로서 우리는 크로노스(Chronos)로 생활하는 시간에서

카이로스(Kairos)로 생활하는 시간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카이로스(Kairos)란 바로 기회를 의미한다. 그

것은 알맞은 시간, 바로 그 순간, 우리 삶의 기회를 의미한다.

우리의 시간이 카이로스(Kairos)가 되면 우리에게 끝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고,

마음이 변화될 수 있는 지속적인 기회를 제공해 주게 된다.

예수님의 생애 안에서 모든 사건은 카이로스가 되고 있다.

그분은 당신의 공적 직무를 “때가 차서”라는 말로 시작하시며,

하나의 기회로서 그 모든 순간을 생활하신다.

결국 그분은 당신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며,

카이로스인 당신의 마지막 시간으로 들어가신다.

이렇게 하시면서 그분은 그 숙명적인 연대기에서 역사를 해방시키신다.

이러한 사실은 정말로 기쁜 소식이다.

왜냐하면 삶의 모든 사건들은 전쟁, 기아와 홍수, 폭력과 살인처럼

어두운 사건들일지라도 철회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 안에 변화의 바로 그 순간이 될 가능성을 동반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생명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장소를 찾아

더 이상 현재로부터 도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는 첫번째 표징을 현재의 중심 안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순간은 무한한 의미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지루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시간은 정말로 투명하게 된다.

그러므로 관상(觀想, contemplation) 생활은

좋지 않은 많은 순간들 사이에 어떤 좋은 순간들을 제공해 주는 삶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순간을 비가시적인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으로 변형시켜 주는 삶이다.

우리의 시간은 하느님의 시간이라는 것과

그러므로 모든 시간은 카이로스라는 것을 아주 구체적인 생활 환경 안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시람들은

(특히 노인들, 가난한 이들 그리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속박되어있는 이들)

숙명론의 유혹을 받고 있다.

이러한 숙명론의 사슬을 부숴 버리고,

자신들의 삶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의 참된 본질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때,

비로서 우리는 정말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눈먼 이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그리고 포로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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