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청 사회홍보위원회 사목훈령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 새로운 시대 ]
AETATIS NOVAE
1992. 2. 22.
---------------------------------------------------------------------
[ 서문 ] 인간커뮤니케이션의 변혁
1. 새로운 시대(Aetatis Novae)의 초입에서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엄청난 확장은 곳곳에서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혁명적이랄 수 있는 기술 변혁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건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태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제도, 그리고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교황께서 [백주년(Centesimus Annus)] 회칙에서 명백하게 지적하신 대로 1989년과 1990년의 "급진적 변환"의 기간 동안에 나타났던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리적이고 정치적인 경계는 별 의미가 없어졌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 12-23항)
동시에 "현대의 첫째가는 아레오파고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서 소위 '지구촌'을 형성해가는 커뮤니케이션의 세계라는 점이 명백해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는 중요해지고 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나 교육을 제공하는 주요 수단이고 개인과 가정 그리고 전체 사회 속에서 행동에 지침이나 영감을 주는 뛰어난 도구가 되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사명] 37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관한 문헌인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Inter Mirifica)]을 반포한 지 4반세기가 넘었고 사목 훈령인 [일치와 발전(Communio et Progressio)]이 반포 된 지도 20년이 흐른 이 시점에서 교황청 사회홍보위원회는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사목적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우리는 [일치와 발전]의 결론 부문에 피력된 정신을 받들고자 한다 :
"하느님의 백성은 역사 속을 거닐고 있다. 그들은 시대와 함께 전전하면서 우주 시대가 그들에게 제공하게 된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을 신념과 열정으로 내다보고 있다."([일치와 발전] 187항)
공의회 문헌이나 그 이후의 문헌들이 제시해온 원칙과 통찰력에 대한 타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새롭게 형성되는 현실에 그것을 적용시키길 바라고 있다.
그렇다고 복잡하고, 유동적이고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 대해 최종적인 언급을 하는 듯 보이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현성에 대한 사목적 함의(含意)에 골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방법을 제공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것이다.
2.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과 [일치와 발전]이 반포된 이래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은 "정보 사회", "매스 미디어 문화(대중문화)", 그리고 "미디어 세계"라는 표현들에 익숙해져 있다.
이같은 낱말들은 대단한 사실을 담고 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매스 미디어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경험 중 상당 부분은 그 자체가 미디어에 의한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
최근 몇 십년 동안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는 엄청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텔레 커뮤니케이션이나 미디어와 관련된 기술의 첨예화 현상도 포함하고 있다.
첨단 기술은 통신 위성, 케이블 텔레비전, 광섬유, 비디오, 콤팩트 디스크, 전자화된 화상(畵像) 기술과 기타 컴퓨터나, 디지털 기술을 말한다.
새로운 매체의 이용은 어느 의미에서는 "새로운 언어"를 창출하고 이것들은 교회에 새로운 사명과 사목 방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3.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사제들과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이나 매스 미디어와 연관된 문제들을 심도 있게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방안과 실제적인 프로그램을 수립하도록 촉구하는 바이다.
"공의회 교부들은 미래를 바라보며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름받고 있는 상황을 분별하고자 하였을 때에, 기술의 발전이 이미 '지구상의 면모를 바꾸어 놓았고' 우주 정복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였다.
교부들은 특별히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의 발전이 미증유의 결과와 더불어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사목헌장] 5항, 요한 바오로 2세 [1990년 세계홍보의 날 메시지] 6면 참조)
"교회가 이러한 사건들의 주류와 떨어져 초연하게 서 있어야 한다거나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회의 교부들은 교회를 바로 인간의 진보 한가운데 있는 존재로 인식하였다.
교회는 전 인류와 경험을 나누고 이를 이해하고 신앙의 빛으로 해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전 인류의 선익을 위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한 하느님 계획의 성취를 위하여 새로운 발견과 기술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이 하여야 할 일이다.
즉 '컴퓨터 시대'가 지니고 있는 모든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모든 사람이 인간적이고 초월적인 소명에 봉사하게 함으로써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것이다."([사목헌장] 5항, 요한 바오로 2세 [1990년 세계홍보의 날 메시지] 6면 참조)
우리는 전 세계 교회에서 창조적인 커뮤니케이션 작업을 주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부족한 자원, 때때로 교회가 매체에 접근하는 데 맞부딪치게 되는 장애, 미디어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문화, 가치관, 태도 등에서 비롯되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것이 이룩되었고, 또 계속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중요한 사도직의 시대에 헌신하는 주교들, 성직자들,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은 감사를 받을 만 하다.
또한 미디어와 연관된 범 교회적 협력에 헌신하는 가톨릭과 다른 교회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다른 종교와의 협력을 위해 대담하게 뛰어든 사람들을 환영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함께 일하고,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 안에서 연합된 종교적 현존을 드러내기 위해 힘을 합한다는 것은 합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이다.(교황청 사회홍보위원회,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교회 일치 및 종교간 협력을 위한 기준 1항, 1989년)
Ⅰ.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정황(情況)
A. 문화적·사회적 상황
4. 단순히 기술적인 혁명을 넘어서 오늘날 사회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확인하며 또 자기들이 무엇을 알았는지를 표현하는 요소들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끊임없이 제공되고, 대륙에서 대륙으로 빠르게 전달되는 이미지와 이념들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들은 개인의 심리적, 윤리적 그리고 사회적 발전과, 사회의 구조나 기능,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가치관, 세계관,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신념에 대한 지각과 전달에 작용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교회의 지각(知覺)에 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는 교회의 구조나 기능, 형태에까지 심각한 파급 효과를 몰고 오게 된다.
이 모든 현상은 사목적으로 놀랄 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중 매체는 복음을 전하는 데 쓰일 수도, 사람들 마음속에서 침묵하도록 복음을 축소할 수도 있다.
미디어가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하나가 됨에 따라 미디어는 사람들이 삶 자체의 의미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지를 좌우하게 된다.
물론, 미디어의 힘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할런지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무엇에 관하여 생각해야 할런지로 확대되고 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실이라는 것은 미디어가 실제라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미디어가 언급하지 않은 것은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가 무시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현실적으로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복음의 말씀까지도 이 같은 방법으로 총체적으로 정지(停止)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소리를 빼앗긴 사람이나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잃어버린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종교, 문화, 가정에 관한 전통적인 관점을 강화하거나 피폐시킬 수 있다는 미디어의 힘은 공의회가 반포한 표현에서 계속적으로 그 적합성이 강조되고 있는 셈이다 :
"미디어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윤리 규범의 원칙을 알고 이를 실생활에 충실히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매스 미디어 교령] 4항)
B. 정치적·경제적 상황
5. 한 나라의 경제 기반은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체제와 뗄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 있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의 구축을 위한 국가의 투자는 경제적·정치적 발전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투자에 따라 증가하는 비용은 여러 나라에서 상업적 경쟁을 겨냥한 정책을 입안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든지, 다른 이유든지 공공 커뮤니케이션과 공영 방송 제도는 탈규제화나 민영화를 위한 정책의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비록 공영제도가 이데올로기 조작이나 정치 선전술로 인해 분명히 오용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탈규제화된 상업 방송이나 민영 방송 역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그리고 공공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전파 사용에 공공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 본래의 뜻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봉사보다는 이윤이 성공을 가늠하는 제일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윤 추구의 동기나 광고주의 이익이 매체의 내용 결정에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대중적인 인기 영합은 질(質)을 압도하고 천박한 최대공약수적 메시지가 횡행하게 된다.
광고주들은 참다운 수요 촉발과 그에 대응하는 합당한 역할을 넘어 이윤 추구만을 겨냥하고 허위 수요나 소비 문화만을 부추기는 데 진력하게 된다.
상업적인 압력은 특정 민족과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를 희생시키고 국가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치열해져 가는 경쟁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커뮤니케이션 산업은 그 모습이 점점 "다국적화" 될 것이고 동시에 고유한 제작 능력의 부족은 점점 외국 소재에 의존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화권의 대중 매체가 만들어낸 산물은 다른 곳으로 확산되어, 다른 민족들이 오랫동안 가꾸어 온 예술 형식, 미디어 그리고 가치관을 자주 훼손시키게 된다.
그렇다고 탈규제화 된 상업화나 민영화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미디어를 통제하라는 것으 아니다.
오히려 공공에 봉사하고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기준에 따라 규제를 해야 할 것이다.
이것과 관련지어 언급해야 할 것은 어떤 나라에서는 미디어가 운영될 수 있는 법적·정치적 틀들이 지금 현저하게 개선되어가고 있으나 다른 곳에서는 정부의 개입으로 미디어가 억압과 배제의 도구로 남아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Ⅱ.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과업
6. [일치와 발전]은 커뮤니케이션이 친교를 향하는 방법이라는 시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은 생각을 표현하거나 감성을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사랑으로 자신을 주는 것"([일치와 발전] 11항)이라고 [일치와 발전]은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커뮤니케이션은 교회가 지닌 고유의 친교를 반영하는 것이고 그것이 이루어질 수 dT도록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리의 전파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비롯된 구원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화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다.
그분 안에서 그분울 통하여 하느님의 삶이 성령의 활동으로 인간들에게 전해졌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다."(로마 1, 20)
그리고 지금은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 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요한 1, 14)
여기서 육화 하신 말씀 속에서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알리신다는 점은 결정적이다.
예수님의 언행에서 말씀은 모든 인간을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스러운 계시와 신앙에 바탕을 둔 인간의 반응은 조화를 이루어 내밀한 대화를 이루게 된다.
인간의 역사와 모든 인간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를 내보이시는 하느님에 의해 이룩된 테두리 안에 존재한다.
역사 자체는 하느님의 말씀이 구현되는 방향으로 짜여져 있다.
역사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방법으로 화해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그리고 무한히 알리는 삶을 일구어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부르심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희망의 언어를 통하여 그리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것을 행하고 있다.
즉 우리의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교회 공동체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이시며 또 역동적인 원천이시다.
교회 스스로는 "만물을 완성시키고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의 숨은 완성인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다."(에페 1, 23; 4, 10)
이 같은 결과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말씀과 성사의 도움으로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최종 일치의 희망을 품고 전진하고 있다."(1고린 15, 28 ; [일치와 발전] 11항)
A. 사람과 문화에 봉사하는 미디어
7. "일치와 이해를 도모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 매스 미디어는 모든 선한 일을 수행하거나 수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삶과 가정, 종교와 윤리에 대한 천박한 모습을 전해주는 매개물 역할을 자행하고 있다.
이 같은 천박한 모습은 인간의 참다운 품위나 미래를 존중하고 있지 않다."(교황청 사회홍보위원회, [대중 매체의 외설과 폭력 ; 사목적 대응] 7항, 1969년)
미디어가 "인간과 사회의 문화적이고 초월적이며 종교적인 차원"을 파악하여 총체적 인간 발전을 도모하고 또 그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은 엄연한 명령이다.
어떤 사람은 미디어 이용의 급증과 허구적인 미디어 특성에 집착하는 현사이 인간끼리의 상호 작용을 대치시켰고 이것에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어떤 경우 이건 미디어가 사람들끼리의 직접 접촉이나 가족간, 친구간의 상호 작용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일반적으로 미디어에서 찾을 수 있다.
미디어를 집단 간의 대화, 영화나 방송에 관한 토론 등으로 사용하면 커뮤니케이션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을 촉발시키게 된다.
B. 세상과 대화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어머니
8.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인류와 인류 역사와 친밀하게 연계되어 있는"(요한 바오로 2세, [사회적 관심] 44항) 하느님 백성을 인식하고 이 점을 강조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여러 민족과 다양한 문화의 "표현"을 알아들으려 하고 주의를 기울일 의무를 지닌다.
이것은 그들에게서 교훈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사목헌장] 11항)
따라서 교회는 세상과 관련된 현사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세상과 관련된 현상이라 함은 공동체를 육성하고 사회의 문제들을 합당하게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교회는 언제나 어느 특정 국가나 국민들의 연령층이나 삶에 맞는 메시지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온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교회는 새로 생기는 매체 문화 속에서 그리고 그것을 겨냥해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매스 미디어 교령] 3항)
이 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룩해 놓은 결정적인 계기에 화답하는 기본 요건이다.
"사회적, 기술적, 문화적 결속은 모든 사람을 과거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묶어 놓았고,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한 일치를 이룩해야 하는 교회의 우선적인 임무에 긴박성을 더해주고 있다.([교회헌장] 1항)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미디어의 일치를 다지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느냐를 고려할 때, 교회는 미디어를 커뮤니케이션의 확대와 지상에서 준례 행진 중인 인류의 일치를 위해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고안된 수단"으로 보고 있다.([일치와 발전] 12항)
따라서 현대 사회와의 대화의 장(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교회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과 솔직하고 존경스러운 대화를 꼭 원해야 한다.
교회 입장에서 본다면 이 대화는 미디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수반한다.
그것은 미디어의 목적, 작업 과정, 형식과 장르, 내부 구조, 행위 양식을 말한다.
그리고 교회는 미디어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고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정(同情)에 찬 이해와 지원을 바탕으로 삼는다면 복음을 전파하고 인간 발전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안이 제시될 수 있다.
따라서 이 같은 대화는 교회가 일반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특히 미디어 정책 수립에 관심을 표명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스도인은 사실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매체 속에서 들릴 수 있도록 만들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단순히 교회에 관한 뉴스를 전달하는 책무에만 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
대화는 문화 인류적 커뮤니케이션과 신학적 커뮤니케이션의 개발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되면 신학 자체는 더 더욱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고 복음의 가치를 더 성공적으로 알리며 복음을 인간의 현세적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대화는 교회의 지도자나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미디어의 요청이 있을 때 기꺼이 그리고 부지런히 응답할 것을 요구한다.
동시에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과도 원천적으로 공통된 가치관에 입각하여 상호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관계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다.
C. 인간 공동체와 발전에 봉사하는 어머니
9.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이다.
이것은 예언자처럼 복음을 선포하며 현대의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주장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극도로 세속화된 현실에 대해서 하느님의 진리와 인간의 초월적인 목표를 증거하는 작업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갈등과 분열에 대항하여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연대 의식을 증거하는 것이고 다른 민족, 국가, 문화 속에서의 정의와 일치를 증언하는 것이다.
교회의 입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독특하게 조명하게 하고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 역할을 이해한다는 것은 미디어가 인간과 사회의 총체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어떤 역할을 맡는 것을 의미한다.
D. 교회 일치에 봉사하는 어머니
10. 이 같은 모든 것과 함께 [일치와 발전](114-121항) 에서 지적된 대로 교회 안에서 대화와 정보 소통의 원천적인 권리의 중요성을 언제나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권리를 인식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사회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책임 있는 사용 등 효과적인 수단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복종을 드러내 보이는 것 이외에 [교회법전]을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기들의 필요 특히 영적 필요와 청원을 교회의 목자들에게 표명할 자유가 있고"(교회법 212조 2항) "신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학식과 능력과 덕망에 따라 교회의 선익에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자기의 견해를 거룩한 목자들에게 표시하며 또한 이것을 알릴 권리와 때로는 의무까지 있다"(교회법 212조 3항)는 점을 늘 마음 속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교회으 신뢰성과 효율성을 지키고 현양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성삼위의 친교에 뿌리를 두고 성삼위를 반영하는 교회의 특징인 일치를 명백한 방법으로 인식시키는 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교회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 간에는 세례성사에서 비롯되고 교계 제도의 업무나 역할의 다양성에 기반을 둔 존엄성과 사명감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동등권이 부여되어 있다.
그리고 이 동등권은 솔직하고 존경스럽게 정보나 의견을 향유하는 형태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생길 때 마음속에 간직해야 될 것은 "교리에 관련된 사랑들을 명확하게 하는 일에 이바지하며 또 진리에 봉사하기 위해 여론의 압력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서는 안될 것이다."(신앙교리성, [신학자의 교회적 소명에 관한 훈령] 30항)
실제로 "하느님의 백성들 가운데 유포되어 있는 모든 생각들이 다 단순하고 순수하게 '신앙심'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같은 곳 35항)
왜 교회는 사람들이 올바른 정보를 받아들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가?
왜 교회는 진솔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하는가?
왜 교회는 성직자들이 진리를 전파하고 신앙심을 가지고 실천하도록 하는 책임을 강조하는가?
그 이유는 교회내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하느님 말씀 스스로 커뮤니케이션 하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곳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 새로운 복음화에 봉사하는 미디어
11. 전통적인 방법들, 예를 들어 간증, 교리 공부, 개별 접촉, 경신례, 전례와 그리고 유사한 축전(祝典)들과 함께 미디어의 이용은 오늘날 복음화와 교리 전파에 꼭 필요한 것이다.
물론 "교회가 나날이 더 완전해지는 인간 기술이 만들어 낸 힘 있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선교] 45항)
사회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재복음화와 신복음화를 겨냥하는 교회의 계획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옛 글귀가 입증 하듯이 복음화에 있어서 미디어의 시청각적인 측면이 면밀하게 배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디어나 문화에 교회가 접근할 때 늘 다음과 같은 점을 중요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즉 "단순히 그리스도교적 메시지를 전파하고 교회 본래의 가르침을 퍼뜨리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근대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생성된 '새로운 문화'에,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기술로 그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메시지를 접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사명] 37항)
오늘날 복음화 사업은 커뮤니케이션 세계 속에 교회가 적극적이고 공감하며 뛰어드는 쪽으로 손질되어야 한다.
Ⅲ. 오늘날의 도전
A. 비판적 평가의 필요성
12. 교회가 적극적이고 호의적으로 미디어에 접근하면서 효과적인 복음화를 위해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이 창출해 놓은 문화에 뛰어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교회는 동시에 매스 미디어 자체와 미디어가 문화에 끼칠 충격에 대해서 비판적인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
거듭거듭 언급했듯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는 인간의 재능이 대담하게 표현된 것이고 미디어는 사회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지적했던 것처럼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의 이용은 축복의 결과이고 좋은 의도로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개인이나 사사로운 차원, 정부 그리고 사회 전체를 위한 건전한 가치관, 현명한 선택을 위한 것이다.
교회는 이 같은 결정이나 선택을 지시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같은 과정에 적합한 기준 즉 인간적 그리스도교적 가치에서 발견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을 뿐이다.
B. 연대 의식과 총체적 발전
13. 실제로 오늘날 매스 미디어는 인간의 총체적 발전과 인간 개개인의 연대의식을 향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이런 장애물들은 세속주의, 소비풍조, 물질 만능주의, 비인간화 등을 포함하며 덧붙여 가난하고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부족한 관심을 포함하고 있다.(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 41항)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할 때, 오늘날 문화의 창조와 전수를 위한 "가장 교화적인 방법"으로 공공 미디어를 인정하고 있는 교회는(요한 바오로 2세, [평신도 그리스도인] 44항) 교회의 의무가 언론인들이나, 시민들을 결성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활력에 넘쳐 비관적인 안목"을 가지고 매체에 접근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유를 수호하는 일,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일, 그리고 온갖 형태의 독점이나 조작을 단호하고도 과감하게 배척하여 사람들 사이에 진솔한 문화를 진작시키는 일 등을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같은 곳 44항)
C. 정책과 구조
14. 특히 미디어의 정책이나 구조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들이 야기된다.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접근하려는 집단이나 계층이 부당하게 제외되는 것, 어떤 장소에서 통용되는 원천적 정보 추구권에 대한 조직적인 방해,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인 엘리트들에 의한 광범위한 미디어 장악 등이다.
이 같은 현상들은 근본적인 미디어 목표와 상치되는 것들이다.
또 인간의 정보 추구권을 인식시키고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정의의 진작과 진리를 찾기 위해 개인, 집단, 국민을 도와야 하는 독특하고 근본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미디어의 본질과도 상반된다.
미디어는 모든 계층이나 전체 사회의 사상이나 정보가 교환되도록 돕고 책임있는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때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D.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수호
15. 커뮤니케이션 자유권을 행사하는 것이 부자, 지식인, 정치적인 힘을 지닌 사람들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 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이다.
이것은 하고 힘 없는 사람들이 개인과 사회 발전에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국의 사회 커뮤니케이션 제도에 관한 구조와 정책을 결정하고 미디어의 내용을 가늠하는데 효율적이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국내외적 노력을 요구하게 된다.
법적이거나 정치적인 구조가 엘리트에 의한 미디어의 지배를 조장한다면 교회는 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커뮤니케이션 권이 존중되도록 촉구해야 하고 동시에 신자들과 모든 국민들을 위한 대안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찾도록 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셔 권은 종교 의식의 자유에만 국한되지 않는 종교의 자유이다.
Ⅳ. 사목적인 우선 순위와 대응 방안
A. 인간 문화의 보존
16. 여러 곳의 사정을 고려해 볼 때 권리에 대해 민감하고 개인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교회로 하여금 대안적 지역 매체를 장려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교회는 복음화와 교리 교습을 위해 자주 민속 매체와 전통적 표현 양식을 보호하고 육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특정 지역 사회에서 이들 매체들이 더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고 더 깊게 인간의 느낌이나 동기 유발에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더 효과적이며 더욱 새로운 매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매스 미디어가 어느 곳에나 있다는 것은 알반 대중을 끌어들이고, 그들을 제작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케 하고, 나아가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설계할 수 있는 대안적 매체의 위상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 다음에 민중에 뿌리를 둔 매체나 전통적인 매체는 지역별 문화 표현 양식에 관한 중요한 토론의 장(場)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매스 미디어를 새롭게 손질하고 사용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다수의 국민과 여러 집단들이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지배나 조작에 대항 할 수 있는 안전 장치로서 더 정의롭고 균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제공 체제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다.
이 점은 선진국에 대한 개발 도상 국가의 우려이다.
그리고 가끔 이것은 어느 국가의, 그 나라가 선진국이건 개도국이건,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이든지 tkaf의 조건 등을 형성하는데 한 몫을 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모든 사람들이 능동적이며 자주적으로 그리고 책임감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B.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교회 자체 매체의 개발과 장려
17.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부문에 대한 관여와 함께 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특별히 가톨릭 매체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존하고 육성하는 데 계속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것은 가톨릭 출판물과 가톨릭 인쇄 시설, 가톨릭 라디오와 텔레비젼, 대중 매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홍보 센터, 미디어에 종사하는 언론인과 일반인에 대한 미디어 훈련을 위한 연구소나 프로그램, 매체 조사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주교회의나 주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그만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된 국제 가톨릭 커뮤니케이션 기구들도 포함된다.
가톨릭 미디어 작업은 전체 교회 활동 중에 하나를 더 보태는 단순한 것은 아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교회에 맡겨진 사명 중 어느 것에든지 제 몫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사목적 계획이 수립되어 있어야 될 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계획을 총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은 실질적으로 모든 사도 임무, 사도직 그리고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C. 그리스도인 언론인의 규합
18.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교육이나 훈련은 사도직 종사자와 사제들을 규합(糾合) 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가톨릭 교육성, [사회 커뮤니케이션 사용에 관한 미래 사제들을 위한 교육지침 참조, 1986)
필요한 교육과 훈련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방향과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미디어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는 오늘날 교회 종사자들은 최소한 새로운 정보 기술의 영향력에 대해 실질적인 이해를 해야 하고 매스 미디어가 개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알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종사자들은 "정보를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교회 종사자들은 지배나 조작 또는 사리사욕을 노리는 커뮤니케이션 형식이 아닌 대화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다.
교회를 위한 미디어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교의적이고 영성적인 준비와 함께 미디어에 관한 전문적인 기술을 지녀야 할 필요가 있다.
D. 언론 기관 종사자에 대한 사목적 관심
19. 미디어 사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특수한 심리적인 압박과 윤리적인 딜레마를 의미한다.
미디어가 현대 문화를 형성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전체 사회의 삶을 일구어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일반 대중 매체나 커뮤니케이션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 언론인들은 인간에 봉사하겠다는 숭고한 이념과 다짐으로 가득찬 책임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교회도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느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산업에 종사하는 언론인이 맞부딪치는 독특한 작업 환경이나 윤리적인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사목적 관심을 담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제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사목적인 계획은 무엇이 윤리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가를 진지하게 구별하려는 언론인들을 돕기 위해 그들을 규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언론인들의 미디어 현업에서의 일과 사생활에서의 윤리 규범을 통합시키기 위한 것이다.
Ⅴ. 사목 계획의 필요성
A. 주교들의 임무
20. 커뮤니케이션 산업에 의해 제안되는 요구의 타당성, 실제로는 긴급성을 인식하고 주교들과 교회의 제한된 인적 물적 자원을 배분하는 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당사자들은 자기 나라, 자기 지역 그리고 자기 교구 나름대로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여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우선 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이런 필요성은 과거보다도 현재가 훨씬 더 절박하다.
구체적인 이유를 든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현시대의 '아레오파고'인 미디어가 교회에 의해 오늘날까지도 소흘히 다루어져 왔기 때문이다.(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사명] 37항)
교황께서 언급하신 대로 "일반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거나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을 하는 데 다른 방법을 선호했었고 미디어는 몇몇 사람과 소수 집단에 맡겨졌었거나 또는 사목 계획 중 부차적인 수단이었을 뿐이었다."(같은 곳)
이 같은 상황은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B.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사목 계획 수립의 긴급성
21. 따라서 우리는 교구, 주교회의 또는 평의회들이 사목 계획 속에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포함시키도록 강력하게 권고한다.
우리는 또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특수한 사목 계획을 개발하거나 이미 수립된 계획을 평가하고 현대에 맞게 손질하길 당부한다.
이 방법은 정기적인 점검과 적용 범위 등 바람직한 진행 과정을 촉진하게 된다.
주교들은 이 작업을 할 때 일반 매체에 근무하는 언론인들과 영화, 라디오, 텔레비젼 그리고 인쇄 매체와 관계가 있는 국내외적 조직, 교회 매체 과련 단체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어떤 지역의 주교회의는 이미 이 같은 필요성과 목표를 분명하게 정하고 서로의 협력을 장려하는 사목 계획을 수립하여 잘 운영해오고 있다.
이 교서를 준비하는데 동원되었던 연구, 평가 그리고 협의의 결과는 교회 곳곳의 사목 업무 종사자들에게 유익한 자료로서 쓰여질 수 있고 또 쓰여져야 한다.
이같이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은 지역 교회의 필요에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이 계획들은 끊임 없이 변모하는 필요성을 비추어 고쳐지고 보완될 수 있도록 언제나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이 문헌 자체는 국가나 지역 수준의 사목 서한이나 주교들의 성명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점들과 사목 계획에 포함될 항목들을 제시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 항목들은 주교회의와 전문직의 언론인들로부터 얻은 제안을 반영하고 있다.
[ 결 론 ]
22. 우리는 교회가 "하느님 계획대로 사람들을 형제애로 일치시키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협력하도록 도와주는 '하느님의 선물'로서 미디어를 보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일치와 발전] 2항)
성령께서 과거에 당시의 하느님 계획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예언자들을 도우신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성령께서는 교회가 현대의 징표를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리고 교회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에 대한 연구, 평가와 그 올바른 사용 그리고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미디어가 오늘날 본질적이라는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도록 도와주고 계신다.
바티칸시에서,
1992년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에
교황청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존 P. 폴리
총무 피에르프랑코 파스토레
- [부록]은 교회(교도권)에 전하는 사목계획 요소들이므로 워드작업에서 생략합니다 -
-------------------------------------------------------
출 판 사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워드작업 : 박경수(Francis) [ http://www.webmaster.or.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