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현양회 전국순례봉사팀 명례강학(4) -[통사] 한국천주교회사 권1-4 2014.3.2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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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초기 교회의 활동과 교세의 확산
제3절 진산사건
1. 조상제사 금령과 조선 천주교회의 반응
-1790년 윤유일은 조선교회를 대표하여 신주와 조상제사문제건의
: 구베아 주교 단호한 금지명령 내림.
-1791년 10월 윤지충의 진산사건발생
2. 윤지충의 제사폐지와 조선 정부의 대응
1)윤지충과 권상연
-정약전으로부터 천주교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
문초 중에는 이미 죽은 김범우에게서 배운 것으로 보호.
2)사건의 발단
-모친상을 당하매 상장의 예를 갖추지 않고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하였다는 소문.
3.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1)윤지충에 대한 심문
-윤지충의 변: “일반 백성들은 신주를 세우지 않고, 제향을 드리지 않아도 국법에 어긋나지 않았던 것이라 이같이 한 것"인데, 이는 단지 천주의 가르침을 위한 것일뿐으로서 나라의 금법을 범한 일은 아닌 듯하다.
2)윤지충의 주장
-첫째. 천주교에서 금하는 일이다.
둘째. 천주교 영혼관에서 보면 신주와 제사는 헛된 것이다.
셋째. 이 행위가 조선의 국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3)정조의 반응과 순교
-정조는 초기 극단적으로 몰고갈 생각은 없었다.
-권일신 유배형 유배도중 사망. 이승훈 배교. 원시장 형으로 사망.
-채제공 정조에게 사형 건의
4)조상제사금지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
-진산사건 이전에 이미 남인계의 천주교 신자 일부는 제사 거부에 동참.
-조선 왕조와 천주교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 일으킴.
4. 진산사건의 교회사적 의의
-첫 희생자 김범우와는 달리, 명확한 자기 결단을 가지고 천주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는 의미에서 조선교회의 첫 순교자들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