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예레 15,10.16-21
10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16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17 저는 웃고 떠드는 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 18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19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20 그러므로 이 백성에게 맞서,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 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건져 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1 내가 너를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무도한 자들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내리라.”
복음 마태 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며칠 전, 저녁이었습니다. 저녁식사 전에 성무일도를 바친 뒤에 조용히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졸고 있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으면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보았는데, 6시 10분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교구청의 저녁식사 시간이 6시이거든요. 시간 맞춰서 식사 준비를 해 주시는데, 늦게 들어가면 함께 식사하시는 분들 뿐 아니라 식사준비를 해주시는 자매님께도 죄송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얼른 일어나 식당으로 뛰었습니다.
식당 문을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식당 안에는 신부님들이 한 명도 없습니다.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자매님들께서는 저를 보더니 “신부님 왜요? 무슨 일 있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기도하다가 식사 시간에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식사 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나 봐요?”라고 물었지요. 알고 보니, 제가 시간을 잘못 본 것이었습니다. 식당에 들어간 시간은 5시 40분. 시계를 잘못 봐서 늦었다고 착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기도시간에 졸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기도시간에 존 것을 가지고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중요한 순간에 졸았으니까요. 그것도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초조하게 기도하고 계실 때에도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에서 말하는 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잠은 더 이상 하느님을 찾기 싫고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기도하지만 마음으로는 그 기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속에 함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잠은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꾸준히 걸어가는 데 지치고 싫증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저 역시 몸이 피곤해서 졸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꾸준히 걸어가는데 지친 모습을 잠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고, 또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보물과 진주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주 게으름 속으로 내 자신을 밀어 넣고 있습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다음 기회에...’등의 말을 사용하면서 주님께 꾸준히 걸어가지 못하고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데 지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소중한 길이며, 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길이기에 포기하지 말고 이 길을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보물과 진주로 비유되는 하늘 나라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니까요.
기쁜 일은 서로의 나눔을 통해 두 배로 늘어 나고 힘든 일은 함께 주고받음으로써 반으로 줄어든다(존 포웰).
주님의 선물을 받기 위해.....
신학생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학년 대항 축구 시합이 있었는데, 저희 학년이 2:0으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끝날 시간도 몇 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팀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수비 위주의 경기 운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한 골을 빼앗겼습니다. 이제 2:1. 아직도 이기고 있었기에 계속 시계만 바라보면서 종료 휘슬이 울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종료 직전에 한 골을 또 빼앗겨서 결국 연장전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팀은 지고 말았지요. ‘공격이 최고의 수비다.’라는 말도 있듯이, 공격하지 않고 수비만 했던 것이 오히려 패배할 빌미를 마련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끝나기만을 바라는 마음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삶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삶 자체에 집중해야 하는데, 먼 훗날에 있을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미래는 미리 준비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주어지는 주님의 커다란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