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교회의 사명

2006. 1. 10. 오후 10:02:39

글자

새 복음화로 가는 길

   선교는 교회의 사명이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 이는 예수님께서 내리신 가장 지엄하신 명령이다. 하느님께로 부터 파견된 교회는 만백성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 곧 선교를 사명으로 받았다. 하느님께서 흩어진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열심히 기쁜 소식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 되어, 하느님 나라를 구하고 건설하면서 생활하는 것을 복음화라 한다. 복음화의 구체적 방법으로는 새 복음화와 재복음화, 그리고 사회 복음화가 있다.

재복음화와 사회 복음화가 기존 신자들이나 사회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면 새 복음화는 그리스도를 모르고 사는 이나 타종교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비신자들 스스로 교회를 찾아오거나 레지오 마리애 활동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던 선교활동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국의 300여 개 본당에서 ‘새 가족 찾기 운동’이다,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이다, ‘새 신자 모셔오기 운동’이다 하여 적극적인 선교운동으로 자리바꿈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본당의 움직임과는 달리 지구나 교구 차원에서 여기에 알맞은 연구나 방향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선교가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임에도 지금 각 교구에는 선교를 전담하는 전문기구가 없으며, 전담 성직자나 수도자, 평신도가 선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선교 프로그램의 공급이 어려운 실정이다.

   둘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들의 지위가 향상되어 성직자·수도자·평신도가 함께 책임을 지는 교회 체제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나 현실은 평신도의 사도직 수행에 관한 인식이 공의회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셋째, 해외선교나 북방선교에 대해 과거나 현재나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교회가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다고 하지만, 북한의 개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고, 이미 개방된 중국에서도 일관성 있는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중국의 흑룡강성에서 조선족과 탈북 동포들과 몇 주간 지낸 적이 있다. 한 공소에서 다른 공소까지는 택시를 타고 시속 140킬로미터 속도로 3시간에서 6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멀다. 이 공소 신자들은 기도나 성가를 잘 알지 못하지만 신심만은 각별하다. 한족 신부 혼자서 이렇게 광활한 지역을 담당하는데, 공소 신자들은 일년에 한 번 사제 얼굴을 보기도 어렵고, 미사도 중국말로 드리기 때문에 조선족에게는 언제나 낯선 미사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한국인 사제가 드리는 미사에 참례해 보는 것이다. 이 얼마나 소박한 꿈인가? 성가나 교리를 가르쳐주면 밤이 새는지도 모르고 돌아가려 하지 않는 게 이들이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여지는 무한하다.


   넷째, 대중 홍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현대는 매스 미디어 시대이다. 인터넷이나 매스컴을 적절히 활용하면 짧은 시간에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하는 친근한 교회로 인식될 수 있다.

   다섯째, 정기적으로 신자들을 양육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무장시켜 알고 있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이웃과 나누도록 하는 것 또한 교회 본연의 의무이다.

   교회의 선교 현실과 해결방법

   얼마 전 16개 본당을 표본 조사하여 각 본당의 선교 현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모두 9,281명이 응답했는데, 설문조사로 알 수 있듯이 본당 차원에서 적극적인 선교를 하려면 먼저 가족을 중심으로, 이웃이나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우선 대상자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응답자의 74.6%가 가족의 권유나 스스로 결정했다고 응답했다.

   둘째,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이나(55.6%) 개신교인에게(14.6%) 우선 선교하는 것이 좋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이들 가운데는 가톨릭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자신을 교회로 인도할 사람을 만나지 못해 교회로 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셋째, 우리 자신이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설문조사에서는 전교에 대해 소극적이다(63%), 전혀 생각이 없다(4.1%)는 답이 많았다. 전교는 남의 일이 아니며 이를 위해 교회는 평신도 선교사를 적극 양성하고 평신도의 선교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넷째, 신자들의 삶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 신자들은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입을 통한 전교와 더불어 신자들의 삶을 보고 세상은 교회로 찾아올 것이다. 신자들은 모범적인 생활(55.9%)과 이웃에 대한 봉사(30.0%)를 바람직한 선교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다섯째, 가톨릭을 알리는 홍보물을 제작하여 선교활동에 이용해야 하고 선교 경험이 많은 이들을 초청하여 진솔한 체험을 듣는 실전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선교책자(66.6%)나, 연륜 있는 교우의 체험담(30.2%)은 전교를 하려 할 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섯째, 신자들에 대한 충분한 교리교육과 성서교육이 필요하다. 예비신자 교육을 끝내면 마치 교회에서 배울 것은 다 배운 것으로 착각하고 주일미사에만 잘 참석하면 교회의 모범생인 양 생각하는 신자가 많다. 하지만 전교를 못하는 이유가 교리에 자신이 없다(44%)거나 성서를 잘 몰라서(32.6%), 또는 쑥스러워서(22%)였다는 결과는 신자 교육에 대해 교회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곱째,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평신도들이 선교활동에 최선을 다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성직자와 수도자의 관심 정도에 대해 보통(49.3%), 잘 모름(12.2%), 수동적(6.6%)이라는 답이 많았다. 이들의 격려 한마디는 평신도들의 선교열기를 배가시킬 수 있다.

   여덟째, 입교 후의 관리체계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입교하면서부터 해당 구역과 반에 편성하여 소속감을 부여하고 예비 대부모를 정하여 대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돌보면 탈락과 냉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냉담자 분석을 위한 항목도 있었는데, 교회를 쉬는 이유에 대해 ‘가족관계 때문에’라는 답이 21.5%, ‘고해성사가 부담스러워’ 17.7%, ‘교우관계 때문에’가 7.6%를 차지했다. “쉬고 있을 때 누가 찾아왔는가?”라는 물음에는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가 가장 많았고(22.7%), 쉬는 교우에 대한 회두 권면 경험이 없다는 대답도 26.1%나 되었다.

   끝으로 교리를 받은 반별 입교 동기끼리 정기적인 모임을 갖도록 주선하고, 교리교사가 모임에 참여하면서 관리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복음 선포는 성직자나 수도자, 평신도 모두에게 부여된 권리이며 의무인 동시에 공통의 사명이다. 따라서 이들이 적절히 협력한다면 새 복음화 사업은 지금보다 더 밝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 단원들의 선교사명을 위하여올립니다.

댓글 1

  • 2006년 1월 11일 오후 4:49

    송파동 성당 신자분들께서 함께 읽고 선교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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