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관계

2005. 6. 8. 오전 10:50:03

글자

(원산지: 교리1 사랑방 자료실)

3.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관계를 서술하시오.

요한 복음은 요한 세자, 성전에서 상인들을 추방베다니아의 마리아와 마르타의 집. 베다티아에서의 기름 바름등 공관복음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나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단어, 문체및 내용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경우

1) 예수 공생활의 과정 및 기간

공관에서는 예수는 먼저 갈릴래아에서 활동하다가 나중에 유데아 지방으로 가고 예루살렘에서 처형되었다가 부활했다고 하지만 요한 복음은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 여행을 네 번 하신 것으로 적혀 있다. 예수가 주로 활동한 곳이 공관복음에 의하면 갈릴래아이고 요한 복음에 의하면 예루살렘이다. 공관에서는 공생활중 J는 유월절을 한 번 맞았으나 요한 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공생활기간에 세번의 유월절을 맞이한다. 공관에서 예수가 며칠 사이에 유대인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 희생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요한에서는 여러번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 유대 지도층을 거슬러 논쟁했기 때문에, 점점 그들의 미움을 받게 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공관복음에서는 예수의 공생활을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끝맺도록 서술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것을 생략했고 요한에서는 예수의 활동과정을 충실히 기술한 것으로 보여진다.

2) 기사와 역사

요한이 취급한 기적은 공관복음에서 취급하는 기사와는 다르다. 요한에서는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이 전연 없는 대신, 공관에는 없는 굉장한 기적들이 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저술했다는 것을 가정하는 경우, 요한사도는 공관복음에서 취급되지 않은 기적들을 의식적으로 골라서 기록함으로써 공관 복음을 보충하려 한 것이다.

3) 예수의 말씀

공관에 나오는 예수의 말들은 쉽게 식별할 수 있고, 일정한 유형을 지닌 짧은 말들(Logia)이다. 반면에 요한복음에 실린 예수의 말들은 짧은 말들이 아니라, 공과에서는 별로 큰 뜻을 지니지 않은 개념 및 용어를 중심으로 짜여진 긴 설교이다. 공관의 예수의 말들이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취한 관계로 익숙한 비유들인 데 반해, 요한복음의 예수는 단조하고 추상적으로 설교하신다.

공관의 주제는 ‘하느님의 왕권과 왕국’인데 요한의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로 시작하는 일인칭 문체는 요한에서 자주 사용된 것이 사실이지만 공관복음에서도 계시하고 명령하는 대목에서는 사용된다.

4)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함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가 메시아임을 점진적으로 밝히고 요한에서는 처음부터 메시아로 등장한다. , 공관에서는 예수가 메시아임을 점진적으로 인식하는 반면에 요한에서는 예수는 단번에 메시아로 알려졌다. 공관에서는 역사적으로 계시의 발달과정을 서술한 것이고 요한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교회의 신앙을 예수의 공생활 시초에까지 소급 연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요한에서는 예수께 대해 메시아 칭호를 별로 자주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메시아 칭호에 대해 이의가 없던 시기라 굳이 칭호를 강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요한사가는 예수의 신성을 공관복음사가들보다 더욱 명백히 밝힌다.

5) 유대교에 대한 태도

공관에서는 예수와 이스라엘이 상합하지 못하고 갈린다. 한때는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예수를 추종했으나, 예수를 떠나 나중에 예수께 머무른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요한에서는 예수와 유대인들의 관계가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 예수를 배척하는 이 유대 백성을 요한사가는 ‘유대인들’이라고 부른다. 요한복음에서는 1세기 말엽 교회와 유대교가 분리된 것을 예수 설교 초창기부터 예수와 유대인들이 분리된 것처럼 소급 서술함으로써 종말에 있은 관계를 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서술한다.

6) 교회

사도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신자들과 외교에서 개종한 신자들간의 율법의 유효성, 할례의 필요성, 안식일문제, 금지된 음식 문제, 정결법등에서의 일치를 도모하는 일이었다. 요한 저술당시에는 이미 이 문제들은 해결을 보았던 것들이다.

요한의 교회관은 새로운 세말관에 의해 조성된다. 공관에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는 하느님의 통치권이 세상에까지 미쳐서, 이 세상에 구원의 질서가 세워지기를 비는 것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는 ‘내 성부의 나라에는 거처할 방이 많이 있다‘라고 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세상에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교회가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 공관에서는 세말이 오기를 고대하는 데 반해 요한은 신자들이 신앙으로 그리스도와 합치하는 생활을 하면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고 세말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 공관과 비교해서 요한에서는 세말의 미래성보다 세말이 벌써 신앙을 통해서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7) 문헌적 관계

공관과 요한의 상호간의 문헌사적 관계에서 한 가설로 제시되는 것이 요한복음은 독자적인 복음이 아니고, 다른 복음을 보조하는 구실을 한다는 보충 가설이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독존 가설을 따른다. 이는 독자적인 복음을 저술한 이유는 예수의 말씀과 업적을 신학적으로 해설하기 위해서라는 이 가설을 오늘날 학계에서 따르고 있다.

두 복음간의 관계를 제일 먼저 밝히려고 한 분은 알렉산드리아 출신 끌레멘스이다. 그는 공관복음사가들이 예수의 생활의 외적이고 육적인 면을 충분히 서술한 것을 보고, 요한 복음사가는 영적인 면을 드러내는 복음을 저수했고 사실 요한 복음의 기독상은 다른 복음의 기독상에 비해서 훨씬 더 깊고 크며 영적이다.

 

댓글 2

  • 2005년 6월 9일 오후 4:32

    퍼 갑니다....감사..^^

  • 2005년 6월 11일 오전 10:56

    저도 커닝합니다 ^^ ㄳ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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