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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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레티우스(Aretius)
성 다치아노(Dacian)
축일 6월 4일
성 아레티우스(Aretius)와
성 다키아누스(Dacianus, 또는 다치아노)는
로마의 순교자로 아피아(Appia)
가도의 카타콤바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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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틸로(Rutilus)
축일 6월 4일
성 루틸루스(또는 루틸로)와 동료들은 로마제국의
박해 때 판노니아(Pannonia, 오늘날의 헝가리 지역)의
사바리아(Sabari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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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트로파네(Metrophanes)
축일 6월 4일
성 메트로파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치하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초대주교였다. 그는 동방교회
전역에서 위대한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원래 황제 프로부스의 동생인 도메티우스의
아들인데, 그의 부친은 개종한 뒤에 비잔티움에서
살다가 주교 티투스와 가깝게 지냈다.
성 메트로파네는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가
열릴 때 고령이었으므로, 알렉산데르란 성직자를
파견하여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여 공의회가
큰 성공을 거두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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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사투르니나(Saturnina)
축일 6월 4일
오늘날 성녀 사투르니나의 이야기는 완전히
전설적인 이야기로 여겨지고 있다.
그녀는 독일 출신의 처녀로 동정을 지키기 위해
구혼자를 피해 프랑스 북부 아라스로 도망갔다가
그녀의 구혼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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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빈첸시아 제로사(vincentia gerosa)
축일 : 6월 4일
성녀 바르톨로메아 까삐따니오가
"로베레의 애덕회"를 세울 때,
빈첸시아 제로사의 정열적인 도움을
받은 것이다. 빈첸시아는 1823년~1824년 사이에
바르톨로메아와 친분을 맺고서 젊은이들의
교육과 은수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성 빈첸시오 드 폴의 애덕회 규칙을 따랐지만,
정부측이 새로운 수도회 창설을 반대함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빈첸시아는 하느님의 참 정신을 가진 성녀로
불리웠다. 그결과, 이 위대한 창설자는
새수도원을 끊임없이 세워나갔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비천한 피조물로 간주했으며,
십자가상의 주님의 권능과 안배를 늘 기도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더 배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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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축일 6월 4일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인 성 알렉산데르에 대해
알려진 다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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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옵타토(Optatus)
축일 6월 4일
이교를 믿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성 옵타투스(또는 옵타토)는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 밀레비스의 주교까지 되었으며,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로부터 격찬을
받았던 덕 있는 분이었다.
성 풀겐티우스(Fulgentius)에 의하면 그는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버금갈 정도로 당대의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옵타투스는 도나투스(Donatus) 이단을 배격한
지도적인 인물이며, “도나투스 이단자인
파르메니아누스를 반대하며”라는 글은 아주 유명하다.
파르메니아누스는 카르타고(Carthago)의 도나투스파
주교였다. 또한 그의 교황의 수위권과 성사의 유효성 및
유해의 공경에 관한 글들 역시 역사의 한 면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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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퀴리노(Quirinus)
축일 6월 4일
귀리노는 '창'이란 뜻이다.
크로아티아 시사크(Sisak)의 주교이던
성 퀴리누스(또는 퀴리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모면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다가
결국은 체포되었다. 그는 그 지방의 관리 막시무스 앞에
끌려가 신들에게 희생물을 봉헌하라는 요구를 끝까지
거절했기 때문에 라압 강물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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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퀴리노(Quirinus)
축일 6월 4일
성 퀴리누스(또는 퀴리노)는 이탈리아 로마 근교
티볼리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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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클라테오(Clateus)
축일 6월 4일
이탈리아 브레시아의 초기 순교자 중의 한 명인
성 클라테우스(또는 클라테오) 주교는
네로 황제 때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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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페트록(Petroc)
축일 6월 4일
웨일스(Wales) 왕의 아들로 태어난 성 페트록은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아일랜드에서 공부하러 갔다가
수도자로 변신하였다. 그들은 잉글랜드(England)
남서부 콘월로 이주하여 패드스토우(Padstow)에
정착하였다. 30년 후 그들은 로마(Rome) 순례를
하던 중에 인도양의 어느 섬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마지막 은둔소는
보드미르 무어(Bodmir Moo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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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Francis Caracciolo)
축일 6월 4일
귀족 집안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
(Franciscus Caracciolo, 또는 프란체스코)는
1563년 10월 13일 이탈리아 아브루치(Abruzzi)의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저택(Villa)에서 태어나
아스카니오(Ascanio)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22세 되던 해에 나병으로 여겨지는 중병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하느님께 자신의 생을 바치겠다는
사적인 서원에 하였고,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나폴리(Napoli)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거룩한 죽음을 준비하도록 죄수들을 돌보는 회인
비안키 델라 주스티치아(Bianchi della Giustizia)에
가입하였으며, 1588년에는 요한 아우구스티누스 아도르노
(Joannes Augustinus Adorno) 신부와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병원의 환자들과 죄수들을 위하여 일하고
사목하는 작은 율수 성직자회(Minor Clerks Regular)를
설립하였다. 이 회는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의
승인을 받았고, 아도르노 신부가 첫 번째 장상으로
선임되었다.
다음 해에 그는 종신서원을 하면서 프란치스코라는
수도명을 정했다. 그들은 나폴리에 수도원을 짓고,
그 다음에는 에스파냐로 뻗어나가려 했으나 에스파냐
정부 당국이 수도원 건립 허가를 주지 않아 미뤄지는
사이에 이 수도회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아도르노 신부가 사망한 후에 장상직을 승계한
프란치스코가 에스파냐를 방문했을 때는 그전보다
훨씬 좋은 여건이었기 때문에 마드리드(Madrid)와
바야돌리드(Valladolid) 그리고 알칼라(Alcala)에
수도원을 세울 수 있었다.
그는 7년 동안을 장상으로 봉사하다가 사임하고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의 원장 겸
수련장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새로 세운 수도원인
마조레에서 1608년 6월 6일 운명하였다.
그의 일생은 환시와 예언의 은혜가 충만하였고,
1807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의 성인(6월4일)
2014. 6. 6. 오후 6: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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