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4.07) - 사순 제5주일 금요일

2006. 4. 7. 오전 11:10:07

글자
2006년 4월 7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
예레미야 20,10-13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복음 요한 10,31-42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기왕이면 아들이 태어나길 간절히 원했어요. 그래서 그는 신에게 이렇게 맹세까지 합니다.

“아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그의 소원대로 아내는 아들을 낳았고, 이 남자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까지 벌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났지요.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후, 이 부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 우연히 그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흉가처럼 보였습니다. 더구나 아버지와 아들은 보이지 않고, 아내만 병이 들어서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사람은 물었습니다.

“아니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이 여인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이 술에 취해서 사람을 해치고 어디론가 도망을 가버렸답니다. 그래서 남편이 대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랍니다. 아들놈이 웬수지요, 웬수…….”

사실 우리들은 한치 앞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만큼 나약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다짐과 맹세를 하고 있습니까? 지키지도 못할 약속과 맹세로 인해서 점점 더 거짓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는 우리들은 아니었을까요?

분명히 아기가 태어나기 전, “아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던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아들 때문에 감옥에 갇힌 뒤에도, 아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지금의 상황을 잠깐이나마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종종 헛된 맹세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맹세가 오히려 자신을 구속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 역시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배척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배척을 피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그들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했더라면, 사람들이 그런 배척 없이 당신을 더 열심히 따르도록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변함없이 소신껏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헛된 말과 행동은 절대 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에 반해서 얼마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의라 할지라도 기꺼이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끊임없는 헛된 맹세와 다짐으로 더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나는 어떤 길로 가고 있나요? 진리의 길인가요? 아니면 불의와 거짓의 길인가요? 그 진리의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며, 결국 부활로 이끌어 준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헛된 맹세와 다짐을 하지 맙시다.



한 번에 한 사람 (마더 데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댓글 1

  • 2006년 4월 7일 오후 11:45

    한번에 한사람씩......지금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빛안에서는..마주보고 웃을수 있을것이다..주님은 그런분이심을 잘알고 있기에..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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