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지난주에 우리는 어머니날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천상의 어머니 당신의 날을 맞습니다.
들고 나는 호흡인 듯 잊고 살다가 어머니날 하루 그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 듯
당신께 자주 눈 맞추지 못하고 종종걸음 치던 시간 속에서 오늘 하루 당신의 날이라고 법석을 떠니
제 모습이 부끄러워 밤의 어둠 속에서도 얼굴 붉어집니다.
온갖 화려한 찬미로 칭송받으시는 당신의 이 좋은 날에, 저는 당신의 고통을 생각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고통의 파도에 흔들리는 조각배이며, 당신의 조각배는 어느 누구의 것보다 격렬한 파도를 탔던 까닭입니다.
어린 시절, 아직 저의 눈이 세상으로 열리지 않았을 때 저는 얼마나 행복 했던지요.
작은 저의 방과 그 방에 가득 찼던 내 어머니의 숨결이 세상의 전부였지요.
거기에는 슬픔도 불안도 상처도 없었습니다.
오직 보호 속의 안락함과 허락받은 응석이 있을 뿐이었지요.
자라면서 저는 저의 작은 방을 나와 세상으로 걸어가야 했습니다.
한숨과 한숨이 바람을 일으키고, 이기심과 이기심이 소란하게 충돌하고, 분열과 혼란이 뿌연 먼지를 일으켜 눈앞을 가리는 세상으로 말입니다.
고통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이었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고통에 이다지 마음이 절절해지는 것은,
당신이 여자였고 어머니였듯이 저 또한 여자이며 두 딸의 어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힌다면 결코 아픔을 감당해내지 못할
나약한 여자이자 어미이기 때문입니다.
수다한 말, 수십 줄의 문장으로도 설명해낼 길 없는 당신의 처절했을 심중을 생각하면
다만 마음이 아득해집니다.
제게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등산 길에 뱃속에 든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깊은 산 속에 핏덩이를 묻고 돌아서서 산을 내려온 친구는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앓았습니다.
생명이 되지 못한 생명의 울음소리가 추운 산 속에서 내내 떨며 친구를 괴롭혔습니다.
한 달이 되던 날 친구는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말입니다.
이런 친구도 있었습니다.
갓 낳은 아기를 다른 병원의 수술실에 보내고 자신은 입원실에서 꼼짝 할 수 없었던 친구였지요.
교환수혈을 받는 아기의 몸에서 전신의 피를 한 방울 한 방울 새 피로 갈아내는 동안 죽을지도 모르는 아기의 고통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친구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옷 한자락에 매달려 친구는 울부짖었습니다. 아기를 살려 달라고, 아기를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친구는 말합니다. 그때처럼 고통스러웠던 적은 일생에 없었다고,
사랑하는 아들이 죽음의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성모님의 비통함이 그제야 가슴에 사무쳤다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어머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 그것은 고통으로 열어보일 수밖에 없음을,
내 뼛속 아픔은, 남의 아픔으로 건너가는 이해와 사랑의 다리를 놓는다는 평범한 진실을,
당신의 고통이 승화되었듯이 우리가 고통으로 새로워질 수 있음을,
새로움으로 하여 내 안에 더 깊은 우물을 파고 더 넓은 밭을 갈아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라는,
고통은, 당신의 메시지이며 신앙을 숙성케 하는 성장통임을 알겠습니다 .
당신 앞에 서니 지금껏 무거워 쩔쩔 맸던 제 삶의 십자가가 한낱 티끌처럼 하찮아 보입니다
세상이 힘들고 억울해서 못살겠다고 느껴지면 저는 제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어깨에 죄와 죽음의 십자가를 지게 한 세상을 지금 너의 세상과 바꾸겠느냐고.
가슴이 아파 괴로워 못살겠다고 느껴질 때 저는 저를 껴안고 말하겠습니다.
아들의 손과 발에 망치가 떨어질 때마다 한 뼘씩 못 끝에 갈라졌을 성모님의 피 맺힌 가슴과 지금 너의 가슴을 바꾸겠느냐고.
때때로 우리 마음이 오해로 다치고 미움으로 멍들고 말할 수 없는 번민으로 들끓을 때도,
언젠가는 사랑이 치유해 주리라는 믿음과 여유를 당신에게서 얻고 싶습니다.
우리가 고통의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어머니를 부르며 헤쳐 나가게 해 주십시오.
감히 당신을 닮을 수 없으니 당신의 인내와 사랑을 흉내라도 내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어머니로서 특별했던 존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당신이 지녔던 남다른 믿음과 순종의 덕을 갈망하며 이겨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가끔은 내 유년의 작은 방으로 돌아가 쉴 수 있도록, 그 방을 당신의 숨결로 채워 주십시오.
내 육신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 우리는 모두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당신은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2013년 5월 24일 성모님의 밤에, 박 세실리아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