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은 기억을 먹고 살아요(0813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2015. 8. 13. 오전 11: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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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3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마태오 18,2119,1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고 용서하여라, 매정한 종의 비유)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용서받은 기억을 먹고 살아요>


저는 보통 한 달 반이나 두 달에 한 번 정도 고해성사를 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보면 좋겠는데 많이 게을러졌나 봅니다. 모든 성사가 은총이 충만한 아름다운 것이지만, 고해 성사가 특히 그러하다는 체험을 가끔씩 합니다. 용서하기는 어려워도 용서받고 싶은 것이 인간적인 심성이 아닐까요.


자신의 잘못으로 구렁텅이에서 헤매고 있을 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누군가가 구렁텅이에서 건저내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용서이지요. 선뜻 용서를 청할 용기는 없지만 누군가 용서를 해 준다면 하늘을 날듯이 기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체험입니다. 고해성사는 바로 이 체험의 자리입니다.


고해성사에서 죄 고백이 끝난 후 사제는 보속을 주고 사죄경을 외웁니다. 그리고 파견을 하지요.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언뜻 보면 별 의미 없는 마침 인사 정도로 들리기도 하지만, 이 안에는 참으로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고 죄의 언저리에서 헤매고 있던 적은 없으셨습니까? 만약 그런 경우가 있었다면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부족한 탓일 것입니다. 온전히 뉘우치지도 제대로 죄를 고백하지도 않았기에 마음 깊은 속에 찝찝한 느낌이 남아 있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죄를 용서받았는지 아닌지 의심이 가는 경우도 있고,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과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두려워 용서받았음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용서받은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음을 아시기에 조건 없이 용서를 베푸시지만 인간적인 조건에 얽매여 살아가다 보니 용서를 체험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용서할 자신도 부족합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용서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이제는 죄의 사슬을 끊고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화해와 평화의 삶을 살도록 초대하는 파견의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안녕히 가십시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가슴을 펴고 세상 안으로 들어가라는 초대입니다. 죄로 물든 세상 안으로 말이지요. 용서를 통해 죄를 녹이라는 사명을 받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으니,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주님처럼 그렇게 용서하십시오.”


고해 사제의 파견 인사에 바로 이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이 말씀처럼 살고 있습니까? 사실 제대로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주님의 용서에 대한 강한 체험이 부족한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주님의 용서에 대한 체험을 잊기 때문입니다. 용서받았음을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렇게도 자주 용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가끔씩 용서받은 기억을 떠올려야겠습니다. 단지 그 순간의 기쁨이나 평화로 돌아가 머물고자 함이 아닙니다. 용서할 힘을 얻기 위함이지요. 용서받은 순간의 말 못할 기쁨을 항상 지니고 있는 사람만이 용서를 통해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이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받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하느님께 용서받은 기억을 항상 마음에 두고, 하느님처럼 너그럽게 용서하며, 죄로 물든 이 세상을 곱고 아름답게 정화시켜가는 나날의 삶을 보듬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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