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4.04) - 사순 제5주일 화요일

2006. 4. 4. 오전 7:57:34

글자
2006년 4월 4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민수기 21,4-9
그 무렵 4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복음 요한 8,21-30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동물 중에서 치타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달리는 속도가 지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 빠르다는 동물입니다. 글쎄 빨리 달릴 때의 속도가 시속 110Km 이상 된다고 하니,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얼마나 빠른 속도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빠른 치타의 사냥법은 아주 특이하다고 합니다.

치타는 수십 마리의 사슴 떼가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중에서 자기가 사냥할 목표물로 딱 한 마리만 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한 마리를 향해서 힘차게 달려갑니다. 자기들의 무리를 향해서 달려오는 치타를 본 사슴 떼들은 정신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겠지요. 하지만 치타는 자기가 목표물로 정한 그 한 마리만을 계속 따라간데요. 치타가 달려오는 것에 놀라서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슴들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타는 처음에 자신이 목표로 삼은 그 한 마리만을 끝까지 따라가서 결국은 잡고 만다고 합니다.

제가 치타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사실 그 놈이 그 놈처럼 보이겠지요. 따라서 달려가다가도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슴이 있다면, 힘들게 더 이상 뛰지 않고 편하게 그 사슴을 잡으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사슴도 잡고 또 저 사슴도 잡는, 다시 말해서 두 마리의 사슴을 잡는 방법도 떠올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슴은 단 한 가지만을, 그것도 자신이 목표로 세운 것만을 향해서 달려가고 결국은 그 목표를 채웁니다.

사실 우리들은 자신의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서 힘차게 달려는 치타의 모습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일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의 목표만을 생각했고, 그 목표를 모두 다 이루기 위해서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던 것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편하게 그 목표를 이루기를 얼마나 원했었나요?

예수님을 떠올려 봅니다. 오늘 복음에도 잘 나와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즉, 수난과 고통을 당하신 뒤에 십자가 위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지요.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세요. 자신의 죽음을 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아직도 젊은 나이인데, 또한 할 일도 그렇게 많은데, 더군다나 전지전능하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인간과 같은 나약한 모습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어 내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목표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아픔과 시련을 뒤로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 목표는 바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그 고통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또한 이것저것 모든 것을 얻으려는 욕심도 간직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얼마나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었던지요? 혹시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는 일만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을 떠올리면서 부끄러운 내 자신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네요.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합시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진우, '지하철 사랑의 편지' 중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가에 커다란 돌이 위험스럽게 놓여 있었습니다.
그 돌을 본 사람들은 욕을 하며 지나갔습니다.
"에이, 어떤 놈이..."
그러나 누구도 그 돌을 치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길을 가던 한 젊은이가 멈춰 서더니 끙끙거리며 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는 꼬박 한 시간이 걸려서야 그 돌을 치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돌 밑 구덩이에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보석 한 자루와 쪽지 한 장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당신에게 주는 상입니다.'

문제를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문제를 내가 본 것은 하늘이 내게 그것을 해결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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