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6.4. 커뮤니케이션 윤리 (교황청 훈령)

2005. 8. 7. 오전 4:34:43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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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커뮤니케이션 윤리

 

ETICA NELLE COMUNICAZIONI SOCIALI

 

2000.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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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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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II. 인간에게 봉사하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III. 인간의 선익을 해치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IV. 몇 가지 중요한 윤리 원칙들
IV.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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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1. 인간이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큰 선익을 얻을 수도 있고 큰 해악을 입을 수도 있다.
흔히 '매체'가 선익이 되기도 하고 해악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고, 여기에서도 자주 그러한 언급을 하겠지만, 그것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맹목적인 자연의 힘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예기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매체가 좋은 목적에 이용되는가 나쁜 목적에 악용되는가, 또는 올바른 방법으로 이용되는가 나쁜 방법으로 악용되는가 하는 것은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윤리 문제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선택은 커뮤니케이션의 수용자들, 곧 시청자, 청취자, 독자뿐 아니라 특히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관리하고 그 조직과 정책과 내용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한다.
여기에는 공직자, 회사 중역, 이사, 소유주, 발행인, 방송국장, 편집인, 뉴스 책임자, 프로듀서, 작가, 통신원, 기타 여러 사람이 포함된다.
그들에게 매체가 선용되는가 악용되는가 하는 윤리 문제는 특히 민감한 문제이다.

 2.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영향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매체를 통하여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사건들을 만나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형성하며,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흔히 매체에서 얻는 경험을 통하여 삶 자체를 경험하기도 한다(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새로운 시대][Aetatis Novae], 2항 참조).

기술의 변화는 빠른 속도로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보급시키며 더욱 강력한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정보 사회의 출현은 진정한 문화 혁명"(교황청 문화평의회, [문화에 대한 사목적 접근][Per una Pastorale della Cultura], 9항)이며, 20세기의 눈부신 기술 혁신은 새 세기가 가져다 줄 변화의 서막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선진국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매체의 범위와 다양성은 이미 놀라울 정도이다.
책, 잡지,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 비디오, 오디오, 음반은 물론, 무선이나 케이블, 위성, 인터넷을 통하여 전달되는 전자 커뮤니케이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에는 딱딱한 뉴스에서 순수 오락, 기도에서 외설, 명상에서 폭력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광범위하다.
매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을 키울 수도 있고,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자기 도취나 자기 중심의 자극적 세계에 빠져 고립될 수도 있다.
매체를 멀리하는 사람들조차 매체의 영향을 심각히 받는 사람들과 접촉을 피할 수 없다.

3. 이러한 이유와 함께, 교회가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관심을 갖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신앙에 비추어 볼 때,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의 붕괴를 상징하는 장소인 바벨탑(창세 11,4-8 참조)에서부터 성자께서 보내신 성령의 힘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복구되는 성령 강림 사건과 이상한 언어의 선물(사도 2,5-11 참조)에 이르는 오랜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기쁜 소식을 알리러 세상에 파견된(마태 28,19-20; 마르 16,15 참조) 교회는 시간의 종말에 이를 때까지 복음을 선포할 사명이 있다.
오늘날 복음 선포를 위해서는 매체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을 교회는 잘 알고 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Inter Mirifica], 3항; 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45항; 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37항;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일치와 발전][Communio et Progressio], 126-134항; [새로운 시대], 11항 참조).

교회는 또한 자신이 친교(communio)임을 알고 있다.
곧 교회는 인간들 사이의 친교이며, "성삼위의 친교에 뿌리를 두고 그것을 반영하는"([새로운 시대], 10항; 신앙교리성, [친교로서 이해되는 교회의 몇 가지 측면들][Some Aspects of the Church Understood as Communion] 참조) 성찬 공동체들의 친교이다.
실제로 인간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커뮤니케이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성삼위의 친교는 더 나아가 인류와 맞닿아 있다.
성자께서는 말씀이시며, 성부께서는 그 말씀을 통하여 영원히 "말씀하신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과 당신의 구원을 전하신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성삼위의 사랑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성삼위와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4. 교회가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접근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교회는 단순히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들 도구를 탁월한 인간 재능의 산물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위대한 선물이고 시대의 참된 징표로 여기고 있다(사회 매체 교령, 1항; [현대의 복음 선교], 45항; [교회의 선교 사명], 37항 참조).
교회는 명확한 원칙을 정하여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작업에 도움을 받도록 지원하는 한편,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대화를 촉진시켜 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목적이 이 문서의 바탕을 이룬다.

거듭 말하지만, 매체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매체는 사람들이 쓰고자 하는 용도에 따라 이용되는 수단이며 도구일 뿐이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대하여 고찰하면서, 우리는 기술의 진보가 제기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 곧 기술 발달의 결과로 인간이 "정말 더 나아지고 있는가? 말하자면 영성적으로 더욱 성숙하며, 인간으로서 품위를 더욱 의식하고, 더욱 책임 있고, 다른 사람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궁핍하고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마음을 열며, 주려는 마음과 모든 이를 도우려는 마음이 더욱 생기는가?"([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 15항) 하는 문제에 정직하게 대면하여야 한다.

우리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관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떠한 위치에 있든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양심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공직자, 정책 입안자, 회사 경영자들은 그들이 이해하는 정도만큼 공공 이익을 존중하고 증진시키고 싶어한다.
독자와 청취자와 시청자는 자기 시간을 개인적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유용하게 활용함으로써 더욱 행복하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부모들은 매체를 통하여 그들 가정에 들어오는 것들이 자녀들에게 유익하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은 자기 재능을 인류 가족에게 봉사하는 데 쓰고 싶어하지만, 여러 매체 분야의 윤리 기준을 낮추려는 경제적 이념적 압력의 증대로 고민하고 있다.

매체와 관련된 이 모든 사람이 내리는 무수한 선택의 내용은 집단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다르지만, 그 모든 선택은 윤리적 중요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윤리적 평가를 받게 된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선택하는 사람들이 "윤리 규범의 원칙을 반드시 알고 이를 충실히 실천에 옮겨야 한다"(사회 매체 교령, 4항).

5. 교회는 이러한 교류에 많은 기여를 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계시와 인간의 성찰에 뿌리를 둔 오랜 도덕적 지혜의 전통을 가져다 준다(요한 바오로 2세,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 36-48항 참조).
점점 증대하는 중요한 사회 교리 내용이 그러한 전통의 일부로서, 그 신학적 방향은 "인간에게서 그의 주요 차원의 하나인 정신적 차원을 제거하는 '무신론적' 해결과, 다양한 핑계를 내세워 인간이 모든 법과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설득시키려는 지나치게 관용적이고 소비적인 해결"(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Centesimus Annus], 55항)을 바로잡는 데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전통은 단순히 판단을 내리는 차원을 넘어서 매체에 대한 봉사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교회의 지혜 문화는 매체의 정보 문화가 의미 없는 사실들의 축적이 되지 않도록 해 준다"(요한 바오로 2세, 제33차 홍보 주일 담화, 1999년).

교회는 교류에 또 다른 기여를 한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세계를 포함하여 교회가 인간사에 끼친 공헌은 "바로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 안에 명백하게 나타난 인간 존엄에 대한 이해"([백주년], 47항 참조)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새 아담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신비와 그 사랑의 신비를 알려 주는 바로 그 계시 안에서 인간을 바로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시고 인간에게 그 지고의 소명을 밝혀 주신다"(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22항).

 

II. 인간에게 봉사하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6.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사목 훈령 [일치와 발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30-31항 참조)에 따라, 매체가 사람들을 도와 공동체 안에서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도록 함으로써 인간 존엄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요구받고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매체가 그러한 역할을 다하려면,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며, 상호 책임 의식을 키우고, 개인의 자유를 누리면서 다른 사람의 자유도 존중하며 대화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의 행복과 완성을 촉진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른 문서에서도 그러하였던 것처럼 전체적인 개관만을 제시하면서, 매체가 가져다 주는 몇 가지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종교적 선익들(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광고 윤리][Ethics in Advertising], 4-8항 참조)에 주목하고자 한다.

7. 경   제
시장은 도덕 규범이 아니며 도덕 가치의 원천도 아니다.
더욱이 시장 경제는 악용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은 인간에게 이바지할 수 있으며([백주년], 34항 참조), 매체는 시장 경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수행한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사업과 교역을 지원하고, 경제 성장과 고용, 번영의 촉진을 도와주며, 기존 상품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한편 신상품의 개발을 장려하고, 공공 이익에 봉사하는 책임 있는 경쟁력을 키우며, 사람들에게 제품의 유용성과 특징을 알려 줌으로써 정보에 바탕을 둔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의 복잡한 국가 경제와 국제 경제 제도는 매체 없이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매체가 없다면 경제의 기본 구조는 무너질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과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줄 것이다.

8. 정   치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시민들이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정치 과정에 참여하도록 도와 줌으로써 사회에 이바지한다.
매체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적과 목표를 추구하게 함으로써 참다운 정치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도록 도와 준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체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매체는 쟁점과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직에 있거나 공직에 나가려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준다.
매체는 지도자들이 시급한 문제들을 신속하게 직접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매체는 무능, 부패, 권력 남용을 고발하는 한편, 역량과 공인 정신, 헌신적인 직무 수행 사례들에 주목하게 하는 중요하고도 책임 있는 수단이다.

9. 문   화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는 사람들이 흔히 접근하기 어려운 문학이나 연극, 음악, 예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지식과 지혜, 미와 관련하여 인간 발전을 촉진시킨다.
이는 단지 고전 작품이나 학문의 성과에 관한 소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들을 결집시켜 주고, 사람들이 일상의 문제들을 풀어 가도록 도와주며, 병자나 문 밖 출입이 어려운 사람들 또는 노인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권태로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전반적인 대중 오락과 유익한 정보도 말하는 것이다.

매체는 또한 소수 민족들이 그들의 문화 전통을 사랑하고 세상에 알리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해 줄 수 있게 한다.
특히 매체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문화 유산을 소개하여 준다.
예술가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은 국가와 민족들의 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풍부하게 함으로써 공동선에 이바지한다(요한 바오로 2세,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서한][Letter to Artists], 4항 참조).

10. 교   육
매체는 학교에서 직장에 이르기까지 삶의 여러 환경과 여러 단계마다 교육의 중요한 도구이다.
읽기와 셈하기를 배우기 시작하는 미취학 어린이들, 직업 교육이나 학위를 받으려는 젊은이들, 노년에 새로운 배움을 추구하는 노인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매체를 통하여 갈수록 풍부해지는 일련의 교육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매체는 많은 교실에서 탁월한 교육 도구이다.
교실 밖에서도 인터넷을 포함한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이 거리와 단절의 벽을 초월하여, 멀리 떨어진 지역의 주민들과 봉쇄 수도원의 수도자들, 문 밖 출입을 할 수 없는 사람들, 수감자들, 그 외 많은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가져다 준다.

11. 종   교
많은 사람들의 종교 생활이 매체를 통하여 매우 풍요로워지고 있다.
매체는 날마다 종교적 사건이나 사상, 인물들에 대한 소식과 정보를 전해 주며, 복음화와 교리교육의 도구로 쓰이고, 집안이나 시설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날이면 날마다 정신적인 힘을 주고 격려해 주며, 예배의 기회를 준다.

또 때로는 매체가 사람들의 영성 강화에 크게 이바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전세계의 무수한 시청자들이 위성을 통하여 로마에서 정기적으로 방송되는 교회 생활의 중요한 사건들을 시청하고, 어떤 면에서는 거기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여러 해 동안 매체는 수많은 사람들을 사목 방문하시는 교황 성하의 말씀과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12. 이 모든 영역, 곧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종교 영역과 그 밖의 다른 영역에서 매체는 인간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인간 공동체에 개방되어야 한다.

"형제 자매들이 되려면 반드시 서로 알아야 한다.
서로 알려면, 더욱 폭넓고 더욱 깊은 의사 소통이 대단히 중요하다"(교황청 수도회성, [공동체의 형제 생활][Fraternal Life in Community], 29항).
진정한 공동체 건설에 이바지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사상이나 감정 전달 이상의 것으로서, 그 깊은 본질에서는 사랑으로 자신을 주는 것이다"([일치와 발전], 11항).

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사람의 공동선과 관련하여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과 완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선을 식별하려면 협의와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회 매체 종사자들은 그러한 대화에 참여하여 선에 관한 진리에 따를 의무가 있다.
그럼으로써 매체는 "삶에 관한 진리, 인간 존엄에 관한 진리뿐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상호 의존의 참된 의미를 증언할"(요한 바오로 2세, 제33차 홍보 주일 담화, 1999년) 의무에 부응할 수 있다.

 

III. 인간의 선익을 해치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13. 매체는 또한 공동체를 폐쇄시키고, 인간의 고귀한 선을 해치는 데 악용될 수도 있다.
곧, 사람들을 이간시키거나 소외시키고 격리시킴으로써,
파괴적인 거짓 가치관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악한 집단으로 사람들을 유인함으로써,
증오와 대립을 조장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악마로 만들고 '우리'는 '그들'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는 사고 방식을 조장함으로써,
속되고 품위 없는 것들을 매혹적인 빛으로 포장해 제시함으로써,
고상하고 품위 있게 하는 것들을 무시하거나 얕봄으로써,
잘못된 정보와 거짓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비속함과 진부함을 조장함으로써 선을 해치는 데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인종과 민족, 성, 나이, 종교를 포함한 그 밖의 여러 요인들에 바탕을 둔 상투적인 표현들이 유감스럽게도 매체에 다반사로 나타난다.또한 흔히 사회 매체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비롯하여 진정 새롭고 중요한 것은 간과하면서 유행이나 별난 것들에 몰두하기도 한다.
위에 언급한 각 분야에서 남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14. 경   제
매체는 때때로 욕심과 탐욕을 부추기는 경제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는 그 적절한 예이다.
"인간을 순전히 경제적인 개념으로 보는" 신자유주의는 "이윤과 시장의 법칙만을 그 유일한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개인이나 민족들의 존엄과 그들에 대한 존중에 해를 끼친다"(요한 바오로 2세, [아메리카 교회][Ecclesia in America], 156항).
그러한 상황에서는,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여야 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소수의 이익을 위하여 악용된다.

세계화 과정은 "비상한 번영의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백주년], 58항).
그러나 그와 나란히, 아니 그 한 단면으로서, 일부 국가와 국민은 착취와 소외를 당하고 발전을 위한 경쟁에서 점점 뒤처지게 된다.
이처럼 확대되고 있는 풍요 속의 빈곤 지역들은 시기와 증오, 긴장과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의 경제 정책 자체가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통제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제 기구"([백주년], 58항)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심각한 불의 앞에서,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은 자기 직업이 단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전해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직업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매체가 인간 고통의 어떤 예들은 무시하는 반면 어떤 예들은 보도하고 있다.
이것이 매체 종사자들의 결정을 반영하는 것인 한,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선정임을 반영한다.
더욱 근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와 정책 그리고 기술 배치와 같은 요인들은, 번영과 때로는 생존 자체가 정보에 달려 있는 때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보의 풍요'를,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보의 빈곤'을 가져다 주는 데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매체는 흔히 그것이 보도하는 고통의 원인인 불의와 불균형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수많은 나라들을 발전의 구석자리로 내모는 장애물과 독점들을 무너뜨려야 하며, 모든 개인과 나라가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 조건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백주년], 35항).
그러한 기본 조건의 하나가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기술, 그리고 그것의 사용 교육이다.

15. 정   치
파렴치한 정치인들은 부당한 정책과 강압 체제를 유지하려고 매체를 민중 선동과 기만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들은 반대자들에 대한 거짓 정보를 내보내고, 선전과 '장황한 말'로 진실을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은폐한다.
이 때 매체는 사람들을 단결시키기보다는 분열시키고, 내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긴장과 의혹을 조성한다.

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들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이 매체를 통하여 정치 과정에 대한 수준 높은 참여를 유도하기보다는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 흔하다.
민주주의의 규정이 지켜지고 있기는 하지만, 광고나 선전에서 따온 기법들이 특정 집단을 착취하거나 생명권을 비롯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책들에 쓰이고 있다(요한 바오로 2세,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70항 참조).

또한 매체는 흔히 오늘날 죽음의 문화의 바탕이 되는 윤리 상대주의와 실용주의를 보급시키고 있다.
매체는 현대의 "생명에 대한 음모"에 가담하고 있다.
"매체는 피임, 불임 시술, 낙태, 심지어 안락사까지도 진보의 표시이며 자유의 승리로서 제시하는 그런 문화에는 공신력을 실어 주면서, 반면에 무조건 생명을 옹호하는 입장들은 자유와 진보의 적으로 묘사하고 있다"([생명의 복음], 17항).

16. 문   화
비평가들은 흔히 매체의 천박함과 악취미를 비난한다.
매체가 억지로 어둡고 지루하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천박하고 저속하여서도 안 된다.
매체가 대중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주장은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매체는 대중의 수준에 강력한 영향을 끼칠뿐더러, 그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높여 주어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러 가지 형태를 띤다.
뉴스 매체는 복잡한 문제를 신중하고 진실되게 설명하기보다는, 회피하거나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오락 매체는 성이나 폭력을 이용한 장면을 비롯하여 퇴폐적이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외설과 가학적 폭력이 성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간 관계를 좀먹으며, 개인 특히 여성과 청소년을 착취하고, 혼인과 가정 생활을 훼손하며, 반사회적 행동을 촉진하고, 사회 자체의 윤리 조직을 약화시킨다."(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외설과 폭력: 사목적 대응][Pornography and Violence in the Communications Media: A Pastoral Response], 10항)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국제 차원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하여 강요되는 문화 지배도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전통 문화의 대중 매체 접근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어서 전통 문화가 사장될 위기에 놓여 있다.
반면, 풍족하고 세속화된 사회의 가치들이 그보다 덜 부유하고 힘 없는 사회들의 전통 가치들을 점차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할 때,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그들의 문화 유산을 생생히 접하게 해 주는 프로그램들을 매체를 통하여 제공해 주는 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문화적 국경을 초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는 서로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한다.
그러나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이 힘 없는 문화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오늘날에는 "아무리 좁은 울타리의 문화라 하더라도 더 이상 고립되어 있지 않다.
각 문화는 교류의 증대로 혜택을 보기도 하지만, 획일성을 지향하는 강력한 조류에 압력을 받기도 한다"([문화에 대한 사목적 접근], 33항).
대다수 커뮤니케이션이 현재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는 ─ 선진국에서 개발 도상국과 후진국으로 ─ 현실은 심각한 윤리 문제를 일으킨다.
부자는 가난한 이에게서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인가?
힘있는 자들은 약한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17. 교   육
매체는 배움을 증진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정신을 딴 데로 빼앗고 시간을 허비하게 할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특히 이런 면에서 피해를 입는데, 어른들도 진부하고 시시한 영상들에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이 이처럼 신뢰를 남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보다는 이익을 우선하는 탐욕이다.

때때로 매체는 사람들에게 알릴 것을 선별해서 알리고, 권력자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정보에는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세뇌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는 사람들의 지식과 기술 수준을 높여 가치 있는 목적을 추구하도록 도와주는 참 교육을 왜곡시키고, 사람들의 시야를 좁히고 이념을 위해 정력을 허비하게 한다.
   
18. 종   교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종교 사이의 관계에서는 양쪽에 모두 유혹이 있다.

매체 쪽에서는,
종교적 사상과 경험을 무시하거나 주변으로 몰아 내려는 유혹,
종교를 진지한 주목의 대상이 아니라 몰이해와 심지어 업신여김으로써 호기심거리로 다루려는 유혹,
전통 신앙에 해를 입히면서 일시적인 종교적 유행에 빠져들게 하려는 유혹,
합법적 종교 집단을 적대적으로 다루려는 유혹,
종교와 종교 체험을 세속적 잣대로 재고, 세속적 취향에 맞는 종교적 시각을 그렇지 않은 것보다 편애하려는 유혹,
초월적인 것을 이성론과 회의론의 틀 안에 가두려는 시도 등이 있다.

오늘날 매체는 흔히 "초월적인 것에는 어떠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자기 내부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신앙과 이성], 81항) 탈현대주의의 인간 정신 상태를 반영한다.

종교 쪽에서는,
매체에 대하여 배타적인 판단과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려는 유혹,
객관성이나 공정성 같은 매체의 합리적인 운영 기준이 종교 기관의 이익을 위한 모든 특별 대우를 배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려는 유혹,
종교적 메시지를, 마치 온갖 물건들로 넘쳐 나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품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교묘한 방식으로 제시하려는 유혹,
매체를 조종과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유혹,
쓸데없거나 진리를 거스르는 비밀주의를 실천하려는 유혹,
삶의 회개와 참회, 개심에 대한 복음의 요구는 경시하면서 사람들에게 거의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느슨한 종교심으로 그 요구를 대체하려는 유혹,
다른 사람들에 대한 멸시와 증오를 조장하는 종교 근본주의, 광신주의, 종교적 배타주의를 부추기려는 유혹이 있다.

19. 요약하자면, 매체는 선을 위해서도 또 악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매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흥미 유발이나 설득 또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실리 행위가 아님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념의 전파 도구는 더 더욱 아닙니다.
매체는 때때로 인간을 소비 단위나 경쟁적 이익 집단으로 전락시키고, 시청자나 독자들을 단순 기호처럼 조종하여 상품 판매든 정치 선전이든 그들에게서 어떤 이익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임무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함께 모으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회 매체는 올바르게 사용될 때, 정의와 사랑에 바탕을 둔 인간 공동체를 창조하고 유지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사회 매체는 희망의 징표가 될 것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제32차 홍보 주일 담화, 1998년).

 

IV. 몇 가지 중요한 윤리 원칙들

20. 다른 분야의 중요한 윤리 원칙과 규범들이 사회 커뮤니케이션에도 적용된다.
공공 자원을 이용하고 공적 신뢰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연대와 보조성, 정의, 공정성, 책임과 같은 사회 윤리 원칙들을 언제든지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적용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진실하여야 한다.진실은 개인의 자유와 참된 인간 공동체에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윤리는 영화나 텔레비전 화면, 라디오 방송, 인쇄물, 인터넷으로 소개되는 것에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것과도 큰 관계가 있다.
윤리 차원은 커뮤니케이션의 내용(메시지)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전달 방법)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 구조나 제도 문제와도 관련된다.
여기에는 흔히 첨단 기술과 제품의 분배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정책 문제(누가 정보를 많이 가지게 될 것이며 누가 적게 가지게 될 것인가?)가 포함된다.
이 문제들은 소유권과 지배라는 경제 정치적 의미를 지닌 다른 문제들로 이어진다.
적어도 시장 경제를 시행하는 열린 사회에서 무엇보다 큰 윤리 문제는, 공동선의 포괄적 개념에 따라 이해되는 공공 이익에 대한 봉사와 이윤 추구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선의를 가진 합리적인 사람들에게조차도 윤리 원칙과 규범들을 특정 문제에 적용하는 방법이 언제나 바로 명확한 것은 아니다.
성찰과 토론, 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정책 입안자들,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 윤리학자와 도덕주의자들, 커뮤니케이션 수용자들, 그 밖의 관계자들 사이에 그러한 성찰과 대화가 촉진되기를 희망하면서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제시한다.

21. 세 가지 영역 ─ 메시지, 과정, 구조와 제도 문제 ─ 에서 근본 윤리 원칙은 다음과 같다.
인간과 인간 공동체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 이용의 목적이며 척도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완전한 발전은 충분한 물질적 재화를 요구하지만, "내면적 차원"([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29.46항 참조)에 대한 관심도 요구한다.
모든 사람은 온갖 물질적, 지적, 정서적, 도덕적, 영적 재화와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고 번영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모든 개인은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과 중요성을 지니며, 결코 집단의 이익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22. 둘째 원칙은 첫째 원칙을 보완한다.
인간의 선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공동선과 별개로 실현될 수 없다.
이 공동선은 포괄적인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곧 공동선이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공동체가 이바지하여야 하는 가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총체적으로 집약한 말이다.

그러므로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특정 집단의 요구와 이익을 마땅히 고려하여야 하지만, 계층 사이의 갈등이나 지나친 민족주의, 인종 지상주의, 인종 청소 등을 내세워 어느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대의 미덕, 곧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확고하고 꾸준한 결의"([사회적 관심], 38항)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사회 생활 전반을 지배하여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과 커뮤니케이션 정책 입안자들은 모든 수준, 모든 종류의 개인과 집단의 실질적 요구와 이익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국제 차원에서 공평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는 생산성과 번영을 크게 좌우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정보 기술의 불공평한 분배가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의 재화의 불공평한 분배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존재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생산과 소비 양식의 지속적 변화가 이미 습득한 기술과 전문 지식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시대의 추세에 뒤지는 이들은 쉽게 주변으로 밀려날 수 있다"([백주년], 33항).

그러므로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내용과 과정에 대한 결정만이 아니라 제도 문제와 재원 분배에 대한 결정에서도 폭넓은 참여가 필요하다.
의사 결정자는 가정과 종교 집단뿐 아니라 특별히 사회의 힘 없는 이들, 곧 가난한 이들, 노인들, 태아들, 어린이와 청소년들, 억압받는 이들,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이들, 여성들, 소수인들, 병자들, 장애인들의 요구와 관심사까지 인식하여야 할 중대한 도덕적 의무가 있다.
특히 오늘날, 국제 공동체와 국제 커뮤니케이션 관계자들은 빈곤이나 문맹, 정치적 억압, 인권 침해, 집단간 종교간 갈등, 토착 문화에 대한 억압과 같은 죄악들의 영속화에 대한 책임이 사회 매체의 역할에 달려 있는 국가와 지역에 폭넓게 또 포괄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23. 그렇다고 "탈규제화 된 상업화나 민영화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가 매체를 통제하라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공공에 봉사하고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기준에 따라 규제를 하여야 할 것이다.이것과 관련지어 언급하여야 할 것은, 어떤 나라에서는 매체가 운영될 수 있는 법적 정치적 틀들이 지금 현저하게 개선되어 가고 있으나, 다른 곳에서는 정부의 개입으로 매체가 억압과 배제의 도구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새로운 시대], 5항).

표현의 자유를 위한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여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며 자기 의견을 발표함으로써 타고난 권리를 행사하며 동시에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일치와 발전], 45항)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적 관점에서 생각할 때, 그러한 가능성이 절대적이고 파기할 수 없는 규범은 아니다.
알릴 권리가 없는 명백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중상 모략, 명예 훼손, 개인과 집단 사이에 증오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내용들, 음담패설, 외설, 끔찍한 폭력 묘사와 같은 것들이다.
또한 명백히,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진리, 공명 정대, 사생활 존중과 같은 원칙들을 지켜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은 공적 기관의 대표들과 협력하여 자기 직업에 대한 윤리적 행동 규약을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데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종교 단체와 다른 집단들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에 동참하여야 한다.

24.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은, 이미 언급하였지만, 커뮤니케이션 정책에 대한 결정에 대중이 참여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모든 차원에서 이러한 참여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은 특정 집단에 유리한 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 대표성을 지니는 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원칙은 또한 특별히 매체가 개인 소유이고 수익을 위한 목적으로 운영될 때에도 적용된다.

대중의 참여를 위하여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은 "사람들에게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는 곧 사람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들이 무엇을 위하여 싸우는지를 인식하며, 인간 존엄이 요구하는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요한 바오로 2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에게 한 연설, 로스앤젤레스, 1987년 9월 15일).

판매 부수, 시청률, '흥행 수익'은 시장 조사와 함께 흔히 대중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들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는 시장의 법칙이 작용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지표이기도 하다.
물론 그러한 방식으로 시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매체의 내용과 정책에 대한 결정을 오로지 시장과 경제 요인 곧 이윤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이러한 것들이 전체 대중의 이익이나 특별히 소수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대 의견에 '적소(適所, niche)'라는 개념으로 어느 정도는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특정 정기 간행물이나 프로그램, 라디오 방송, 텔레비전 방송은 특정 시청자나 청취자, 독자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어느 정도까지는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다양화와 전문화, 다시 말해서 대개 경제 요인과 소비 양식에 바탕을 둔 더욱 작은 집단들로 분산된 시청자, 청취자나 독자들에게 부합하려고 매체를 편성하는 일이 너무 과도하게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 매체는 "아레오파고"([교회의 선교 사명], 37항), 곧 사고와 정보를 교환하고, 개인과 집단을 결집시키며, 연대와 평화를 촉진하는 공공의 장(場)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특히 인터넷은 "그것이 가져오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결과들, 곧 정보의 본질적 가치 상실, 단순 정보로 격하된 메시지의 균등화와 획일화, 수용자 측의 책임 있는 반응의 부재, 대인 관계 방해"([문화에 대한 사목적 접근], 9항)와 관련해서 우려를 자아낸다.

25.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만이 윤리적 의무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 청취자나 독자, 곧 수용자에게도 의무가 있다.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에게는 마땅히 그에 걸맞는 책임 있고 의식 있는 시청자, 청취자나 독자가 있어야 한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용자의 첫째 의무는 분별력과 선별력을 갖추는 것이다.
수용자들은 매체의 구조나 운영 방식, 내용에 관하여 알고 있어야 하며, 건전한 윤리 기준에 따라 무엇을 읽을 것인가 또는 무엇을 보거나 들을 것인가에 대하여 책임 있는 선택을 하여야 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독학의 형태든, 계획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형태든, 아니면 양쪽 모두의 형태든, 어떤 형태로든 지속적인 매체 교육을 필요로 한다.
매체 교육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좋은 취향과 진실한 윤리적 판단에 대한 기준을 세우도록 도와 준다.이는 곧 양심 형성의 한 측면이다.

교회는 자체의 학교들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이러한 매체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새로운 시대], 28항; [일치와 발전], 107항 참조).
다음의 글은 본래 봉헌 생활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더욱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공동체는 대중 매체의 영향력을 깨달아, 그리스도를 알게 된 사람들의 내적 자유와 복음적 명확성으로(갈라 4,17-23 참조),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 대중 매체를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대중 매체들은 끊임없이 복음과 어긋나는 사고 방식과 생활 양식을 제시하고 또 흔히는 강요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지역에서 대중 매체를 비판적으로, 또 유익하게 수용하고 활용하도록 깊이 있는 교육을 바라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교황청 수도회성, [공동체의 형제 생활], 34항).

마찬가지로, 부모들도 자녀들의 양심을 올바로 형성시키고 비판 능력을 키워 줌으로써 자녀들이 매체를 평가하고 이용하는 법을 배우도록 도와 줄 중대한 의무가 있다([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76항 참조).
자녀들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부모들은 분별 있는 시청자나 청취자, 독자가 되는 기술을 익히고 연마하여야 하며, 가정에서 매체를 신중하게 사용하는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무비판적 수동성, 또래의 압력, 상업적 착취와 같은 손쉬운 길에 빠지지 않도록 나이와 상황에 따라 매체에 관한 교육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가정들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회 매체가 낳는 문제와 기회를 연구하고 토론하기 위한 모임을 만드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6. 매체 교육을 촉진하는 외에도, 교회의 단체, 기관, 프로그램들은 사회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하여 다른 중대한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진리, 책임, 인권에 대한 깊은 관심, 그 밖의 다른 중요한 원칙과 규범들에 대하여 최고의 기준을 반영하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 자체의 매체는 특히 하느님의 계시된 말씀에 포함되어 있고 교도권의 가르침으로 표명된 인간 생명과 역사의 의미에 대한 충만한 진리를 전해 주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사목자들은 매체를 복음 전파에 활용하도록 장려하여야 한다(교회법 제822조 1항 참조).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언론인들과 맺는 관계에서 정직하고 솔직하여야 한다.
그들의 질문이 "때때로 당혹스럽거나 실망스럽고, 특히 우리가 전하여야 할 메시지와 전혀 상관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당혹스러운 질문들은 많은 현대인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문화에 대한 사목적 접근], 34항)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교회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말을 하려면, 교회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곤란한 질문들에 확실하고 진실한 답을 해 주어야 한다.

가톨릭 신자들도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 목적을 위해서 매체를 이용할 권리도 있다.
표현의 권리에는, 신앙과 도덕의 보전, 사목자들에 대한 존중, 공동선과 인간 존엄의 중요성을 고려하면서 교회의 선익에 관하여 의견을 표명할 권리도 포함된다(교회법 제212조 3항; 제227조 참조).
그러나 정당하게 지명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교회를 대변하거나, 대변하는 것처럼 암시할 권리가 없다.
또한 개인의 의견이 교회의 가르침인 양 제시되어서도 안 된다(교회법 제227조 참조).

교회의 이름으로 직책을 맡고 임무를 수행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는다면 교회에 더욱 잘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신학생들, 수도 공동체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 젊은 평신도들의 경우뿐 아니라 전반적인 교회 인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매체가 "중립적이고 개방적이며 정직하다"면 매체는 "제일선의 선교사 역할"을 잘 준비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긴다.
이들 그리스도인은 "훌륭한 교육과 지원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사목자들도 신자들에게 매체와, 또 때로는 거슬리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그 내용에 관한 지침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교회법 제822조 2.3항 참조).

교회 안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이와 비슷한 점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목자와 신자 쌍방의 정보와 의견 교환, 공동체의 행복과 이를 증진시킬 교도권의 역할에 관심을 갖는 표현의 자유, 책임 있는 여론 등, 이 모든 것은 "교회 안에서 대화와 정보를 가질 기본 권리"([새로운 시대], 10항; [일치와 발전], 20항 참조)를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들이다.

표현의 권리는 계시된 진리와 교회의 가르침을 옹호하고, 다른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갖는 권리를 존중하면서 행사되어야 한다(교회법 제212조 1.2.3항; 제220조 참조).
다른 공동체와 기관들처럼, 교회도 때때로 비밀과 기밀을 지킬 필요가 있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조작과 통제를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친교 안에서 "성품권을 받은 성직자들은 형제들에게 봉사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에 속하고 또 진정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갖춘 모든 사람이 자유로이 질서 있게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여 마침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Lumen Gentium], 18항).
커뮤니케이션의 올바른 사용은 이러한 목적을 실현시키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이다.

 

V. 결  론

27. 그리스도교 제삼천년기가 시작됨에 따라 인류는 과학, 통상, 교육, 오락, 정치, 예술, 종교, 그 밖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정보와 의견, 가치 판단의 즉각적 전달을 위하여 전세계적인 전산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 전산망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실제로 가능한 모든 곳에서 직접 이용할 수 있다.
이제는 스포츠에서 전쟁에 이르기까지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시청하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학자나 학생들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많은 자료에 사람들이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개인이 혼자 자판기와 화면 앞에 앉아서 인간 재능과 미덕의 정상까지 올라가거나 인간 타락의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선과 악에 대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다.
상호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과 수용자들 사이의 구별이 흐려지고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의 영향과 특히 그것의 윤리적 의미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28. 그러나 매체는 엄청난 힘을 지녔지만 단지 매체일 뿐이며, 또 매체로 머무를 것이다.
다시 말해, 매체는 선을 위해서도 또 악을 위해서도 쓰일 수 있는 수단이며 도구일 뿐이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매체는 새로운 윤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존의 원칙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시키기를 요구할 뿐이다.
이 임무에는 모든 사람이 맡은 역할이 있다.
매체 윤리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든 윤리 철학 전문가이든, 전문가들의 일만은 아니다.
이 문서에서 장려하고 도와 주고자 하는 성찰과 대화는 그와는 달리 폭넓고 포괄적이어야 한다.

29.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을 공통의 관심과 공감대를 가지는 공동체 안으로 결집시킬 수 있다.
이들 공동체가 정의와 예의, 인권 존중의 바탕 위에 세워지고, 공동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공동체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특정 집단, 곧 정치, 경제, 인종, 심지어 종교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공동체가 될 것인가?
새로운 기술이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봉사하면서 각 민족의 문화 전통을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부자를 더욱 부유하게, 힘있는 자를 더욱 힘있게 만드는 도구가 될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커뮤니케이션 매체는 또한 분리와 고립에 이용될 수 있다.
날이 갈수록 기술은 사람들에게 그들만을 위하여 특별하게 준비된 정보와 서비스를 일괄적으로 모으게 해 준다.
거기에는 실질적인 이점도 있지만,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킨다.
곧 미래의 시청자나 청취자들은 한 개인만의 다수 시청자나 청취자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새로운 기술이 개인의 자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기는 하지만,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다른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미래의 '웹(web)'은 지구촌 공동체가 되기보다는, 고립된 개인들이, 자기 벌집 속에 들어 있는 인간 벌들처럼, 서로 교신을 하는 대신에 자료와 교신을 하는, 세분화된 거대한 전산망으로 변하지 않을까?
그러한 세계에서 연대는 어떻게 될 것이며,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가?

최적의 상황에서조차 인간 커뮤니케이션은 심각한 한계를 지니며, 다소 불완전하고 실패할 위험이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을 할 때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정직하게 의사 소통을 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매체의 세계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내재적 어려움은 흔히 이념이나 이윤 추구에 대한 욕망, 정치적 통제, 집단 사이의 경쟁과 알력, 그 밖의 다른 사회악들 때문에 가중되기 마련이다.
오늘날 매체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영향, 곧 그 양과 속도를 크게 확대시키고 있다.
매체는 정신과 정신, 마음과 마음이 더 강하고, 더 민감하게, 또 더 성공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한다.

30.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문제에 관한 토론에서 교회가 하는 특별한 기여는,
인간과 인간의 비할 데 없는 존엄성과 침해할 수 없는 권리에 대한 인식,
그리고 모든 이의 공동선을 추구하고자 그 구성원들이 연대의 힘으로 모인 인간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다.

이러한 두 가지 인식은 "일시적인 것들이 가치 있다고 주장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가능성이 의문에 놓이게 되는, 명백한 전망의 부재에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때에" 특히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비틀거리며 심연의 끝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신앙과 이성], 6항).

이러한 위기에 직면하여, 교회는 자신을, "교회의 종교적 사명을 필연적으로 (인간 노력의) 다양한 영역으로 넓히도록 이끌어 주는" 전문 지식을 갖춘 "인간 문제의 전문가"로 생각하며 행동한다([사회적 관심], 41항;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3항 참조).
교회는 인간과 인간 공동체에 관한 진리를 자신만을 위해서 간직할 수는 없다.
교회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나누어야 하며, 사람들이 진리도 교회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의식하여야 한다.

교회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활용에서 높은 윤리적 기준을 장려하고 지지하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와 협력을 모색한다.
이들은 곧, 정치 공동체의 공동선을 증진할 특별한 의무가 있는 공직자들, 문화계와 예술계 인사들, 미래의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과 시청자, 청취자나 독자들에 대한 교육에 투신하고 있는 학자들과 교사들, 매체가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에 대한 봉사를 위하여 쓰이기를 바라는 교회의 염원에 동참하는 다른 교회나 종교 집단의 사람들(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커뮤니케이션에서 교회 일치와 종교간 협력을 위한 기준][Criteria for Ecumenical and Inter-Religious Cooperation in Communications] 참조), 그리고 특히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 ─ 작가, 편집인, 기자, 통신원, 연기자, 프로듀서, 기술자들 ─ 과 이 분야의 소유주와 관리자, 정책 입안자들이다.

31.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안에 그 한계와 함께,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속하는 그 무엇을 지닌다.

"예술가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시선으로 예술가인 인간에게", 또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당신의 뛰어난 지혜의 불꽃을 나누어 주시며, 당신의 창조적 힘을 공유하자고 초대하신다."
이를 이해하게 될 때, 예술가와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명,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깨닫게 된다"([예술가들에게 보내는 서한], 1항).

그리스도인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는 특별히 다음과 같은 예언자적 임무, 곧 소명이 있다.

오늘날의 거짓 신들과 우상, 곧 물질주의, 쾌락주의, 소비주의, 편협한 민족주의 등을 고발할 것,
모든 사람에게 인간 존엄과 권리,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재화의 보편적 사용, 원수 사랑, 수정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 존중에 바탕을 둔 도덕적 진리의 총체를 선포할 것,
마지막날에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하시어 아버지께 되돌려 드릴 것임(1고린 15,24 참조)을 의식하면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더욱 완벽하게 실현되도록 추구할 것 등이다.

32. 이러한 성찰은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향하는 것인 만큼, 결론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의 모범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브 1,2).
그리고 이 아드님은 이제와 영원히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삶의 궁극적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면서 당신 자신을 완전한 중개자로 보여 주셨으니, 당신의 강생으로써 오래지 않아 당신의 말씀을 전하여 들을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고, 말씀과 전 생활로써 당신의 뜻을 전달해 주셨다.
당신의 백성 한가운데서 아무 두려움이나 타협도 없이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셨다.
그러나 당신 백성의 처지에서 말씀하시려고 그들의 표현 방법과 사고 방식에 적응하셨다"([일치와 발전], 11항).

예수님의 공생활 내내, 군중은 그분의 설교와 가르침을 듣고자 몰려들었으며(마태 8,1.18; 마르 2,2; 4,1; 루가 5,1 등 참조),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다"(마태 7,29; 마르 1,22; 루가 4,32 참조).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하느님 아버지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동시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하고 말씀하시며 자신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헛된 말이나 자기 옹호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다.
추궁을 받거나 심문을 받으실 때조차도 마찬가지이셨다(마태 26,63; 27,12-14; 마르 14,61; 15,5 참조).
그분의 '양식'은 그분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요한 4,34 참조)이었기 때문이며, 그분의 모든 말씀과 행위는 그와 관련해서 이루어진 말씀이며 행위였기 때문이다.

흔히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한 일상 용어로 심오한 진리를 표현하는 비유와 생생한 이야기 형태를 띠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뿐 아니라 행적, 특히 그분의 기적들은 그분의 신원을 가리키고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였다([현대의 복음 선교], 12항 참조).
예수님께서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청중에 대한 존중, 그들의 처지와 어려움에 대한 연민, 그들의 고통에 대한 동정(예: 루가 7,13 참조), 그리고 그들이 꼭 들어야 할 것들을 들려주시려는 확고한 결심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그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이 강압이나 타협, 기만, 조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방식이었다.
또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들에게 마음과 가슴을 열라고 촉구하셨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당신과 당신 아버지께 끌리게 될 것임을 아셨기 때문이다(예: 요한 3,1-15; 4,7-26 참조).

예수님께서는 커뮤니케이션이 도덕적 행위라고 가르치셨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입으로 나오는 법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겠느냐.
잘 들어라. 심판 날이 오면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될 것이다.
네가 한 말에 따라서 너는 옳은 사람으로 인정받게도 되고 죄인으로 판결 받게도 될 것이다"(마태 12,34-37).

예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죄짓게 하는 것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하셨으며, 그런 짓을 한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마르 9,42; 마태 18,6; 루가 17,2 참조) 하고 경고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에 아무런 거짓이 없으셨다."고 할 수 있는 솔직한 분이셨던 동시에, 더 나아가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으며,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대로 심판하시는 분"(1베드 2,22-23)이셨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함과 진실함을 주장하셨던 반면, 위선과 부정, 그리고 정직하지 못하고 잘못된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단죄하셨다.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만 하여라"(마태 5,37).

33. 예수님께서는 우리 커뮤니케이션의 전형이시며 기준이시다.
정책 입안자이든, 커뮤니케이션의 종사자이든 수용자이든, 또는 그 밖의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든, 사회 매체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결론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여 도움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도록 하십시오"(에페 4,25.29).

인간에 대한 봉사,
연대와 정의와 사랑에 바탕을 둔 인간 공동체의 건설,
인간 생명에 대한 진리와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생명의 궁극적 완성에 대한 선포는
매체 윤리의 핵심이며 또 핵심으로 남을 것이다.


바티칸에서
2000년 6월 4일
홍보 주일, 언론인들의 대희년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의장 존 P. 폴리 대주교
사무총장 피에르프랑코 파스토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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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15호 (천주교중앙협의회 자료) [ www.cbck.or.kr ]
문단정리 : 박경수(Francis) [ www.webmaster.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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