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장미 /천향길 수녀

2005. 4. 2. 오후 7:58:26

글자

<수녀들의 독서일기>

 


사막과 장미

‘사막’과‘장미’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경로수도회) 설립자인 쟌 쥬강의 삶을 두 단어로 표현한 말이다. 지도 신부에 의해 한 수도회의 설립자인데도 27년간이나 내쳐진 삶을 살았다. 고독했던 침묵의 시기가 ‘사막’이라면 그 자리에서 자신만의 향기를 피워 낸 삶은 ‘장미’였다. 그래서 엘루아 르클레르가 쓴 「사막과 장미」는 침묵의 새로움, 곧 창조의 힘을 역설한다.

쟌은 숨은 생활 동안 작은 자로서 주님과 일치의 길을 걸었다. 잊혀지면 잊혀진 대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설립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살아서 잊혀진 그녀는 죽어서까지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그 길을 작은 길이라고 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작은 길, 작은 자만이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경로수도회’의 정신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오직 은인들의 너그러운 후원에만 의존하는 가난한 삶을 추구한다. 이러한 이상은 매일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동시에 내일의 안정된 생활까지 의지적으로 포기함을 뜻한다.

그들의 활동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사로이 재산 상속권을 기증하는 예가 늘어났다. 상속받은 거액을 은행에 맡기기만 하면 재정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꾀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돌아다니며 기부를 청하지 않아도 되고, 안정되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손쉽고 매혹적인 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고정수입을 갖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모아들였을 때 즉시 썩어버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녀들이 갖고 있는 모금에 대한 정신을 잃게 된다.

수도회는 근본적인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인간의 힘에 의지하면서 안전한 길로 들어서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늘에 묻혀 있던 쟌의 모습을 떠올렸다. 은연중에 설립자로서 자질을 수도회가 인정한 것이다. 수도회의 근본정신을 가장 참되고 올바르게 증거 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표현이었다. 쟌이 ‘참사회의’에 불려나왔을 때 그녀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정 수익의 기부를 받지 않고 오로지 믿음으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 삶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신앙정신을 요구한다. ‘나’라면 쟌 쥬강처럼 부당함을 견뎌낼 힘과 침묵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그녀처럼 깊은 고독 속에서 세상일과 인간을 바라보시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눈길을 조금씩 닮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기위해서는 긴 시간과 수많은 자아포기가 필요하다. 누가 날 밟으려고 하면 밟히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자신을 볼 때마다 여전히 내 자아가 너무나 건강하게 펄펄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직도 하느님의 ‘거룩한 침묵’, ‘거룩한 무관심’에 조바심이 나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천향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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