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의 음식문화 이야기
(1) 첫 번째 이야기 - 프랑스 요리의 역사
1. 프랑스 요리의 원형은 이탈리아에서
미식가들을 감탄케 하는 나라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근사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나라이며, 국민의 80%가 자국의 요리를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으뜸가는 요리의 하나임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인들이 원래부터 먹는 것에 정성을 쏟았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전통 기반은 원래 이탈리아 피렌체의 대부호인 메디치(Medich) 가문에 의해 전해지게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프랑스 요리의 원형은 14세기 후반 샤를 5세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의 요리사였던 타이유방(본명 기옴 딜레이르)의 『르 비앙니에』에 의해 비로소 본격적인 요리의 체계가 잡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진한 수프, 삶은 요리, 파이 요리가 주를 이루어 소재를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음식을 걸쭉하게 갈아 으깨 놓은데다가 향신료는 닥치는 대로 그것도 아주 많이 뿌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조잡한 조리법으로, 지금과 같이 세련된 프랑스 요리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대용품이었다.
프랑스 요리가 음식 문화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은 1533년 메디치 가의 로렌조(Lorenzo) 2세의 딸인 까뜨린느(까뜨린느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 국왕인 앙리 2세와 결혼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까뜨린느가 데리고 있던 제 1급 요리사와 급사를 비롯, 다채로운 조리법에서 조리용구, 포크, 등의 식기류, 식사 예절 50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문화의 기초를 프랑스 궁정으로 가져온 이후의 일이다.

음식 르네상스
이 시기에 사탕과자, 케익류, 아이스크림, 잼, 각종 소스류 등의 제조법도 많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나이프를 휘젓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포크는 물론 스푼도 제대로 없어서 음식을 거의 손으로 집어먹는 문화 후진국으로 이탈리아와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이 때문에 요리와 패션에 대단한 정열을 기울이고 있었던 패기 만만한 까뜨린느는 슈농소 저택에서 늘 파티를 열었다. 당시 연회에는 크넬이라는 집닭, 닭 벼슬 , 송아지, 돼지 내장이나 뇌로 만든 장 스튜, 아티초크(국화과의 식물로 피기 전의 봉우리를 따서 식용으로 먹는다) 튀김 등 수많은 진귀한 요리가 올려졌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걸쭉한 스튜와 크기만 하고 맛없는 고깃덩어리, 그리고 요리에 곁들이는 누에콩(콩과의 1,2년초의 야채로 4월경에 꽃을 피움.종자는 삶아서 먹는다)외에는 먹어 본 적이 없었던 참석자들은 너무나도 섬세하고 참신한 요리 앞에서 심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야말로 '음식 르네상스'라 할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하려 까뜨린느 왕비의 음식에 대한 노하우는 급속히 침투되었고, 요리에 조예가 깊은 앙리 4세, 그리고 광적인 미식가로 알려진 그의 손자 루이 14세가 출현하게 되면서 화려한 궁중 요리는 더욱 꽃을 피워가게 된다. 그런데 루이 14세는 포크를 쓰는 것이 서툴렀던지 여전히 맨손으로 식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요리사들은 다투어 솜씨를 발휘했고 모양 있게 담아 내는 법도 연구하여 미식을 추구하는 자세는 점점 고양되었으며, 이것은 각 국의 궁정 요리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맛을 보고 즐기는 일은 어디까지나 일부 특권 계층에 한한 것이었고, 수준 높은 요리가 신흥 시민 계급에게 개방된 것은 프랑스 혁명에 의한 왕정 타도 이후의 일이었다.

3.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프랑스 요리 탄생
혁명은 그때까지 왕후와 귀족에게 봉사하고 있던 고용 요리사들의 직업을 빼앗고 말았다. 그 결과 생활 수단으로서 레스토랑을 개업 하든가 아니면 유명한 요리점의 요리사가 되든가를 선택해야만 했는데, 어쨌든 그들은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해서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일류 레스토랑의 개업이 이어졌는데, 음식 전문가들을 탄생케 하는 프랑스 요리를 일반 서민이 널리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그 후 19세기 후반이었다.
또 19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활약했던 율반 드보아는 식탁에 요리를 한꺼번에 일시에 차려놓는 그때까지의 방식을 개선, 맛이 상하지 않도록 요리를 한 그릇씩 순차적으로 내가는 러시아식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근대적 식사 방식을 완성시켰다.
어쨌든 온난한 기후와 다양하고 풍성한 재료, 식사에 즐거움을 더해 주는 풍부하고 질 좋은 와인, 그리고 주변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향신료와 물자, 기술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요인들도 오늘날의 요리 왕국의 융성에 공헌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프랑스 요리는 19세기 말까지 각 국으로 전해져, 얼마 안 있어 중국 요리와 함께 세계적 요리로 칭송받게 되었다.
● 쓰지하라 야스오 (최민순 옮김, 1999): 세계사의 숨겨진 이야기. 경학사, 29-32쪽에서 수정 발췌
(2) 두 번째 이야기 - 포크는 언제부터 사용하였나?
1. 젓가락을 보고 놀란 유럽 사람
문명국임을 자인하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식사 예절이나 품위에 있어서도 엄격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문명 개화기에 열심히 받아들였던 딱딱한 테이블 매너도 유럽인들이 가지고 온 것이다. 얼핏보아 우아하고 맛있는 예절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네들 식습관의 역사를 펼쳐보면 의외로 그 내용이 빈약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의 식사는 동아시아의 젓가락 문화권, 유럽의 나이프·포크·스푼 문화권, 그 외의 수식(手食)문화권 등으로 나뉘는데, 유럽 사람들이 먹는 방식은 나이프는 몰라도 포크와 스푼의 역사는 매우 짧다. 이에 비해 젓가락은 사용하는 방식은 기원전 4세기경 중국에서 이미 일반화되어 있었고, 이는 한국으로 전해진 다음 다시 일본으로 전해졌는데 일본의 경우는 대체로 아스카(飛鳥,552∼686)시대부터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이프는 오래 전부터 애용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기를 썰기 위한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럽 사람들은 그 동안 무엇을 가지고 식사를 했을까? 믿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손으로 먹었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예절에 까다로운 상류 계층 사람들은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제외하고 나머지 3개의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것이 품위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고, 10개의 손가락으로 우적우적 먹어대는 족속은 그 성장이 의심스럽다며 엄하게 나무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절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으로 손을 더럽히면서 먹는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2. 3개의 손가락에서 포크로
11세기에 들어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끝이 두 갈래로 나뉜 소형 포크가 고안되었는데, 이에 대해 완고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신의 은총인 음식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은 신이 만들어 주신 인간의 손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모처럼의 아이디어도 이색적인 것을 좋아하는 극히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하는 수 없이 오랫동안 창고 속에 처박아 두어야 했다. 포크가 겨우 빛을 보게 된 것은 15세기 말경인데, 그때 역시 포크를 사용하는 남자는 여자 같은 녀석이라고 멸시당하는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카트리느 드 메디시스에 의해 프랑스에도 포크가 전해지긴 했지만, 애써 얻은 그릇들은 모두 한낱 무용지물의 보석 장식품으로 변해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였고 음식을 손으로 먹는 습관 역시 좀처럼 버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손으로 먹던 시대에는 더러워진 손을 씻어야 했기 때문에 식탁에 물 그릇을 놓는 것이 필수였는데, 지금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핑거 볼(finger bowl)은 그 때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탈리아 이외의 나라에서 포크는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각광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차츰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것이 불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프랑스에서는 혁명 이후 급속하게 포크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추방의 쓰라림을 맛본 귀족들이 무언가 평민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고자 했던 것으로 손으로 먹지 않는 식사 예절로서 포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말하자면 궁지에 몰려 만든 하나의 모책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풍조가 침투되자마자 포크는 고귀한 신분이 사용하는 품위와 사치의 심볼로 금세 변하여, 3개의 손가락으로 집는다 해도 어쨌든 손으로 먹는 식사는 돌연 상스러운 행위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다.
처음에는 2갈래식 포크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실용성이 떨어져 3갈래 또는 4갈래로 나뉜 것이 개발되어 인기를 모았으며, 얼마 후에는 지금과 같이 나이프와 포크를 능숙하게 놀리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유럽 사람들은 비로소 손을 더럽히지 않고 식사를 끝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포크가 시민권을 얻은 지(다시 말해 손으로 식사를 하지 않게 된 지) 불과 2세기도 안 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요즈음도 밥을 포크 등에 살짝 올려 먹는 것을 가끔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전혀 의미 없는 싱거운 행위로 역시 푹 찍어서 집어 올리는 것이 포크의 기능이다. 포크의 등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이상한 일은 요술사에게나 맡겨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 쓰지하라 야스오 (최민순 옮김, 1999): 세계사의 숨겨진 이야기. 경학사, 33-35쪽에서 수정 발췌
(3) 세 번째 이야기 - 햄버거의 고향은?
1. 햄버거의 모델은 타르타르 스테이크?
오늘날 미국인들의 국민식으로 불리며, 서서 먹을 수 있는 메뉴 중 챔피언이라 할 수 있는 햄버거. 그 이름은 햄버거 스테이크를 빵으로 감싼다는 아이디어 푸드에 대해 붙여진 속칭으로, 독일 북부의 항구 도시인 함부르크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역시 원조 함부르크의 햄버거는 맛이 다르군"하며 어설픈 지식을 입 밖에 내서 괜한 창피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햄버거는 틀림없는 미국 요리이기 때문이다. 일본풍 덴푸라와 같이 명칭이 없는 것처럼 햄버거 스테이크도 원래 독일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이다. 그 고장에서는 고작해야 학크(hack:잘게 썰다) 스테이크라 부르고 있으며, 게다가 대중적인 요리는 결코 아니다. 하긴 최근에는 미국 문화의 침투로 햄버거 스테이크라는 외래어도 널리 정착되어 가고 있는 듯하지만 말이다.
햄버거 스테이크의 모델이 된 것은 아마도 대표적 독일 요리의 하나인 타르타르 스테이크일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타르타르는 날쇠고기를 잘게 다져서 먹는, 말하자면 다진 쇠고기를 햄버거처럼 속까지 데우는 요리와는 본질적으로 조리법이 다르다. 또 한 가지는 씹히는 맛이 좋지 않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햄버거에 해당하는 것은 타르타르 스테이크 이외에 보이지 않는다.
타르타르란 중세에 징기스칸과 그 자손들에게 정복되었던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 살았던 몽골계 부족의 총칭으로, 보통은 타타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끝없는 지옥 타르타로스에서 생긴 것인데, 야만적이고 몹시 거칠다는 평판 때문에 훗날 터키계를 포함한 유목민 전체를 막연히 타타르라 부르게 되었다. 그들은 질긴 양고기를 소화하기 쉽도록 잘게 썰어서 날것으로 먹었는데, 14세기 초엽 러시아 타타르를 통해 독일에도 들어와 그 재료가 양에서 소로 바뀌어 정착된 것이 타르타르 스테이크의 원류다.
처음에는 질긴 힘줄 부위를 소금과 자주 쓰는 향신료만으로 맛을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과 같이 생계란이나 피클, 잘게 썬 양파등을 첨가하여 깊이 있고 복합적인 맛을 내게 되었다.
물론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분명 날것뿐 아니라 미트볼 모양으로 반죽해서 구워 먹기도 했겠지만, 과연 그것을 스테이크식으로 조리했는지 어떠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독일어에서는 보통 도시 이름에 -er를 붙여 그 지역사람이나 그 지역음식을 지칭한다.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수도는 빈(Wien), 비너(Wiener)는 빈 사람 또는 빈 소시지(영어식 비엔나 소시지) 등이다. 위 그림은 "두 개의 함부르거", 즉 함부르크 사람과 함부르크의 음식(햄버거)을 풍자한 그림 엽서이다.)
2. 독일 이민들의 궁핍한 음식
지금의 햄버거 스테이크와 같은 음식이 이 세상에 탄생한 것은 1883년경이라고 보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져 가고 있다. 그것도 함부르크에서 몰려 온 독일 이민 집단이 뉴욕으로 가는 배 안에서 고안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신발 밑창처럼 딱딱해진 훈제육을 모두 모아서 타르타르 스테이크식으로 이것을 잘게 썬 다음 물에 담그고, 양파 등 그 자리에 있는 야채들을 모두 섞어서 어떻게든 맛있게 먹기 위해 궁리했던 것이 시초가 되었다.
다음해 2월 보스턴 저널지에는, "닭 한 마리를 삶는다. 닭이 식으면 햄버거 스테이크의 고기처럼 잘게 썬다"라는 조리 기사가 소개되어 햄버거 스테이크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얼마 동안은 이민들의 궁핍한 식사 요리에 그쳤을 뿐 당당히 요리로서 인정받고 있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저민 고기를 둥글게 하여 석쇠에 굽는 오늘날의 스타일이 굳어지게 된 것은 1900년 전후라고 하는데, 그 후에도 고기 찌꺼기나 상한 고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잔반 처리 음식이라는 변변챦은 이미지가 오랫동안 따라다니고 있는 것 같다.
3. 햄버거의 탄생은 20세기
한편 둥근 샌드형의 햄버거가 서민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04년 샌트로이스에서 개최되었던 루이지나 100주년 박람회에서이다. 회장에서 핫도그와 함께 간편한 스낵으로 판매된 후 점차 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에도 '잔반처리계'라는 삼류 평가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1912년 캔사스 주 위치타(Wichita)에서 개업한 '화이트 캣슬'이 처음으로 신선한 쇠고기를 사용하여 요리로서 햄버거를 팔기 시작하자 세상의 보는 눈도 크게 달라졌다.
타타르인의 유산을 계승한 미국을 대표하는 패스트 푸드는 이렇게 하여 전성기를 맞이하게된 것이다. 금색 아치의 맥도날드 햄버거가 탄생한 사반세기나 되는 옛날의 일이다.
● 쓰지하라 야스오 (최민순 옮김, 1999): 세계사의 숨겨진 이야기. 경학사, 42-44쪽에서 수정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