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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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글라스티아노(Glastian)
축일 1월 28일
스코틀랜드의 파이프 지방에서 태어난
성 글라스티아누스(Glastianus, 또는
글라스티아노)는
파이프 교구의 주교로서 픽트(Pict) 사람들과
스코틀랜드 사람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종식을
중재하였고, 픽트 사람들이 점령되었을 때
그들의 권익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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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오니데(Leonides)
축일 1월 28일
성 레오니데와 동료 순교자들은 이집트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하였다.
이들은 성 필레몬(Philemon, 3월 8일)과
성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3월 8일)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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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티르수스(Thyrsus),
성 레우치오(Leucius)
성 칼리니쿠스(Callinicus)
축일 1월
28일
성 티르수스(Thyrsus),
성 레우키우스(또는 레우치오)와
성 칼리니쿠스(Callinicus)는
소아시아
프리지아(Phrygia)의 아폴로니아(Apollon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로 옮겨졌다가 그 후에
에스파냐와 프랑스로 모셔졌다. 그 이유는
성 티르수스가
모자라빅(Mozarabic) 전례의
성무일도에 등장하고, 또한 그가 고대 프랑스
바스 알프(Basses Alpes)의
시스테롱(Sisteron)
주교좌 성당의 수호성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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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지에로(Ruggiero)
축일 1월 28일
토디의 루지에로의 생애는 거의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1216년에 천사적 사부인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로부터 직접
수도복을 받은 초기의 작은 형제회 회원이란 사실 뿐이다.
그는
필립바 마레리아(Phillippa Mareria, 2월 16일)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리에티(Rieti)에
클라라회 수도원을 세우고 지도할 때 영적 지도자로
활약했고, 1237년 1월 5일에 토디에서 선종했다.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그에 대한 공경은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는 로제르(Roger)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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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카르도(Richard)
축일 1월 28일
영국 사람인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시토회 수도승이었다. 그는
클레르보(Clairvaux)의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8월 20일)에 의해
프랑스의 캉브레(Cambrai) 근방
보첼르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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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울리노(Paulinus)
축일 1월 28일
학자로도 존경받던 성 바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는
776년부터 샤를마뉴(Charlemagne)의 궁중 관리로
있으면서 요크(York)의 알퀴누스(Alcuinus, 5월
19일)
등과 가까이 지낸 유명 인사였다.
787년 그는 자기 고향 근교인 이탈리아 아퀼레이아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매우
활동적인 성품을 지녔던
그는 많은 교회를 세웠고, 아바르족(Avar, 5-9세기에
중앙아시아, 동유럽, 중앙유럽에서 활동한 몽골계
유목민족)을 위해 선교사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시와 찬미가 등의 저술 활동도 하였다.
17세기 이전까지는 그의
축일을 그가 사망한 날인
1월 11일에 기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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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발레리오(Valerius)
축일 1월 28일
에스파냐 사라고사의 주교인 성
발레리우스
(또는 발레리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추방당했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살아남아서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칙령이
반포된 후 자신의 교구로 되돌아왔다.
사라고사의 성 빈첸시오(Vincentius, 1월 22일)는
그의
부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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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놀라스코(Peter
Nolasco)
축일 1월 28일
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
태생으로 15세 때에 부친과 사별하면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 후 그는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로 가서
막대한
그의 재산을 무어인들에게 포로로 잡힌 그리스도인들의
석방 대속금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중에 그는
어떤 환시를 보고,
그 지시에 따라 그리스도인
노예 해방을 위한 수도회 설립을 결정하였다.
그는 성 라이문두스(Raymundus, 1월 7일)의
도움으로
'속량의 성모회'(메르체다리오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도회는 아라곤(Aragun)의 왕 야고보의 지지와
더불어
1235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
(Gregorius IX)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 회원들은 노예 석방을 위한 일은 무엇이든
하였다.
그런 과감한 행동을 하던 성 베드로도 한때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1628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
(Urban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664년
보편교회에서 그의 축일을 기념하도록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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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토마스(Peter Thomas)
축일 1월 28일
성 베드로 토마스(Petrus Thomas)는 프랑스 남서부
가스코뉴(Gascogne)의
브레이유(Breil)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는
성당도 없었지만,다행히 카르멜회와 연관을
맺게 되고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콩동에서
수련을 시작하였다.
1342년 그는 카르멜회의 총경리가 되었다.
이 직책 때문에 그는
아비뇽(Avignon)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교황이 머무는 곳이라 즉시 그의 성덕이
고위성직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는 설교에도 매우 뛰어났으므로 교황 클레멘스 6세
(Clemens VI)의 장례식에서 강론하도록 초청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제노바(Genova), 밀라노(Milano),
베네치아(Venezia)의 교황대사로서 힘든 정치적
문제들을 원만히
타결하는 수완을 보였다.
그는 1354년에 파티(Patti)와 리파리(Lipari),
1359년에 코론(Coron), 1363년에
칸디아(Candia)의
대주교 그리고 1364년에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의 명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교황 우르바누스 5세(Urbanus V)를 위해서
세르비아, 헝가리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여행하면서
투르크족에 대항할 십자군을
조직하였다.
136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공격하는 원정대에 참가하여 화살을 맞고 심한 부상을
당한 그는 3개월 뒤에 키프로스(Cyprus)에서 운명하였다.
그래서 그를 순교자로 공경하는 지방도 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608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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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마데오(Amadeus)
축일 1월 28일
프랑코니아(Franconia)의 왕가 출신인
아마데우스(또는
아마데오)는 1110년에
도피네(Dauphine)의 샤트(Chatte) 성에서 태어났다.
그가 8살이 되었을 때 그의 부친인
클레르몽
(Clermont)의 아마데우스(1월 14일)가
본느보(Bonnevaux)의 시토 수도원에 입회하자,
그 역시
그곳에서 공부하다가 얼마 후 부친과 함께
클뤼니(Cluny) 수도원으로 옮겨갔다. 그 후
1144년 그는 교황 루키우스
2세(Lucius II)에
의하여 스위스 로잔의 주교로 임명되어 교구 발전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특히 그의 설교는
당대의
명성을 얻기에 충분하였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적인 공경은 이미 18세기 초에
시작되었고, 1903년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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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Anthony)
축일 1월 28일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아스콜리피체노(Ascoli Piceno) 근교에서
태어나 1306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에 입회하였다.
그때
톨렌티노(Tolentino)의 성 니콜라우스
(Nicolaus, 9월 10일)는 그를 일컬어 수도생활의
귀감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는
특히 인내심이
뛰어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며,
그의 전구로 이루어진 기적들이 수없이 보고되어
있을 정도로
덕이 높았다. 그는 9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59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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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티모(Anthimus)
축일 1월 28일
성 안티무스(또는 안티모)는 769년
샤를먀뉴(Charlemagne)에 의해 설립된
브랑톰
수도원의 초대원장 중의 한 명이었다.
그 수도원은 817년 노르만족의 침공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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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고보(James)
축일 1월 28일
야고보(Jacobus)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키우시(Chiusi) 부근의 치타 델레 피에베
(Citta delle Pieve)에서 어느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제가 될 마음을
굳히고 엄격한 생활부터 시작하였다.
고향 근방의 폐허화된 어느 성당을 수리하면서부터
그는
병자들을 돌보려는 마음을 굳히고 집을
수리하여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재산과 법률 지식을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선기금을 부정하게 착복한 키우시의
주교 때문에 구호소가 점점 황폐화되어
가는 것을 보고
그 기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일반법정과 교회법정 모두에
키우시 교구의
주교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으나,
결국 그 주교가 보낸 사람들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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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고보(James)
축일
1월 28일
로마 순교록은 팔레스티나(Palestina)에서
은수자로 기억되는 성 야고보(Jacobus)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신앙을 배반한 후 참회하기 위해
무덤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고, 기적으로 유명해졌으며,
하느님께로 나아간
은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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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지디오(Aegidius)
축일 1월 28일
이탈리아 나폴리(Napoli)의 로렌자나에서 태어난
에지디우스(또는 에지디오)는 노동자
부모로부터
열심한 신앙을 물려받았으며, 그 역시 어려서부터
농장 노동자로 생활하였다. 어린 시절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장성한 뒤에 고독한
분위기 속에서 하느님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성모의 소경당 근교에서 은수자로서 정착하였다.
그는 기도에만 몰두하였고 새와 짐승들이 그의
친구였다. 그 후 그는 작은 형제회의 평수사로
들어갔지만 그전처럼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는 자주 탈혼을 경험하였고,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죽은 지 6개월 동안 시신이
썩지 않았고,
무덤에서도 로사리오를 손에 잡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었으며, 성체조배를 하는 듯
보였다고 한다. 그는 질(Giles)로도
불린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80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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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도(Odo)
축일 1월 28일
프랑스의 보베에서 태어난 성 오도는 한때
군인이
될 사명감을 강하게 느꼈으나, 곧 이를
포기하고 피카르디(Picardy) 지방의 코르비(Corbie)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아들을
가르칠 정도로 학덕으로 유명한 수도승이었고,
851년에는 성 파스카시우스 라드베르투스
(Paschasius Radbertus, 4월 26일)를 계승하여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후 861년에 그는
자기 고향 교구의 주교가 되었고,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북부 프랑스 지역에 있는 교회의
개혁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와
랭스(Reims)의
대주교인 힌크마르(Hincmar) 사이의
중재자로도 활약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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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hn)
축일 1월 28일
프랑스 수도생활의 개척자로서 공경을 받는
성 요한(Joannes)은
랑그르(Langres) 교구의
디종(Dijon)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 레오마이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했는데 제자들이 모여들자
몰래
그곳을 떠나 레랭(Lerins)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그 후 그의 고향 주교의 명으로
무티에생장
(Moutier-Saint-Jean) 수도원을 설립하기 위해
레오마이로 되돌아왔다. 그가 오랫동안 그 수도원을
지도하는 동안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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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율리아노(Julian)
축일 1월 28일
에스파냐 부르고스(Burgos)에서 태어난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최초로 자신을 봉헌한 성인이다.
에스파냐 중부 뉴
카스티야(New Castilla)의
쿠엥카에서 알폰소 9세(Alphonso IX) 왕에게
재차 붙잡혔을 때 그는 그 도시의 주교로
내정되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그의 열망 때문에 성 율리아누스는
그의 남은 시간을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직접
그의 손으로 번 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그는 비를 청할 때 간구하는 성인이며,
뉴 카스티야의 쿠엥카 교구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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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율리아노
모느와르(Julian Maunoir)
축일 1월 28일
프랑스의 렌(Rennes) 교구 태생인
율리아누스
모느와르(Julianus Maunoir, 또는 율리아노)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하여 1625년에 예수회원이
되었다. 1637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캐나다의 선교사로
보내주기를 원했으나 오히려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그 지방의
언어를 습득한 후
매우 효과적인 신앙 부흥 운동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였다. 모두가 그의 방법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브르타뉴 지방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였다. 결국 그곳의 주교와 교구사제들도
그의 노력에
동참하여 큰 결실을 거두었다.
그는 1951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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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칸네라(Cannera)
축일 1월 28일
성 세난(Senan, 3월 8일)의 친구로 알려진
성녀 칸네라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녀는 아일랜드의 밴트리(Bantry) 근교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선종한 후에는 성 세난의
섬으로 알려진 스캐터리 섬에 묻혔다.
그녀가 수도생활을 위해 홀로 강을 건너
성 세난을 찾아왔던 일로 해서 그녀는 선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기도 한다.
그녀는 킨네라(Kinner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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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축일 1월 28일
이탈리아 로마(Rome)와 나폴리(Napoli) 중간에
있는
로카세카(Roccasecca) 가족성(城)에서
태어난 성 토마스 데 아퀴노
(Thomas de Aquino, 또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퀴노의 백작 란둘프(Landulph)와
어머니 테오도라(Theodora)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불과
다섯 살의 나이로 몬테카시노
(Monte Cassino)의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교육을 받았고, 1239년경에는 그의 교육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나폴리 대학교를 다녔으며,
1244년에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이때
가족들은 그를
강제로 데려다가 15개월 동안이나 로카세카 성에
감금시킨 적도 있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1245년에 다시
수도회로 돌아갈 수 있었고, 1245년부터 3년 동안을
파리(Paris)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프랑스
파리와
독일 쾰른(Koln)에서 성 대 알베르투스
(Albertus Magnus, 11월 15일)의 문하생으로
공부하여
1256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250년과
1551년 사이의 어느 때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성 토마스의
스승이었던 성 대 알베르투스는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없는 황소는 그의 울부짖음으로 전 세계를
가득
채울 것이다.” 그 후 그는 주로 나폴리(Napoli),
아나니(Anagni), 오르비에토(Orvieto), 로마(Rome)
그리고
비테르보(Viterbo)에서 가르쳤으며,
1259-1264년 사이에 “대이교도대전”
(對異敎徒大全, Summa Contra
Gentiles)을
마무리 지으면서 그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
“신학대전”(神學大全, Summa Theologiae)의
집필에 착수하였다.
파리로 돌아온 1269년에는 수도사제와 교구사제간의
논쟁에 말려들었고, 벨기에
브라반트(Brabant)의
시게르(Siger)와 요한 페캄(John Pecham) 그리고
파리의 주교 에티엔느 탕피에의 철학적인
가르침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리옹 공의회
(Council of Lyon)에 참석하여 동방과 서방 교회의
재일치 가능성을
토의하라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
(Gregorius X, 1월 10일)의 부름을 받았으나,
리옹으로 가는 도중 테라치나 교외
포사 누오바
(Fossa Nuova)에 있는 시토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7일 운명하였다.
그는 1323년 7월
21일에 교황 요한 22세
(Joannes XXII)에 의하여 시성되었고, 1567년에는
교황 비오 5세(Pius V)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그리고 1880년에 교황 레오 13세
(Leo XIII)에 의하여 모든 대학교와 대학 그리고
학교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그에게 붙여진
칭호는 ‘보편적 박사’(Doctor Communis) 또는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
(Aeterni Patris)에서 모든 신학생들이 그의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주요 사상은 곧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그리스도교 최대의
신학자이며, 그의 사상은 그의 사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지배하고 있고,
그의
저서들은 신앙과 이성 간의 예리한 구분으로
특징지어지는 탁월한 저작들이다. 그의 미완성의
대작인 “신학대전”은 현대 가톨릭 신학의
뿌리로
받아들여질 만큼 위대한 신학 사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지적 능력 외에도 아퀴나스는
지극히 겸손하고 거룩한
사람이었다. 그는 환시,
탈혼 그리고 계시를 체험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성무일도를
집필했고,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찬미가도 지었다. 또한 그는
주님의 기도(Pater Noster),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 그리고 성서
일부에 대한 주해서를 썼다. 한마디로 그는
지성과 성덕의 금자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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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플라비아노(Flavian)
축일 1월 28일
로마(Rome) 장관의 부관이었던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라비아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치비타베키아에서
순교하였다.
♡1월 28일 오늘의 성인♡
2016. 1. 29. 오전 7: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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