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마저 있어야
글 : 유시찬 보나벤뚜라 신부님, 서강대 이사장
‘없는 것’마저 들어가야 비로소 완전한 것이 된다
소시적에 학교 수업은 하루도 아니 한 시간도 빠져선 안 되었다.
무슨 개근상을 타고 싶은 욕심 때문은 아녔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다 흡수해야만 했었다.
그래야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러 가도 대충 좀
시작한 다음에 들어가는 건 질색이었다.
대한뉴스부터 아니 그 이전의 광고 장면까지 모두 다 봐야만 되었다.
완전 하고픈 욕망은 그렇게 내 안에서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나는 움직였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있어야만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
허나,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완전을 추구하는 자세가 바뀐 게 아니라,
무엇이 완전한 것인가 하는 점에 있어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수업을 한 시간도 빠짐없이 다 들어야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빼곡하게 들어차야 완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불완전하다.
한두 시간쯤 안 듣는다는 것, 없다는 것,
이것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없는 것’마저 들어가야 비로소 완전히 ‘다 있는,’
모두 갖춘, 완전한 것이 된다.
사람도 뭔가 좀 허술한 곳이 있어야,
빈 듯한 면이 있어야,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본래부터 완전한 것을 좋아하지
불완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허술하고 빈 곳이 있어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런 빈 곳,
허점이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하다고 자기도 모르게 인식하는 가운데,
이런 완전함에 대해 편안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잡는다는 것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만 쏠리지 않는 것,
‘있음’(有) 중심으로만 기울지 않고
‘없음’(無)의 추도 무겁게 해서 균형을 잡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완전하다고 하는 것이고,
하느님이 완전하다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알아들어야 한다.
삶뿐만 아니라 죽음이 끼어들고,
건강뿐만 아니라 질병이 끼어들고,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추한 것도 끼어들고,
부유한 것뿐만 아니라 가난한 것도 끼어들고,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도 끼어들고,
우수한 것뿐만 아니라 열등한 것도 끼어들 때
비로소 우리는 완전함이 주는
기쁨과 평화와 고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성공일변도로, 부유일변도로,
아름다움일변도로 치달릴 때 얼마나 심한 경쟁이 일어나며
그로 인해 긴장과 스트레스와 고통을 불러일으키는지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로선 온몸으로 느끼며 알고 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를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완전한 사람들로 만드셨다.
그래서 우린 완전하게 살아가야 한다.
있음과 없음의 균형이 잘 잡혀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 균형이 깨어지면 덜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살핀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잘 살아냈는지가 아니라,
적당히 잘 하면서 적당히 잘 못하고,
적당히 힘에 넘치면서 적당히 무기력에 떨어지고,
적당히 건강하면서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기쁘면서 적당히 슬펐는지를 살핀다.
너무 밝았다 싶으면 어두움을 좀 드리울 것이고,
너무 어두웠다 싶으면 좀 빛을 더할 것이다.
재밌는 놀이를 하듯.
멋들어진 외줄타기의 묘기를 연출하면서.
그래서 내친 김에 말한다.
죄인이기 때문에 비로소 완전한 사람이 되었노라고.
이미 죄의 독화살은 해독되었고 상해를 입힐 수가 없게 되었다.
하느님 손바닥 안에서 이뤄지는 죄다.
그 죄를 통해 하느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깊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죄를 슬퍼하지 마라. 오히려,
죄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과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함을 슬퍼하라.
《출처 : 가톨릭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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