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오늘의 성인♡

2016. 5. 10. 오전 6:35:49

글자

♡5월 10일 오늘의 성인♡
===============



성 가탈도(Cataldus)

축일 5월 10일 

아일랜드 먼스터(Munster)에서 출생한
성 카탈두스(또는 가탈도)는 그의 뛰어난 학문으로
큰 명성을 얻었고, 리즈모어(Lismore)에서 가르쳤다.
그는 나중에 교장이 되었으나 직책을 사임하고
예루살렘 순례 길에 올랐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뜻밖에도 그가 이탈리아의 타란토 주교로 선임되어
열렬한 신심과 해박한 지식으로 오랜 동안 봉사하였다.
가탈(Cathal)로도 불린다.


================================


성 고르디아누스(Gordianus, 또는 고르디아노)

성 에피마쿠스(Epimachus)

축일 5월 10일 

로마 순교록과 서방교회는 6세기부터 5월 10일에
성 고르디아누스(Gordianus, 또는 고르디아노)와
성 에피마쿠스(Epimachus)의 축일을 성대히 지내오지만,
그들의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성 에피마쿠스는 250년경에 성 알렉산데르
(Alexander, 12월 12일)라는 사람과 함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벽돌 가마에
던져졌다고 한다. 물론 수많은 고문을 당하였어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성 에피마쿠스의 유해는 로마(Rome)로
이장되었다. 한편 성 고르디아누스는 로마에서
참수되었고, 그의 유해는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켐프톤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아왔다. 이 두 성인은
다마수스(Damasus) 교황의 비문에 언급되어 있으므로
역사성은 확실하다.


================================


성 디오스코리데(Dioscorides)

축일 5월 10일 

성 디오스코리데에 대해 알려진 모든 것은
그가 소아시아의 스미르나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에서
순교했다는 것뿐이다.


================================
  

성녀 베아트릭스(Beatrice)

축일 5월 10일 

베아트릭스(Beatrix, 또는 베아트리체)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못하였다. 그녀가 아직 아기였을 때
어머니가 사망하였고, 6살 때 그의 아버지
마르키스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유일한 보호자이던 큰 오빠마저
독살되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10살이었다. 아버지의 사망 후부터 그녀는 지극히
단순한 옷들만 입었으며, 소녀들이 흔히 하는 온갖
장신구는 모두 거부하였다. 그녀가 결혼 적령기가 되자
그녀는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유일한 오빠 몰래 집을 빠져 나와서
솔라롤라의 베네딕토 수녀원으로 갔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
1년 반 후에 그녀와 다른 열 명의 자매들이
젬몰라로 갔는데, 이곳은 아주 조용하여 기도생활에
더욱 보탬이 되는 한적한 은둔소였다.
베아트릭스는 여기서 여생을 보냈는데,
그녀는 불과 20세에 사망하였다.
1763년에 그녀의 공경을 공식 승인하였다.


================================


성 칼레포디우스(Calepodius)

성 팔마티우스(Palmatius)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성 펠릭스(Felix)

성녀 블란다(Blanda)

축일 5월 10일 

성 칼리스투스(Callistus)의 전설적인 언행록에
따르면 성 칼레포디우스(Calepodius)는
로마(Rome)의 사제였는데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의 재임 기간(222-235년)에 일어난 박해로
순교하였다. 그는 목이 잘린 뒤에 티베르 강에
던져졌는데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그의 시신을
교황 칼리스투스(Callistus)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이 성인의 유해는 트라스테베레와 산 판크라치오의
산타 마리아 성당 등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집정관이었던 성 팔마티우스(Palmatius) 역시
이 기간 중에 가족 및 수행원들과 함께 순교하였고,
원로원 의원이었던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또한 가족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펠릭스(Felix)와 성녀 블란다는 부부 사이인데
이들도 세레루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


성녀 솔란지아(Solangia)

축일 5월 10일 

간혹 베리의 성녀 제느비에브라고도 불리는
성녀 솔란지아는 프랑스 베리 지방의 수호성인이다.
그녀는 포도원을 운영하지만 매우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그녀의 출생지는 부르주와
인접한 빌러몽이다. 그러나 지극히 열심하던 그녀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기로 결심하여 혼자서
정결서원을 발하였다. 늘 하는 일이라곤 푸른
초원에서 양떼를 돌보는 것이었으므로 자연과
이야기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녀에게는 동물을 잘 다스리는 능력 외에도
치유의 은사까지 얻었음이 드러났다.

이때 그녀의 미모와 성덕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푸아티에(Poitiers)의 백작 아들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말을 타고 산으로 가보니 마침 그녀는
양떼들과 함께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그는 쏜살같이 말을 달려 그녀를 말위에 앉히고는
달아나던 중 그녀의 반항이 거세어서 땅에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이때 그는 사냥용 칼을 들고
그녀를 위협하다가 끝까지 항거하자
그만 살해하고 말았다.


================================


성 안토니누스 피에로치
(Antoninus Pierozzi, 또는 안토니노)

축일 5월 10일 

성 안토니누스 피에로치(Antoninus Pierozzi,
또는 안토니노)는 1405년에 설교자회에 입회하여
40여 년 동안 이탈리아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전전하며 훌륭한 수도자로 살았다.
그는 대부분의 수도 생활을 수도원장으로 지냈으며
두 차례나 관구장을 역임하였다.
1436년 피렌체에서 그는 코시모 디 메디치
(Cosimo di Medici)의 재정 지원으로
산마르코(San Marco)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유명한 화가 프라 안젤리코가 벽면을
장식하였고,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산실이 되었다.

1446년 안토니누스는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 불굴의 정의감과 넘쳐흐르는
사랑으로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지혜와 능력이
뛰어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도록 자주 초빙되어
활약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요 관심사는 언제나
교구민에 대한 사랑이었으며, 그 자신이 단순한
생활과 모범적인 처세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교구를 순회하며 강론하였으며,
그로부터 물적, 영적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였다.
또한 그는 사회와 경제 발전에 대한 문제에도
깊이 관여하였으며, 국가는 공동선에 기여해야 할
의무를 지녔다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1523년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가
그를 시성하였는데, 교회 개혁에 대한 그의
이상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성 알피우스(Alphius) 또는 알피오

성 필라델푸스(Philadelphus)

성 키리누스(Cyrinus)또는 치리노

성녀 베네딕타(Benedicta)

축일 5월 10일 

시칠리아(Sicilia) 섬의 오트란토(Otranto) 교구와
렌티니 교구의 수호성인은 성 알피우스(또는 알피오),
성 필라델푸스(Philadelphus) 그리고 성 키리누스
(Cyrinus)이다. 이 세 순교자 외에
성녀 베네딕타(Benedicta)가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Rome)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받은 후 나폴리(Napoli)의
포추올리(Pozzuoli)에서 몇 사람이 순교하고
나머지는 다시 시칠리아로 끌려왔다.
그들의 조리 있는 설명과 투철한 신앙정신으로
말미암아 20명의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개종자들이
나왔다. 이때 알피우스는 22세였는데 혀가 잘리는
등의 고문으로 순교하였다. 21세의 필라델푸스는
구워 죽이는 형을 받았고, 19세의 키리누스는
기름에 튀기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


성 요한(John)

축일 5월 10일 

에스파냐 알모도바르 델 캄포(Almodovar del Campo)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 요한(Joannes)은
14세 때에 법률 공부를 위하여 살라망카(Salamanca)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부 대신에 오히려
수도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은수생활을 하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 3년 후에 그는 알칼라로 가서 도미니코
소토의 문하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는데,
이때 페드로 게레로를 만나 사제로 서품되었다.
양친이 막대한 유산을 물려주고 운명하였으나,
그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후 그는 뛰어난 설교가로 이름을 떨쳤고,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의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그는 겁 없이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
등을 꼬집는 설교를 하다가 미움을 받았는데,
결국은 이런 일 때문에 투옥되었다.
그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설교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석방되었고 그의 명성은 높아만 갔다.
그는 에스파냐 전역을 순회하는 설교를 계속하는
한편,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a of Avila),
십자가의 성 요한(John of the Cross),
성 프란치스코 보르기아(Francis Borgia) 그리고
성 베드로 알칸타라(Petrus Alcantara)의
영적 지도자로서도 활약하였다. 그는 몬틸랴에서
운명하였고, 1970년에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


성조 욥(Job)

축일 5월 10일 

욥은 '울부짖는 자’, ’핍박 받는 자’,
’회개한 자’. ’사랑을 입은 자’란 뜻이다.

성 욥은 구약성서의 시서(詩書)에 속하는
욥기의 저자로 흔히 불린다. 욥기의 목적은
불의한 고통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것이나,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혼란에 빠진 한 인간이 거룩하고 전능한
하느님께 대하여 자리 매김하려는 시도에 대한
것이다. 욥기는 크게 산문과 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문 부분의 바탕을 이루는 본래의 욥 이야기는
이미 기원전 2천년대 말기부터 근동 지방의 현인들
사이에 일종의 민간 설화로 두루 퍼져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이 기원전 1천 년 이후에 이스라엘에도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에제 14,14 참조).
바빌론 유배 이후, 곧 6세기 말엽 이후,
그리고 3세기 전반 이전에(집회 49,9 참조)
팔레스티나에 살던 어떤 유대인 저자가,
성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욥 이야기를
자기의 의도에 맞게 각색하고 윤색하여 거기에
독창적인 운문 부분을 지어 붙였다.
그러나 이 문문 부분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다.
저자가 대화 부분의 욥을 통해서 토로하는 말은,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직접 겪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욥기는 욥이라는 특수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보편성이 이 책의 큰 특징을 이룬다.
욥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선택, 시나이 산 계약,
메시아 사상 등 선택된 민족의 특유한 사항이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아울러 유배 이후에 저술 되었음에도, 이스라엘의
역사와 구약성서에서 일대 전환점을 이루는
“예루살렘 함락 - 성전파괴 - 유배”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암시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고통이라는 공통 현상을 바탕으로
자기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겠다는 저자의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욥기는 출발점에서부터 보편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주인공 욥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그의 거주지도
이스라엘 땅이 아니다.
‘욥’이라는 이름 자체도 당시 여러 나라에서
쓰이던 이름이라고 생각된다(1,1). 욥의 세 친구
역시 모두 외국 이름을 가진 이방인이다(2,11).
욥은 또한 대화를 시작하는 독백에서부터 이미
자기의 고통을 일반화한다. 고통에 처한 자신을
‘고생하는 이들, 영혼이 쓰라린 이들’과
동일시하면서 그들을 대변하여 하느님에게 질문을
던진다(3,20-21). 물론 대화 중에 욥은 주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도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다른 이들과의 연대성 안에서
펼쳐 간다. 욥기의 저자는 자기의 직접적인 체험을
토대로 처음부터 보편성을 염두에 두면서 자기의
생각을 일반적으로 전개시킨다.

성 욥에 대한 전례적인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부터
인정되었지만, 단순하고 곧으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는 욥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모범이 된다.


================================


성 콘레트(Conleth)

축일 5월 10일 

성 콘레트는 대부분의 아일랜드 초기 성직자들처럼
금속세공인이었으며 리피(Liffey)의
올드 코넬(Old Connell)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였다.
이때 그는 성녀 브리지다(Brigida)와 친분을 맺었다.
그는 킬데어에 있는 성녀 브리지다의 수녀원에서
영적 지도자로 봉사했다.


================================


성 콤갈(Comgall)

축일 5월 10일 

아일랜드의 얼스터(Ulster) 태생인 성 콤갈은
성 핀타누스(Fintanus)의 지도하에 클루엔 에드넥
수도원에서 수학한 뒤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러나 곧 몇몇 동료들과 루그 에른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가 작성한 회칙은 너무 엄격하여
동료 가운데 7명이 죽는 불상사가 발생할 정도였다.
그 후 그는 최초의 수도원을 떠나 웨일스(Wales)
북서부 귀네드(Gwynedd)의 뱅거(Bangor)에 수도원을
세우고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를 교육시켜
배출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의 수도원이 아일랜드에서
가장 유명하였으며 약 8천 명 이상의 수도자들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성 콜룸바(Columba)와 동행하여
스코틀랜드 북부의 인버네스(Inverness)로 선교여행을
하였고 헤트랜드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콤갈은 자신의 엄격한 수도생활로 인하여
무거운 병을 얻고 몇 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운명하였다.


================================

 
성 콰르투스(또는 콰르토(Quartus)

성 퀸투스(Quinctus)

축일 5월 10일 

성 콰르투스(또는 콰르토)와 성 퀸투스(Quinctus)는
이탈리아 카푸아(Capua)의 시민으로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카푸아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성가/축일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