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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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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마카베오 하 6,18-31
그 무렵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19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20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22 그렇게 하여 엘아자르가 죽음을 면하고, 그들과 맺어 온 오랜 우정을 생각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23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애, 많은 나이에서 오는 위엄, 영예롭게 얻은 백발, 어릴 때부터 보여 온 훌륭한 처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법에 합당하게 고결한 결정을 내린 다음, 자기를 바로 저승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복음 루카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어디를 가다보면 사람들로부터 종종 사인 부탁을 받습니다. 이번에 출판된 책에 저자 사인을 해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며칠 전에는 사인을 하면서 아주 엉뚱한 글을 적고 말았습니다. 평상시 사인을 하면서 ‘늘 행복하세요.’ 식의 짧은 글을 써서 드리는데, 이 글을 써야겠다고 하면서 엉뚱한 글을 쓴 것입니다. 사실 바로 직전에 어떤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따라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책에다 쓴 것입니다.
어떤 형제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자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요즘 자금문제로 인해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주일날 미사 해설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주일 미사 해설을 하면서도 돈 생각이 자신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입당성가 해설을 이렇게 하셨다고 하네요.
“모두 일어서십시오. 입당성가 200원 부르겠습니다.”
딴 생각을 하면 당연히 제대로 행동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도 이렇지 않을까요? 기도하겠다고 성당에 가서 딴 생각만 계속하고 있으면 주님의 은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또한 미사 참석하는 것을 짐으로만 생각하면서 성당에 들어간다면 그래서 성의 없이 미사 참석을 하는 것 역시 주님의 은총과 멀어지는 지름길입니다.
어제 강론에도 썼지만, 지난 주일에 50주년 모금 강론을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모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경직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이제 주님께 바칠 축복의 시간이 왔구나!’는 긍정적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주일 미사를 보면 미사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천천히 걸어오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을 보며 주님을 만나기 위해 빨리 성당 안에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또한 주님을 제일 가까이 만나기 위해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두르는 분들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아마 주님께서도 당신을 향한 봉헌에 기쁘게 응답하는 사람, 또한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서두르는 우리들에게 분명히 더 큰 사랑과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를 보십시오. 그는 세관장이었으며 또 부자였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 역시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사회적 체면을 무시하고 돌무화과나무 위로 서둘러 올라갑니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힘들게 나무를 타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머물겠다는 말씀을 하시자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재산의 반을 봉헌하고, 자기가 만약 지은 죄가 있다면 어떻게든 갚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주님께 바칠 축복의 시간이 온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따져보았으면 합니다. 서둘러 주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는지, 혹시 체면을 내세워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주님께 대한 봉헌은 어떨까요? 주님께 봉헌하는 것은 모두 아깝다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성의 표시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일로 생활을 유지하고 나눔으로 삶을 만들어 간다(윈스턴 처칠).
행복한 사람
저의 미사 장면.
“형! 왜 물고기는 쉴 새 없이 물 위로 올라가는지 알아?”
“그... 글쎄.... 그냥 심심하니까? 아니면 운동을 해야 오래 사니까?”
“아냐. 물고기는 하류로 헤엄을 치는 경우가 거의 없데. 그 이유는 냇물이나 강물의 흐름에 떠밀려 갈까봐서 라고 하네. 만약 물살에 떠밀려 가면 바다로 나가게 되고 그러면 짠물에 목숨을 잃기 때문이지. 그래서 물고기는 쉴 새 없이 헤엄을 친다는 거야.”
이 물고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우리들은 과연 세상의 물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 지를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지금 물살에 떠밀려 가는 것은 아닐까요? 돈 없고 배운 것이 없다면서 세상 살기 싫다는 분, 세상 안에서 의미가 없다며 모든 것을 포기하시려는 분……. 분명히 물살에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물살에 떠밀러 가지 않으려면 인생의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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