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들의 주보이신 성녀 안나
글 : 정하돈 ,포교 성 베네딕또회 수녀님
매년 7월 26일이면 교회는 성녀 안나의 축일을 지낸다.
현대에서는 성녀 안나에 대한 특별한 공경이나
풍습 및 전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더욱 성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4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서기. 180년경에 쓰여진 외경(外經)에는
마리아의 출생과 어린 시절,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전해지고 있고
서기 5세기의 다른 복음에서도
'마리아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요아킴은 나자렛에서, 안나는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다.
요아킴과 안나는 재산이 많은 부유층에 속했으며
그들은 전 재산의 1/3을 사제와 성전을 위해서,
1/3은 자선사업을 위해서, 나머지는'
자신을 위해서 사용한 의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이스라엘에게 후손을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 큰 치욕이었으므로, 존경받던 요아킴이였지만
한 때 제관장으로부터 성전 밖으로 내쫓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니
천사 가브리엘은 그들에게 나타나
한 아이의 출생을 예고하였다.
이 출생은 하느님의 직접적인 관여를 통해서
모든 자연적인 기대를 벗어나,
즉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로써 주어진 것이다.
요아킴은 세 살된 딸을 성전으로 데려가
그녀를 봉헌하는 서원을 하였다. 마리아는 성전에서
'천사의 손에서부터 모이를 쪼아먹는 비둘기처럼'
음식을 받아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리고 열두 살이 되었을 때
하느님의 아름다운 '표징'(sign)을 통해서
목수 요셉의 보호 아래 맡겨지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본래의 전설 이야기이다.
야고보 성서에 의하면 크리스찬들은
예수의 '양 아버지'인 요셉을 공경하기 휠씬 이전인
1세기 초에 성녀 안나를 공경하였다 한다.
예루살렘에서는 이미 AD 500년경 성녀를 특별히
공경하는 교회를 순례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와 같은 때에 로마의 성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서는
성녀 안나를 성화 한가운데 세워서
거의 주인물로 나타낸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성녀에 대한 성화 및 그리스도교적 예술은 대단히 많다.
그러나 안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전해지지 않았다.
본래의 생애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성인들의 유해를
공경하는 예식이 성행하던 8세기에 시작하였다.
709년경에는 로마에 <성 안나> 성당이 세워졌고,
9세기에 희랍 수도자는 혼인성사 때
"하느님, 당신께서 요아킴과 안나를 강복하셨듯이
이 부부를 강복하소서"하는 기도와 함께 축복을 주었다.
또한 11세기경에는 성녀를 주보로 하는
여러 공동체들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성녀 안나는 여러 시민층의 주보이시다.
뱃사공은 순풍을 기도했고, 광부, 피혁공, 목수, 신 깁는자,
밧줄꼬는 자 등도 성녀의 보호를 청하였다.
성녀는 또한 상인, 노동자, 가정주부들의 주보이시기도 하다.
이처럼 성녀는 모든 시민층의 주보이시지만
특별히 어머니와 가난한 자의 병든 자들의 주보이시다.
성녀를 특별히 공경하는 예식이 지나치게 성행되자
일부 신학자들 간에 논쟁이 벌어져 한 때 금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대에 동정녀 마리아의 무염시태 학설을
지지하는 자들이 많아지자 성녀 안나를 공경하는 예식은
점점 더 새롭게 그리고 깊어져만 갔다.
현대인들이 찾고 바라는 어머니의 상이란
바로 '안나의 상'이 아닐까? 모든 어머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되기 전에 먼저 어머니이다.
어린이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결혼한 자식이
또한 자녀를 가지게 된다 해도
어머니는 항상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지상에서만이 아니고 천상에서도,
아니 오히려 이 세상에서보다도
더 깊은 방법으로 어머니인 것이다.
훌륭한 어머니는 기도하며
자녀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치는 자이다.
훌륭한 어머니는 또한 자신의 생활과 모범으로써
자녀들을 보다 더 가까이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자이다.
-1975년 경향잡지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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