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성찰]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일곱 가지 죄[七罪宗]를
성찰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 인색, 미색, 탐도, 질투, 해태, 분노입니다.
1. 첫번째는 교만입니다.
영성 신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죄의 근원을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죄의 시작이 곧 원죄요, 원죄의 내용은 교만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어 보겠다는 교만한 마음에서
인간은 추락했습니다.
l 남을 비판하지는 않았습니까?
l 남을 미워하지는 않았습니까?
l 윗사람의 말을 잘 들었습니까?
l 남과 다투지는 않았습니까?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루카 14.11)
교만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고 겸손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교만 때문에 천국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천국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교만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애심[自愛心]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하느님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또한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우정을 나눌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생각하고
그분만이 우리 삶의 마지막 목표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잠시 묵상)
2. 두번째는 인색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고
재물은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재물로 인하여 많은 죄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지나친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어
재물 그 자체가 마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인 양 행동하고 있습니다.
l 돈 때문에 이웃과 서로 다투지는 않았습니까?
l 불쌍한 형제나 이웃을 외면하지는 않았습니까?
l 지나친 소비로 재물을 낭비하지는 않았습니까?
l 남을 속여 돈을 모은 적은 없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두신 것입니다.
따라서 재물은 마땅히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 (1티모 6.7)
재물의 노예가 되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게 됩니다.
재물은 필요한 것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임을 명심합시다.
(잠시 묵상)
3. 세번째는 미색입니다.
미색은 성적 쾌락에 대한 무질서한 탐욕입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정조는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혼인의 목적에 따라
자녀의 출산과 부부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l 고의로 유산시킨 적은 없습니까?
l 몸의 순결을 거스르는 언행을 하거나
음란한 책이나 영화를 호기심을 가지고 보거나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l 정당한 사이가 아닌 다른이와
몸의 순결을 더럽히지는 않았습니까?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욕정이 빚어낸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숭배, 매음, 원수 맺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 바 있지만 지금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들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칼라 5. 19-21)
오늘의 성문란에서 오는 무서운 질병도
하느님이 주시는 현세적 심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주신 목적에 맞도록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잠시 묵상)
4. 네번째는 탐도입니다.
탐도는 음식을 먹을 때 무질서하게 먹는 것을 말합니다.
식욕은 건강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지만
쾌락만을 생각하고 과식하여
그 본래 목적을 깨뜨리면 죄가 됩니다.
또한 술은 하느님이 주신 음료이기 때문에 마실 수도 있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마시는 것입니다.
l 구미에 맞는 음식에 지나치게 마음을 두고
과식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l 지나친 과음으로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았습니까?
l 과음으로 가족과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습니까?
l 술로 인해 가산을 탕진하지는 않았습니까?
먹고 마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먹고 마시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지적처럼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고
자기네 수치를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해서
세상 일에만 마음을 쓰는” (필립 3.19) 것은
분명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잠시 묵상)
5. 다섯번째는 질투입니다.
질투는 남이 잘 되는 것이 제 자존심의 손실인 양
근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다른 사람의 우수함, 행운, 성공에 대해 슬퍼하거나
불안을 느끼는 이웃 사랑에 대한 배반죄가 질투입니다.
l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한 적은 없습니까?
l 남이 잘못되기 바라고 잘 되는 것을
저주한 적은 없습니까?
우리는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이익을 도모하여” (1코린 10.24)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이 잘 되는 것을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면
더 인정 받고 사랑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잠시 묵상)
6. 여섯번째는 해태입니다.
해태는 자기가 해야 하는 일에 개으름을 부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귀한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 생활에 있어서 게으름을 부리며
신앙인의 본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l 자신의 근무태만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적은 없습니까?
l 부모로서의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자녀들을 고생시킨 적은 없습니까?
l 태만으로 일을 하지 않고 변명을 한 적은 없습니까?
l 자신의 게으름으로 신앙의 의무에 소홀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부지런하게 주님이 주신 업무를 성실히 잘 해 나갈 때
우리에게 공로가 되고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마태 25.21)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잠시 묵상)
7. 일곱번째는 분노입니다.
몹시 화를 내어 이성을 잃고 남을 저주하는
무질서한 행동을 분노라고 합니다.
이는 폭행과 복수 등을 유발하여
정의와 사랑을 침해하게 만듭니다.
l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화를 내는
나쁜 습관은 없습니까?
l 가족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어
마음의 상처를 준 적은 없습니까?
l 부하 직원에게 신경질적인 언사로
상처를 준 적은 없습니까?
주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에게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마태 5.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본받아
“모든 독설과 격정과 분노와 고함 소리와 욕설 따위는
온갖 악의와 더불어 내어버리십시오.” (에페 4.31)
(잠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