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

2011. 11. 27. 오전 9: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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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

제1독서 이사야 63,16ㄹ-17.19ㄷ; 64,2ㄴ-7

16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 예로부터 당신 이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17 주님, 어찌하여 저희를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 마음이 굳어져 당신을 경외할 줄 모르게 만드십니까? 당신 종들을 생각하시어, 당신의 재산인 이 지파들을 생각하시어 돌아오소서.
19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
64,2 당신께서 내려오셨을 때 산들이 당신 앞에서 뒤흔들렸습니다. 3 당신 아닌 다른 신이 자기를 고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하였고 아무도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어떠한 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4 당신께서는 의로운 일을 즐겨 하는 이들을, 당신의 길을 걸으며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당신의 길 위에서 저희가 늘 구원을 받았건만 5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과 같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6 당신 이름 부르며 경배드리는 자 없고, 당신을 붙잡으려고 움직이는 자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희를 외면하시고, 저희 죄악의 손에 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7 그러나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제2독서 1코린 1,3-9

형제 여러분,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8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9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복음 마르코 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한 미국인이 충청도 지방을 여행을 하다가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이발사는 자신의 가게를 찾은 외국인을 보고는 깜짝 놀랐지요. 더군다나 이 미국인은 한국말을 전혀 하지 않고 영어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어를 못하는 이 이발사는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그래서 망설이다 충청도 사투리로 말했습니다.

“왔시유?”

그런데 미국인은 서투른 영어로 “What See You?”하는 줄 안 것입니다. 즉, 무엇이 보이냐고 묻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앞에 있는 거울을 보고서는 “Mirror”(거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이발사는 그냥 밀라는 줄 알고 그의 머리를 박박 밀어 버렸다고 합니다.

서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우리는 얼마나 소통이 되고 있습니까? 당신 뜻에 맞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사랑을 보여주시는 주님에 대해 우리들의 응답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세상의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함으로 인해,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소통, 즉 서로 통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먼저 당신 자신을 낮추셨지요. 즉, 2천 년 전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해서 이 땅에 강생하셨습니다. 그냥 전지전능하신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우리와 완벽하게 소통하시기 위해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것도 가장 힘없고 연약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당신 자신을 낮춘 주님에 비해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주님과 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우리 역시 스스로를 낮춰서 사랑을 실천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이발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머리숱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발을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지저분하게 보이지요. 거울을 통해 문득 본 제 모습이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이발을 했던 것입니다. 이발사는 이발을 마치고 저에게 이러한 말을 하더군요.

“머리숱이 정말로 많네요. 이제 이발을 했으니 머리가 가볍지 않습니까? 이렇게 무거운 머리카락을 들고 다녔으니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게 많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다녔어도, ‘머리가 무거워서 도저히 못살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발을 하고 나서야 그동안 얼마나 무거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 역시 평상시에는 그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 지 알 수 없습니다. 깊은 성찰과 반성 그리고 고해성사를 통한 죄고백과 용서로 비로소 그 동안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깨닫고, 영적으로 가벼워진 내 자신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림시기입니다. ‘깨어 있어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깨끗한 내 자신을 만들어야 하며, 동시에 주님과 소통하기 위해 나를 낮추는 작업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마주 닿는 가슴이다.(천양희)



나의 똥파리

힘든 자전거. 그러나 건강해집니다.

사자는 일단 먹이를 먹으면 위를 가득 채운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소화가 될 때까지 1주일이고 2주일이고 잠만 자지요. 그런데 이렇게 꼼짝도 않고 있으면 건강할까요?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계속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걸리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사자 역시 이렇게 꼼짝 하지 않고 있으면 소화불량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자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도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별한 위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동물학자들은 사자가 특별한 위장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근본적인 이유를 찾게 되었지요. 바로 ‘똥파리’라고 합니다. 이 똥파리는 사자의 몸 구석구석에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 먹습니다. 따라서 사자는 자다가도 피를 빨아 먹는 똥파리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 움직이다보니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 것이랍니다.

사자의 입장에서 똥파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잠도 못 자게 하는 귀찮은 존재, 또한 아픔도 가져다주는 제발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지요.

고통과 시련이 제발 내 곁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고통과 시련이 내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 나의 똥파리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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