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오늘의 성인♡

2016. 5. 14. 오후 10:16:52

글자

♡5월 15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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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Petrus)

성 안드레아(Andreas),

성 바오로(Paulus) 

성녀 디오니시아(Dionysia)

축일 5월 15일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람프사쿠스에는 젊은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재능의 탁월함과 신앙과 덕에
있어서 뛰어난 성 베드로(Petrus)였다.
트로아(Troas)에서 집정관 옵티무스는 모든 신자들을
비너스 신전 앞에 끌어다 놓고 희생 제물 바치기를
강요하였다. 이때 성 베드로는 용감하게
“당신이 그 행동은 나에게 악명 높은 음란한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라고 명령하는 것인데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오. 언급조차 하기 싫은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는 것을 당신의 법으로
처벌한다는 것도 놀랍소” 하며 거절하였다.

그 즉시 옵티무스는 그를 바퀴에 매달라고
명령하였고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뼈는 부스러지게 되었다.
순교자는 자신의 눈을 하늘로 향하고 힘찬 표정으로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잔인한 폭군을
이길 수 있는 인내를 주셨기에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성 베드로의 결심을 본 옵티무스는
참수를 명령하였다.

성 베드로의 참수 후 세 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
즉 성 안드레아(Andreas), 성 바오로(Paulus)와
니코마쿠스(Nicomachus)가 옵티무스 앞에 섰다.
총독은 각자의 고향과 종교를 물었고
니코마쿠스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오.”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강요받자
니코마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마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소.”
지방총독은 그를 고문대에 매달고 고문하도록 명령했다.
고통을 못이길 정도가 되자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준비가 되어 있소”라며 배교하였다.
지방총독은 즉시 그를 고문대에서 끌어내리라고
명령하였고, 그는 제사를 드리자마자 마귀에 의해
사로잡혀서 땅에 넘어져 머리를 찧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었다.

16세가량 된 나약한 처녀였던 성녀 디오니시아는
이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가엾은 사람! 순간의 안락을 위해 영원한
고통에로 자신을 내던지다니!” 이 말을 들은
옵티무스는 그녀가 그리스도교 신자인지를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매춘을 시킨 후
화형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위협이 효과가 없자 총독은 두 명의 젊은
청년에게 그녀의 순결을 빼앗도록 명령했고
청년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갔지만
너무도 거센 저항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자정을 넘기자 빛으로 반짝이는 젊은이가 나타나
집 전체에 빛을 퍼뜨리며 그들 앞에 섰다.
놀란 두 청년은 성스러운 처녀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녀는 청년들을 일으켜 세우고 겁내지 말라고
하며 말했다.
“이분은 나의 수호자이자 보호자이십니다.”
그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그녀에게 중재를 요청하였다.

다음날 아침 이교도의 사제에 의해 흥분된
군중들이 지방총독의 집을 에워싸고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지방총독은 그들을 불러내어 디아나(Diana)
여신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그들이 거부하자 총독은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고
구경꾼들에게 넘겨주었다. 구경하던 이들은
그들에게 돌을 던져 죽게 했다.

성녀 디오니시아는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처형하는 무질서한 소리를 듣자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경비병들로부터
빠져나와 그들이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을 보면서 외쳤다.
“당신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지금 당신과 함께 이곳에서 죽겠습니다.”
총독은 성녀 디오니시아가 순결을 지키게 된
놀라운 사건과 순교자들과 함께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에게서 데리고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참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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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딤프나(Dymphna)

축일 5월 15일 

성녀 딤프나는 켈트족(Celts)의 어느 족장의 딸인데,
아일랜드계인지 브리턴인지 아니면 아모리켄인지
확실치 않다고 한다. 그러나 아일랜드 사람임이
확실하다고 본다. 그녀는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의
근친상간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집을 뛰쳐나갔다.
이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고해신부이던
성 게레베르누스의 도움으로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en)으로 갔는데, 이때 두 명의
동료들이 함께 갔다고 한다. 이들은 암스테르담
근교 게엘에 기도소를 세우고 은수자로 살았다.

그러나 딤프나의 부친이 보낸 자객에 의하여
두 명의 동료와 사제는 살해되고,
딤프나는 부친에 의하여 참수되었다고 전해온다.
딤프나와 게레베르누스의 유해는 13세기에 게엘에서
발굴되어 새로운 무덤에 안장되었는데,
그녀의 무덤에서 기도하면 간질병자와
정신이상자들이 치유된다는 수많은 치유기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간질병과 정신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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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카시우스(Cassius),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Maximus)

축일 5월 15일 

성 카시우스(Cassius),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동료 신자들은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클레르몽(Clermont)에서 그들의 지역을 침략한
게르만족의 족장 크로카스(Chrocas)의 통치 중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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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르타(Bertha)

축일 5월 15일 

프랑스 로렌(Lorraine)의 백작의 친척인
성녀 베르타는 라인(Rhine)에 광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외인과 결혼하였으나 그녀의
남편이 전투에서 사망하자 아들
루페르투스(Rupertus)를 신자로 개종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빈민 구호소를 여러 곳에 세웠고,
로마(Rome)를 순례한 후에는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빙엔(Bingen) 근교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20살에 아들 루페르투스가 죽은 뒤 그녀는
그곳에서 25년을 더 살다가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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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르콰투스(Torquatus)

성 체칠리우스(Caecilius),

성 크테시폰(Ctesiphon),

성 에우프라시우스(Euphrasius),

성 헤시키우스(Hesychius),

성 인달레티우스(Indaletius),

성 세쿤두스 또는 세쿤도(Secundus)

축일 5월 15일 

성 토르콰투스(Torquatus)는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가 에스파냐의 복음화를 목표로
파견한 최초의 7명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그 외의 선교사는 성 체칠리우스(Caecilius),
성 크테시폰(Ctesiphon),
성 에우프라시우스(Euphrasius),
성 헤시키우스(Hesychius),
성 인달레티우스(Indaletius),
성 세쿤두스(또는 세쿤도, 사도 20,4)이다.
성 토르콰투스는 주로 그라나다(Granada)의
과딕스(Guadix)에서 활동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에스파냐로 파견된 일곱 명의 선교사 주교는
모두 순교하였다. 성 체칠리우스는 일리베리스
(Illiberis, 오늘날의 그라나다 지방)의 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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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막달레나 알브리찌, 동정(1465년 순교)

축일 : 5월 15일

귀족가문의 딸인 그녀는 부모와 사별하자마자
세상과 결별키로 결정하였다.
그녀가 고향에 있던 성 마르가리따 수녀원에
입회할 마음으로 문 앞에 당도하였을 때,
"막달레나야, 브루나떼로 가야한다"는 음성을
세번이나 들었다.
그 수녀원은 브루나떼 산속에 있는 매우 쓸쓸하고
초라한 움막이었다. 불과 몇몇의 수녀들만 있었으나,
그녀가 들어오면서부터 이 공동체는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그녀가 원장이 되면서부터
이 공동체는 성 아우구스띠노의 은수자회로
소속을 변경하였다. 생필품이 부족하여
문전걸식을 하였어도, 부랑인들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처녀들을 위하여 집을 내줄 정도로
환대하였다.
그녀는 철저히 은둔자의 생활을 하였으나,
병자를 치유하는 등의 특은 때문에 많은
이들의 방문을 받아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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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심플리치오(Simplicius)

축일 5월 15일 

성 심플리키우스(또는 심플리치오) 주교는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생매장 당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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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드레아 아벨롱(Andrew Abellon)

축일 5월 15일 

프랑스 생-막시민(Saint Maximin) 출신인
안드레아 아벨롱(Andreas Abellon)는 고향의
수도원에서 도미니코 회원이 된 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왕립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신심이 뛰어났고 수도회의 규칙을 엄수하여
큰 성덕을 닦은 사람으로 공경을 받았다.
이외에도 선교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남부 프랑스의
수많은 도미니코회 성당을 장식하였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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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밥트스트 드 라 살(John-Baptist La Salle)

축일 : 5월 15일

그는 귀족 집안 출신으로 라임스에서 태어났고,
어릴적부터 신심깊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불과 11세 때에 삭발례를 받았고,
16세 때에는 라임스 주교좌의 멤버가 되었다.
1670년, 그는 파리의 성 술피스 신학교에 들어가서
1678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러나 1679년에 그는
아드리앵 니엘이란 한 평신도를 만난게 인연이 되어
가난한 소년들을 위하여 학교를 개설할 뜻을 품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주교좌의 직책을 사임하고,
일단의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니,
이것이 크리스챤 학교 수도회의 시작이다.
그는 1688년에 무료학교를 파리에 세웠고,
또 주일학교를 운영하였다. 1700년,
그의 수도자들이 로마에도 학교 문을 열었는데,
이를 계기로 하여 그의 수도회는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파리의 대주교로부터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수도회는 날로 발전하여
지금은 17,000명의 회원들이 세계 도체에서 활약한다.
그는 최초로 교사 교육을 실시한 인물이고,
교사들에게 자부적인 사랑을 불어넣은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교육 철학은 "크리스챤 학교의 운영"이란 저서 淡?
망라되어 있다. 라틴어 보다는 모국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킨 일도 있다.
그는 1719년의 성 금요일에 운명하니, 68세였다.
그는 모든 학교와 교사들의 수호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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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시도로(Isidore)

축일 5월 15일 

이시도로는 희랍어로 '선물'이란 뜻이다.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데키우스 황제의 장교였는데, 그가 키오스 섬에
주둔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우두머리 노메루스는
그를 불러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하였다.
그가 이를 거부하자 박해자는 그의 혀를 자른 후
참수하고 시체를 우물에 던져 넣었다.
신자들이 그의 유해를 찾아내어 정성껏 안장하였고
후일 그곳에는 성 이시도루스 대성당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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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사야(Isaias)

축일 : 5월 15일

이사야는 '구원하시는 주(主)'란 뜻이다.

키에브 출신인 그는 케이브스 수도원의
수도자였는데, 그의 신심이 너무나 뛰어나서,
1062년에 원장이 되었다가, 15년 뒤에는
또다시 주교로 간택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정력을 다 바쳐 복음 선포에 주력하였는데,
새로운 개종자를 많이 얻는 것보다는
영세자들의 신앙 재교육에 더욱 정성을 쏟았다.
그의 설교는 수많은 기적들로 인하여 더더욱
힘이 있었고, 지칠줄 모르는 힘으로 교구민들의
영혼을 돌보므로써 이상적인 사목자로
이미 공경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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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시도로(Isidore)

축일 5월 15일 

이시도로는 희랍어로 '선물'이란 뜻이다.

에스파냐의 마드리드(Madrid)에서 태어난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후안 데 베르가스의 영지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그러나 그의 신심은 매우 깊었고,
수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자신도 가난하였지만 비록 적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면서 살았다. 그는 5월 15일에 마드리드에서
운명하였는데, 그의 아내 마리아 토리비아 역시
남편 못지않은 신심과 가난을 살았기 때문에
산타 마리아 데 라 카베사란 이름으로 공경을 받는다.

실로 그는 노동자, 이웃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었다. 국왕 필립 3세가 중병에 들었을 때,
그의 전구로 회복되자 그의 시성 운동을 적극
장려하여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
(Gregori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농부와 마드리드 시의 수호성인이다.
또한 그는 1947년 미국 국립 농촌 생활 위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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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시도로 농부(1070-1130)

이시도로는 농부들과 시골 공동체의 수호 성인이다.
특히 그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미국 국립
농촌 생활 위원회의 수호자이다.그는 겨우
괭이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 때부터
시외에 있는 마드리드 출신의 부유한 지주인
후안 데 베르가의 농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자기와 같이 단순하며
소박하고 정직한 젊은 여인과 결혼했는데,
이 여인도 마리아 데 라 카베사란 성녀가 되었다.
그들은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어려서 죽었다.
이시도로에게는 깊은 종교적 심성이 있었다.
그는 성당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으며,
휴일에도 마드리드와 그 주변 성당을 순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또한 그는 하루 종일
쟁기질을 하면서 하느님과 대화하였다.
그가 너무 오랫동안 교회에서 머물고 때때로
늦게 나타나자 그의 동료들은 그의 신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시도로는 가난한 이들에 대해 크나큰 사랑의
마음을 가진 이로 널리 알려졌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적적으로 음식을 마련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동물들을
잘 보호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130년 5월 15일에 사망했으며
이냐시오,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예수의 데레사,
필립보 네리와 함께 1622년에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이들은 '다섯 성인'으로 스페인에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설명 : 평범한 농부가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육체적 노동이 존엄하다는 것, 성인품은
신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관상 생활은 학문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
단순한 생활이 성덕과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등이다.
그를 도와 주던 천사나 신비스런 소에 대한
전설은 그의 노동이 소홀하게 여겨지지 않고
그의 의무가 성취되지 않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진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
너 자신의 영성 생활을 옳게 한다면
너의 지상 과업도 옳게 될 것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3) 라고
나자렛의 목수가 말한 대로.

인용 :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낟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 나무를 준다. 너희는 이것을 양식으로 삼아라.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도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창세 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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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홀바르드(Hallvard)

축일 5월 15일 

성 홀바르드(Hallvard or Hallward or Halward)는
노르웨이 후사비(Husaby)에 살던 한 지주의
아들이었다. 어느 날 배를 타고 드람멘피오르드
(Drammenfjord)를 지나갈 즈음 어느 여자 노예의
애절한 호소를 듣게 되었다. 그 내용은
자신이 도둑으로 몰려 죽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돕고 싶었으나 여자의 추적자들이 곧 당도하여
그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홀바르드는 그녀의 무죄함을 알았기 때문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고, 결국 추적자들은 그와
그녀를 잔인한 방법으로 체포하여 함께 죽여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노르웨이 사람들은 무죄한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처참하게 죽은 그를 순교자로 모시고
공경하였고, 그의 유해를 오슬로 성당에 모셨을
뿐만 아니라, 오슬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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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힐라리오(Hilary)

축일 5월 15일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태생인
성 힐라리우스(Hilarius, 또는 힐라리오)는
12세 때부터 수도생활에 매력을 느껴 집을 떠나
은둔소를 세웠다고 한다. 이윽고 그는
갈레아타 수도원을 세웠으며, 자기 수도원을
파괴하려던 고트족의 왕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였을 정도로 그의 성덕이 출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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