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5.06) - 부활 제3주일 토요일

2006. 5. 6. 오전 9:41:28

글자
2006년 5월 6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복음 요한 6,60-69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이 묵상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30분이네요. 그리고 창밖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 빗소리를 들으면서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또한 빗소리를 들으면서 마시는 커피는 그 어떤 때보다도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비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일까요?

사실 저는 요사이 비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비 좀 내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성지를 방문하시겠다는 순례객들이 많았거든요. 따라서 비가 오면 그분들이 힘들어질 테고, 그래서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자주 비추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왜 비 오는 것을 보면서 좋아할까요? 뻔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성지를 방문하시는 순례객들이 없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요사이 계속되는 작업으로 인해서 많이 피곤했었는데, 이렇게 비가 오니 바깥 작업도 할 수 없고 그래서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리는 비와 전에 내렸던 비가 다른 것일까요? 그런데 그 ‘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왜 이렇게 다를까요? 바로 그 순간의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좋은 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결코 비 자체의 속성 때문에 좋은 비, 나쁜 비로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가요? 비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비 나쁜 비로 구분하듯이, 애꿎은 남의 탓을 외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요?

오늘 복음을 보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나쁜 말씀을 하셨나요? 하느님을 공경하지 말라고 하셨나요? 부모에게 효도하지 말라고, 또한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니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라고 말씀하셨나요? 모두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나쁜 행동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을 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모두 요약하면 ‘사랑’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듣기가 거북한 것일까요? 바로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분명히 그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목격했었습니다. 그리고 주옥같은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실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들도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랑 좋지요. 그러나 사랑이 밥 먹여 주나요?”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천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오는 영원한 생명을 앞에 두고서, 나의 이익만을 먼저 생각하면서 그 소중한 것을 차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주님과 타협하고, 더 나아가 못난 자신을 탓하기 보다는 주님을 탓하면서 주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께 등을 돌리며 길을 떠나는 사람이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주님을 떠나지 맙시다.



난 가슴에 무엇을 품었을까?('좋은 글'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에
소중한 무엇인가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이는 슬픈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이는 서러운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어떤이는 아픈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이는 아름다운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기쁜일을 즐겨 떠올리며
반짝이는 좋은 일들을 되새기며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기쁨과 슬픔,만족과 불만 중
어느것을 마음에 품느냐에 따라
행복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입니다

맑고 푸른 하늘을 가슴에 품고 살면 됩니다.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품어도 되고
누군가의 맑은 눈동자 하나,
미소짓는 그리운 얼굴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품고 살면 됩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품고 살면
좋은 삶을 살게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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