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는 초등학교 1학년생의 일기

2010. 3. 11. 오후 8:03:13

글자

2000년 7월 21일 금요일

 

내 어깨와 팔뚝은 지금 징그러운 모습으로 허물을 벗고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징그럽다고 놀려 댔는데 하기야 내가 봐도 정말 징그럽게 보이니 꾹 참을 수밖에...

며칠 동안 그렇게 따갑고 화끈거리더니 드디어 껍질이 벗겨지며 허물벗기를 시작했다.

매미가 허물을 벗듯, 뱀이 허물을 벗듯 사람인 내가 허물을 벗고 있다.

너덜너덜한 껍질 속엔 예쁜 살갗이 들어 있다. 참 신기하다.

나는 다른 사람이 허물을 벗는 모습도 본 적이 없지만 내가 허물을 벗기도 처음이다.

어떻게 하느님께선 사람도 허물을 벗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을까?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물을 벗을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선 지극한 사랑으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을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선 처음에 깨끗한 몸과 깨끗한 영혼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우리가 관리를 잘못해서 너무 더러워지면 다시 깨끗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 같다.

그리고 허물벗기는 꼭 아픔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못된 게 떨어져 나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아픔을 겪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야만 새살이 돋아난다.

영혼이 허물벗기는 참다운 통회와 고해성사를 통해 이루어질 것 같다.

다시 깨끗한 영혼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자신의 죄를 마음 아파하며 먼저 뉘우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지금 육체의 허물을 벗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 때는 영혼의 허물도 벗어야겠다.

정말 아프지만 꾹 참고...





2000년 8월 19일 토요일


어머니께서 호스피스 활동하러 가셔서 상우와 나만 있을 때 사건이 터졌다.

내가 한가롭게 똥을 싸고 물놀이를 하고 있을 때 상우가 "형님! 형님, 저 똥 쌀 거예요. 좀 나가 주세요"라며 화장실로 급하게 들어왔다.

할 수 없이 나는 하던 물놀이도 그만두고 쫓겨나야 했다.

나는 밖에 나와서 어머니께 전화로 빨리 오시라고 했는데 오지 않으셨다,

그 때 화장실에서 "형님, 똥 다 쌌어요"라는 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순간 눈꼽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힘없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엄마가 없는 동안 네가 상우의 보호자야'라는 어머니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 때 나는 강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상우! 엎드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상우는 엎드렸고 나는 똥 묻은 상우의 엉덩이를 화장지로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상우의 똥 묻은 엉덩이를 닦아 준 것이다.

내가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상우가 다른 때보다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어떤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그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그 소중한 죽음을 통해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상우와 나는 어머니가 오실 때까지 사이좋게 물놀이를 하며 놀았다.



2000년 10월 25일 수요일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팬티까지 홀랑 벗어 던지며 "엄마! 간밤에 사실은 옷에 실례했거든요"라고 쑥스럽게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 "왜? 어떻게 해서?"라고 물어 보셨다.

"왜냐고요? 사실은 간밤에 졸려서 도저히 화장실까지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꾹 참자'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다시 잠에 빠졌어요.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에 고추에서 물이 나오는 것 같았는데 나는 너무 졸려서 그냥 다시 잠에 빠져버렸어요"라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내가 오줌싸개가 되어 버렸다니...

옛날 같으면 머리에 키를 뒤집어쓰고 집집마다 소금을 얻으러 다녀야 했을 텐데 어머니께선 고맙게도 오줌 소동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으셨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오줌을 꾹 참았는데 왜 저절로 나와 버렸을까?

오줌통에 오줌이 가득 차서 저절로 흘러 넘친 것일까?

마치 컵 속에 물이 가득 차면 아무리 막아도 저절로 흘러 넘치듯이. 모든 것은 가득 차면 넘치기 마련이구나.

그렇다면 나에겐 무엇이 가득 차서 흘러 넘치고 있을까?


혹시 독가스? 방귀를 잘 뀌니까.

나에겐 평화가 가득 차서 흘러 넘쳤으면 좋겠다.


그 평화가 우리 교실로 흘러가 우리 반에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느님! 저에게 평화를 가득 채워 주세요. 아멘.



2000년 11월 5일 일요일


미사 중 강론시간에 낯선 수녀님께서 강론 대신 말씀하셨다.

마리아 수녀회 수녀님이셨는데 간절하게 도와 달라고 호소하셨다.

미혼모가 낳은 아기들이나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 결핵요양소에서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일, 그 밖에도 많은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잇는데 돈이 너무 많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미사가 끝나고 망설이지 않고 나는 선뜻 후원회에 가입했다.

한 달에 1,000원씩 후원금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단돈 1,000원도 내가 쓸 때는 쉽게 써버리는데 그런 불쌍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흐뭇했다.

상우는 구두쇠처럼 500원만 하겠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1,000원이라고 적어서 내버렸다.

어머니는 5,000원씩 후원비를 보내기로 하셨다.

예수님께선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후원금을 보내면 우리의 아기 예수님(버려진 아기들)들이 해맑은 웃음을 띠며 좋아하겠지?



2000년 11월 10일 금요일


금붕어 똘똘이가 죽어 있었다.

똘똘이는 왜 죽었을까? 죽어 가면서 나를 원망했겠지?

돌볼 줄도 모르면서 사왔다고. 아가미 한쪽이 떨어져 있었는데 숨쉬기가 불편해서 죽은 것이 아닐까?

입도 뻐끔거리지 않고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지 못하고 늘어져 있는 똘똘이를 보니 정말 가슴이 아팠다.

모든 생물은 태어난 이상 죽지 않는 것은 없다.

누가 먼저 죽어 갈지도 모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 마리의 금붕어 중에 똘똘이가 오늘 죽어 갈 줄 아무도 몰랐다.

죽음이란 준비할 새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예" 하고 갈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는 지금 어쩐지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2000년 11월 23일 목요일


새벽에 눈을 떠 보니 어항 속의 금붕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배를 위로 하고 물에 둥둥 떠 있었는데 눈동자를 보니 너무나 처량한 모습이었다.

이제 살아 있는 금붕어는 어항 속에단 한 마리뿐이다.

그 한 마리는 죽어 있는 금붕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그 정반대 쪽에서 몸을 움츠려 있는 것 같았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기보다는 차례차례 죽어가는 친구들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 같았다.

자기도 언제 죽어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싸여...


하느님께선 위령 성월인 11월에, 금붕어의 죽음을 통하여 내게 죽음을 묵상하도록 해 주셨다.

오늘 아침 죽은 금붕어의 시체가 있는 어항에다 살아 있는 금붕어를 위하여 금붕어 밥을 몇 알 떨어뜨렸는데 그 밥은 시체 옆으로 떨어졌다.

살아 있는 금붕어는 배가 고팠을 텐데 친구의 시체 옆에는 가지 않고 정반대 편에서만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우리 인간들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그 금붕어는 며칠 전에 내가 물을 길아 주다가 싱크대에서 실수하여 방바닥으로 떨어뜨렸는데 분명히 뇌진탕으로 죽었을 것이다.

가엾은 금붕어...

나는 이제부터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

잘 키울 자신이 없다.

한 마리 남은 금붕어는 밥과 함께 어항째 아빠 학교로 보내 버렸다. 금붕어 안녕!



2000년 11월 26일 일요일


내 뜻과는 상관 없이 하루 종일 성당에서 재미없게 보낸 하루였다.

미사 후에 레지오 행사인 연차 총 친목행사를 가졌는데 1년에 딱 한 번 있는 행사여서 아버지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까지 참석하셨다.

바늘 가는 데 실이 갈 수밖에 없어서 상우와 나도 어머니와 아버지를 따라 거기에 참석했다.

성당 지하실에 가득 찬 어른들이 팀별로 재롱잔치도 벌였지만 나는 지루하기만 했고 재미라곤 전혀 없었다.

성당 마당에 나가 봐도 상우네 또래 친구들은 여럿 있어서 상우는 신났지만 내 또래는 아무도 없었다.

형들이 있어서 나는 형들과 함께 딱지치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딱지를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잃기만 하더니 마침내는 마지막 한 장까지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딱지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보니 할 일이 없어졌다.

지하실에 내려가 어른들 틈에 끼어 구경도 해 봤지만 역시 재미없었다.

어머니를 찾아가 재미없다고 투정을 부릴 때는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재롱잔치는 엄마네 '평화의 모후'가 연속 4년째 대상을 받는 걸로 끝났다.

우리 가족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목이 간지럽고 기침이 나오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 때 지난 봄에 먹었던 귤 상자의 '은박봉지 월동 감귤'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 귤보다 훨씬 맛있는 귤이었다.

다른 귤들은 찬서리 눈보라가 무서워 다 따 버렸는데 은박봉지 안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낸 그 귤은 정말 맛이 있었다.

모진 고난을 이겨낸 자일수록 맛있어진다?

상품이 된다?

멋있어진다?

은박봉지 월동 감귤 덕분에 나는 이 일기를 끝까지 쓸 수 있었다.

오늘은 너무 힘들어 죽어도 일기를 쓸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나는 고통을 참으며 일기를 썼다.

맛있어지고 싶어서.

멋있어지고 싶어서.

상품이 되고 싶어서.





이 글은 제주 남광초등학교에 다니는 현건우 어린이가 초등학교 1학년때의 일기를 모아서 펴낸 책입니다.

지금은 제주 광양성당 복사 ,네시 탐사회 회장이며, 제주대학교 과학영재 교육원에 다니고 있는 어린이며

첫 영성체한 날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커서는 수도회 사제(신부)가 되는게 꿈이랍니다.


책은

바오로딸 출판사 "보물섬으로 날아온 뻐꾸기" 저자 "현건우"정가-8,000원 감동을 느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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