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축일입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일생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1786년 프랑스의 리용 교외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가난하였지만 깊은 신심을 지닌 부부였다. 비안네 성인은 정상적인 초등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였으며, 바리에르의 소신학교에서 철학을(1811년), 리용의 대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1813년), 라틴어 때문에 퇴학당하였다.(1814년) 그러나 18세 부터 시작되었던 에퀼리의 신부 아베 발레의 지속적인 개인교수와 특별 시험 주선으로 1815년 그레노블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신학교 성적이 부진하여 장래를 기약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어떤 자격보다도 훌륭한 신심과 좋은 의지를 참작한 교회가 그를 사제로 서품함으로써 한 성인의 탄생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3년동안 아베 발레 신부의 보좌신부로 있은뒤, 1818년 주민 230명의 한적한 시골인 벨레 교구 아르스의 주임사제로 부임하였다. 여기서 비안네 신부는 1859년 운명할 때까지 40년 동안이나 일하며 열심한 설교와 고행과 기도와 선행 등 놀라운 방법으로 본당을 쇄신하고 발전 시켰다.
아르스는 작은 마을이었으며 주민들은 모두 신자이지만 대개가 냉담하여 판공성사도 보지 않는 형편이었다. 주일이 되어도 성당에 나오지 않고 예사로 밭에 나가서 일을 하며 세상 쾌락만을 찾는 것이었다. 이 젊은 신부는 이러한 본당 형편에도 조금도 낙심치 않고 오로지 하느님께 의탁했다. 얼마 안되어 그의 친절, 그의 자애심, 그의 훌륭한 행실은 자연히 모든 사람의 마음에 큰 감명을 주게 되었다. 그의 덕에 경탄하게 되고 이어 그의 훈계를 명심하는 자들이 되었으며 그처럼 냉담하던 자들이 차차 신앙심이 깊어져 성실한 신자가 되었다
요한 비안네의 뛰어난 점은 고해 신부로서의 업적이다. 겨울에도 그는 하루에 11,12시간 동안 성사를 주었고, 여름철에는 하루에 16시간씩이나 고해 성사를 주었다. 만일 그가 사제의 사명에 헌신적이 아니었다면 매일매일 자신을 아낌없이 주는 그런 일은 결코 견디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곧잘, 하고 싶었으나 할 시간이 없어 하지 못한 일들을 하기 위해 은퇴를 기대한다. 그러나 요한 비안네는 신부는 은퇴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신자들에게 봉사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단순한 설교와 충실한 고해신부로 이름이 퍼져나가, 마침내 조용한 시골을 프랑스 전역으로부터 연 2만여명에 이르는 고해자들이 고해성사를 받았다고 하였다. 어떤 때는 만여 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그의 설교를 경건히 듣곤 하였다.
그의 설교는 단순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영적 권고와 충고에 있어서는 간단 명료하였고, 신심이 흘러 넘치는 직설적인 설교를 하였다.
물질적 안락에는 강한 애착을 가지면서도 종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다. 만일 외계에서 온 사람이 우리를 관찰한다면, 그는 우리가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 순례자라고는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안네 신부는 항상 목적을 가지고 여행한 사람이었다.
요한 비안네 신부는 전례적인 기도를 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인적인 기도는 여기저기 흩어진 밀짚과도 같다. 만일 당신이 그것에 불을 붙인다면 조그마한 불꽃이 일어날 것이지만 밀짚을 다발로 모아서 불을 붙인다면 하늘로 치솟는 기둥 같은 큰 불꽃이 일어날 것이다. 공동 기도는 이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회개의 은총을 주기 위해 비안네 신부는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하고 얼마나 많은 고행을 하며 초인간적 활동을 했을까? 그의 존엄한 속죄 생활은 증인이 없으면 믿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끊임없이 단식재를 지키며 감자만으로 식사를 했다. 딱딱한 침대에 담요 한벌, 그 나머지는 성당의 장식을 하든가 빈민에게 희사하던가 했다. 그러한 성스러운 신부의 활동은 곧 근방에 알려지게 되고 나중에는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성사를 보기 위해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모여왔다. 그들 중에는 신앙에 대해 실망한 자, 마음의 고민으로 위로가 필요한 자, 오랫동안 성사를 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로 대죄중에 있는 자들도 무수했지만, 성인 신부를 만나고 난 후부터는 모두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비안네 신부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의 빛으로 사람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는 은혜를 받았다. 사람들이 어려워서 말을 못하는 것까지 들여다보며 그는 매일 장시간 동안 고해성사를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떤 날은 15시간, 17시간씩 고해 성사를 주는 일도 있었으며 그에게 성사를 보는 사람은 1년에 평균 2만 명에 달했다. 그 지방의 기후는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추웠다. 이러한 일기에도 불구하고 비안네 신부에게 성사를 보고자 하는 신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혹은 2,3일 동안 줄을 지어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요한 비안네는 이런 많은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면서도 그의 엄한 고신 극기의 생활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수년 동안 그의 마음을 혼란시키려는 악마의 유혹을 당했다. 그 외의 다른 시련도 닥쳐왔다. 즉 그를 허무맹랑하게 악평하는 투서를 몇 통 받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평상시와 같이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태도를 조금도 변치 않았다. 그는 매일 솔직하고 유효한 설교를 하며 충실히 자기 의무를 이행했다. 그러한 생활과 활동은 정말로 하느님의 특별한 도움이 없이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알게 되자 불신한 자들도 많이 회개했고 그를 조소하던 자들도 그의 성덕에 감동되어 신덕을 굳게 했다.
요한 비안네는 이렇게 부단한 고행과 활동의 생활을 보내기를 41년간, 1859년 7월 29일엔 열 일곱 시간이나 고해 성사를 주고 성당에서 나오자 "나는 이제 그만이다!"하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건강은 다시는 회복될 수가 없었다. 그는 5일 후에 임종했는데, 감격의 눈물을 머금고 노자성체를 영하고 신자들에게 강복을 주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주교가 왔을 때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2, 3시간 후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과로로 운명한 것이었다. 교황 비오 10세는 그를 복자위에, 1929년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성인품에 올렸고 본당 사제의 수호 성인으로 선언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가르침
우리의 영혼에는 천국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있다
당신은 자신이 참으로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고 느끼는가?
다른 세계나 다른 시간에 속한 존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아르스의 성자’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우리의 집은 천국에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호텔에 투숙한 여행객과도 같으며 길을 떠나자마자 항상 천상의 집을 그리워하는 존재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한 가지 증거는 우리의 정의와 공평에 대한 내적인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죽음과 고통이 없으며 정의가 다스리고 모든 것이 공평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우리가 어떻게 공평과 정의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우리의 영혼에는 천국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하나씩 들어 있다. 칠흑 같은 망망대해에서도 나침반의 바늘을 보고 뱃머리를 결정할 수 있듯이, 마음속에 간직한 나침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우리의 길을 인도한다. 그 나침반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한 집을 향해 하고 있음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기도와 사랑은 고귀한 과업이다
자녀들이여, 그리스도인의 보화는 지상에 있지 않고 천상에 있음을 생각하십시오. 따라서 우리 생각을 우리 보화가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하겠습니다.
기도와 사랑은 사람의 고귀한 과업이요 의무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은 이 지상에서 누리는 행복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일치 외에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순수하고 또 하느님과 일치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위안을 받고 감미로움으로 충만해지며 놀라운 빛으로 눈부시게 됩니다. 이 긴밀한 유대 안에서 하느님과 영혼은 녹아 합치된 두 자루의 초와 같아 아무도 그것을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미소한 피조물과 하느님의 이 결합은 지극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행복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우리는 기도 드릴 자격을 잃은 자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당신과 대화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 기도는 하느님이 지극히 기뻐하시는 향기입니다.
나의 자녀들이여,
여러분의 마음은 작지만 기도는 그 마음을 넓혀 주어 하느님을 사랑 할 수 있는 능력을 베풀어 줍니다. 기도는 천상을 미리 맛보게 해주고 천상에서 무언가 우리에게 흘러내리게 해줍니다. 감미로움을 남겨 주지 않는 기도는 없습니다. 기도는 마치 영혼에 흘러내리는 꿀과 같아 모든 것을 달게 해줍니다. 잘 바치는 기도에서 고통은 마치 햇빛을 받는 눈처럼 녹아 버리고 맙니다.
기도는 또 한 가지 특성을 지닙니다. 기도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해주고 너무도 큰 즐거움을 가져다주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해줍니다. 내 얘기를 한번 들어 보십시오. 내가 브레스의 본당 사제로 있을 때 한번은 동료 사제들 대부분이 앓아 눕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긴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 여행 중 자비로운 하느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그때 나에게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자비로운 하느님께 온전히 헌신하여 물 속에 있는 고기처럼 기도 속에 완전히 파묻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헷갈림이 조금도 없습니다.
나는 그런 거룩한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콜레트는 우리 주님을 뵙고 사람끼리 서로 이야기하듯 그분과 대화했습니다. 한편, 얼마나 자주 우리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또는 무엇을 청하고자 하는지 생각지도 않고 성당에 나오는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방문하러 갈 때 무엇 때문에 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비로운 하느님께 흡사 이렇게 말하려는 듯합니다. "내가 당신께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한두 마디뿐입니다. 빨리 좀 가게 해주십시오."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즉 우리 주님을 예배하러 나올 때 우리가 산 신앙과 완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청한다면 청하는 것을 모두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