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깊은 단계에 이르면 이른바 "감각의 밤"에 맞다뜨리게 된다. "감각의 밤"이란 영혼을 매우 고통스러운 상태에 빠뜨려 인내심을 가혹하게 시험하는 무미건조한 상태의 연속을 말하는데, 많은 이들이 기도생할을 포기할 만큼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다. 그렇다면 "감각의 밤"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 단계부터는 하느님께서 스스로 당신을 내어주시기 시작하지만 인간의 감성을 넘어 순수한 영을 통해 자신을 주시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이전까지는 개념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추리를 통해 묵상하던 것이 기도가 깊어지면서 추리가 아닌 순수 관상 단계로 나아감에 따라 영혼의 하부구조인 내, 외적 감각이 하느님의 순수한 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기도하는 이는 결단코 이 단계에서 좌절하거나 멈추지 말고 하느님을 향해 좀더 깊은 단계로 전진해야 한다. 완전한 기도란 자신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기도이다. 기도하는 도중에 내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 생각마저도 잊을 수 있는데, 이는 자신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순수한 의식" 상태다. 인식하는 자도 사라질 뿐 아니라 인식의 대상도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신적 일치"다. 이 체험은 일시적이지만 이 체험이 관상상태로 이끌어 간다. 내가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음을 느끼는 한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룬 것이 아니다. 어떤 사고가 있는 한 그것은 완전한 일치가 아니다. 완전한 일치 순간에는 아무런 사고가 없다. 그기에서 빠져 나올 때까지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경험이 너무 희미해서 잠자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하느님과 하나 되었다"고 느끼는 자아 성찰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수준에서 일치를 이룸은 순수한 의식 상태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지식이 유입되는 것이며, 그기에 성찰같은 것은 없다. 관상기도의 목표는 사고를 없애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상기도 중에 우리는 사색이나 의지의 행동을 멈춘다. 사랑에 뿌리를 두고 하느님 현존을 인식하게 되는 특별한 종류의 지식이 생겨나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간다. 관상기도를 태양이라고 가정해 보자. 태양은 빛과 열로 되어 있다. 하느님을 태양이라고 한다면 빛은 순수한 의식(지성)으로, 그리고 열은 순수한 사랑으로 비유된다. "나"라는 유리가 맑고 순수할 때 빛과 열이 잘 전달될 수 있음은 자명한 이치다. 무신론적 신영성은 빛, 즉 의식(지성)에 치우친 면에 있다. 다시 말해 수련을 통해 자신을 맑게 함으로써 세상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보는 지혜를 얻지만 아쉽게도 이같은 지혜를 얻는 것에 그칠 뿐 구체적 사랑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관상기도와 여타 신영성을 구별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그리스도교는 단지 지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이웃사랑에 적극 투신하게 한다. 지혜와 사랑을 겸비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맛볼 수 있는 관상기도의 열매와 효과는 무엇일까. ①자신의 삶속에 침묵의 맛이 생긴다. ②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배운다. ③다른 이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 선을 본다. ④주고 받는 것에 마음을 여는 것을 배운다. ⑤일상 기도생활이 풍성해진다. ⑥행동하는 동기가 더욱 분명해진다. ⑦내적 치유가 일어나고 다른 이들과 자연스래 화해하게 된다. ⑧세상에 봉사하고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듣는다. 아울러 관상을 수행하는 사람은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도 좋은 효과를 얻는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전에는 온갖 종류의 불안, 두려움, 긴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쁨, 평화, 고요함이 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아주 평화스럽게 뜻밖의 방법으로 해답을 찾아 낸다. 그렇게 좋은 해답이 나의 지혜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그런 해답이 나온 것을 깨달을 뿐이다." "하느님과 그분 성령의 실제에 대한 확신이 자란다. 하느님이 아버지이심을 감지하고 그분이 나를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기 이전에 내 안에 있던 증오와 부정적 느낌은 없어지고 이제는 나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을 느끼고 있다" <박순원 신부: 평화신문에서>
관상기도의 열매와 효과
2004. 7. 28. 오전 10:4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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