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2011. 11. 30. 오전 6: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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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제1독서 로마서 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복음 마태오 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커피를 즐겨 마셨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마시던 커피와 요즘 마시는 커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우선 어렸을 때에는 이 조합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커피 한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때로는 2:3:2의 조합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1:2:3의 조합을 사람들이 좋아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타서 마시는 사람이 커피 좀 마신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마시지 않습니다. 아마 이렇게 마시면 “촌스럽다”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마시지 않지요. 아니 이러한 커피 자체를 마시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즉, 저는 이제 아무것도 넣지 않은 블랙커피를 마십니다.

어렸을 때 저희 집에서 누님만 지금의 저처럼 블랙커피를 마셨습니다. 그 당시에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지요. 커피는 설탕 맛인데, 어떻게 설탕을 전혀 넣지 않고 마실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커피 순수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블랙커피가 너무나 좋습니다.

과거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결코 같을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지금의 내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과도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맛이 바뀌는 것처럼 우리의 외모도 바뀌고 성격도 바뀌고 또한 능력까지도 바뀌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의 내 모습이 먼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절대로 그러한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무책임하게 그냥 놔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그냥 방치하시는 무책임하신 주님이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시고 키워주시는 사랑 가득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시고 부르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능력과 재주가 많고, 성격이 좋아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그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지요. 배운 것도 없고, 고기 잡는 것 외에는 별다른 능력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의 다른 부분을 봐도 그에게 어떤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성공적으로 알리지요.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기에 ‘엑스’(X)자형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까지 하십니다.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해 곧바로 응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안 됩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등등의 부정적인 말로 주님 부르심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곧바로 따라갔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부르심에 망설임 없이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지금의 내 모습보다 훨씬 더 성장 하는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섣불리 예상하지 말라. 특히 미래에 대해선.(케이시 스텐겔)



불안함

성 안드레아 사도

신학교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재미있는 일도 많이 발생하지요. 제가 어제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장난이 많은 한 학생(지금은 신부님이 되셨습니다)이 옆 방 친구(역시 신부님이 되셨습니다)를 골탕 먹이려고 작전을 세웠습니다. 바로 자고 있을 새벽 시간에 자명종이 울리도록 맞춰 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곳에 자명종이 있으면 얼른 일어나 끌 것 같으니, 옷장에 하나의 자명종을 그리고 10분 뒤에 울릴 또 다른 자명종을 침대 밑에다 넣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이 친구는 숨겨둔 자명종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하면서 범인이 누구냐며 친구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장난 친 학생이 물었지요.

“자명종이 두 개밖에 없었으니까 두 번만 깼을 텐데 왜 밤을 꼬박 샜어?”

이에 이렇게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자명종이 있을 것 같아서 불안해하며 계속 기다리다 보니 나중에는 잠이 아예 오지 않더라고.”

더 이상 있지 않은 자명종. 그런데 또 하나의 자명종이 있지 않을까 라는 불안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불안감이란 이렇습니다. 있지도 않는 것을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지금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불안감입니다. 이 불안감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주님께 맡기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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