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선생님
서울의 지하철안에서는 매일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건너편 좌석에 앉은 승객들은 언제나 무표정 일색이다. 물론 그중 한 두사람은 미소를 살며시 띠고있다. 아니면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서 웃음을 억누르는 표정도 이따금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대부분은 피곤한 얼굴들..무슨 일이 그렇게 고달픈지 눈을 지긋이 감고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중년 남자. 입을 벌리고 옆 사람 어깨에 계속 방아를 찧어가며 정신없이 졸고있는 한 젊은 여성...그리고 다리 쩍 벌리고 앉아 구두를 벗은채 한발을 올려놓고 있는 아줌마...
한쪽 구석에서는 자기집 안방인양 소리소리 질러가며 휴대폰을 받는 할아버지..
요즈음은 불경기탓인지, 그 많던 광고판도 거의 사라져 눈 돌릴 데도 별로 없으니 자연히 주위 사람들에게 눈길이 갈수 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피곤한 눈을 잠시 식혀주는 몇가지 풍경들이 있다.
모델같은 몸매에 미끈한 각선미를 뽐내는 미니스커트의 젊은 아가씨..
침묵을 깨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깨우는 잡상인 아저씨의 카랑카랑한 호객소리...
그리고 복잡하기만 한 승객들 틈새 사이로 유유히 지나가는 걸인들..
어떤 할머니는 잠자는 사람마다 쿡쿡 찔러가며 돈을 강요한다.
한 할아버지는 백원만 백원만..하며 애처로운 목소리로..
한 장애인은 음악 카세트 목에 걸고 무관심한 승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들이 그렇게 지나가노라면 역시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먼저 지갑을 찾느라 분주해진다.
백원짜리 동전 몇개..아니면 천원짜리 지폐가 속속 바구니에 들어간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선행을 베푼 그들의 표정은 그 돈을 받은 이들보다 훨씬 밝아보인다.
오늘도 강남의 한 결혼식에 다녀오다가 지하철안에서 몇몇 걸인을 만났다. 휠체어에 왼쪽 다리만 올려놓고 앉은 60대 할머니는 껌을 팔고 있었다.
천원을 건네주자 할머니는 껌 한통을 주며 잔돈 오백원까지 거슬러준다. 보통 3백원짜리 껌도 잔돈 안거슬러주는 걸인이 허다한데...그나마 양심적이라고할까.. 그런 생각이 스쳐가는데..할머니는 한마디를 잊지않고 건넨다.
'건강하시고..하시는 일 잘되시고..복많으세요.'
단돈 천원에 좋은 덕담 듣고 껌 한통까지 손에 쥐고있으니..절로 엔돌핀이 돈다. 옆에 서있던 청년이 또 껌을 산다. 그 옆에 있던 여대생도 다시...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은 전파속도가 그만큼 빠른 것일까? 그 할머니는 그들에게도 일일이 덕담 전하는걸 잊지않는다. 건성이 아니다. 말 한마디에 정성이 깃든 최소한의 답례의 표시다.
나는 그 덕담과 승객들의 표정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 한발없는 할머니의 밝은 표정..그 환한 얼굴..낭랑한 그 목소리..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보다 더 기분좋은건..그 광경을 보는 주위 사람들이다. 할머니는 구걸을 하는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선행을 가르치는것같다.
지하철안 승객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보인다. 덩달아 나까지도 흐뭇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