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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9일 성탄 팔일 축제 내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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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요한 1서 2,3-1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자는 거짓말쟁이이고 진리를 저버리는 자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은 진실로 하느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하느님 안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고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옛 계명입니다.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줄곧 들어 온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사실은 새 계명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이미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계명이 참되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났고 또 그대들의 경험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빛 속에서 산다고 말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자입니다. 자기의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며 그는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으며 어둠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눈이 어둠에 가려져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복음 루가 2,22-35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예수의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것은 "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또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일러 주셨던 것이다.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아들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다.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는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을 듣고 감탄하였다.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동창 신부 모임이 있었습니다. 특히 한 동창 신부가 로마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함께 한 자리이기에 더욱 더 기쁨이 컸던 모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와 함께 저희들은 술도 오랜만에 함께 마시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지요. 저 역시 마시지 못하는 술을 열심히 마시면서 분위기에 동조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유익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요, 그래서 동창 신부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모임이 끝난 뒤, 저는 술을 마셨기에 동창 신부의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새벽 일찍 성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키우는 강아지들은 항상 현관문으로 저를 마중 나오는데, 한 마리의 강아지도 현관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더군다나 제 방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도둑이 들었구나. 혹시 내 강아지들에게 도둑이 무슨 이상한 짓을 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제 방에 살짝 들어가서 형광등을 켜는 순간, 저는 기절할 뻔 했습니다. 글쎄 제가 키우는 강아지 두 마리가 제가 잠자는 자리에서 곤히 자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방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말이지요.
저는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파리채를 들고 위협을 하면서(참고로, 저는 강아지가 잘못했을 때, 파리채로 때립니다) 방 안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도저히 못 키우겠다. 다른 곳에 보내야겠다.’
사실 동네 사람들에게 강아지들을 풀어 키운다고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못 키우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을 모두 치운 뒤에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고는 꼬리 치며 달려오는 강아지들을 보는 순간, 도저히 다른 집으로 강아지들을 보내지를 못하겠더군요.
‘내가 힘든 것 조금만 참자. 이렇게 예쁜 강아지들을 어떻게 보내?’
그런데 문득 하느님께서도 이렇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즉, 계속해서 못된 짓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을 콱~~’하는 마음이 안 드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들 역시 이런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욕심과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내게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다시금 기회를 줄 수 있는 넓은 사랑을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므온의 노래가 나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의롭고 경건한 삶이 아주 연약하게 보이는 갓난아이인 예수님을 보고서 곧바로 메시아이신 구세주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의롭고 경건한 삶을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이 사랑의 삶을 우리 역시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으며 또 참아야 합니다. 하지만 남이 힘든 것은 참아서는 안되고 또 그 힘듬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남이 힘든 것을 바라만 보지 않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부부싸움 10도 우리의 삶이 매양 전쟁터일 수는 없다. 원만한 태도, 전후좌우 살피는 균형감각이야말로 성공하는 사람의 필수 조건이다. 부부싸움을 해도 끝장을 보려는 듯이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것이 다반사인 요즘 음미할 만한 내용을 소개한다. 이름하여 부부싸움 10도다.
제1도. 상대방의 특기와 주먹의 강도를 미리 아는 것을 지(智)라 한다.
제2도. 비록 상대방이 아픈 표정을 짓는다 해도 이를 과감히 무시하는 것이라, 이를 강(强)이라 한다.
제3도. 때려서 피가 나는 곳은 두번 때리지 않는다. 이른 선(善)이라 한다.
제4도. 싸움 도중에도 두발이나 의상이 흩어지면 즉시 바로 잡는다. 이를 미(美)라 한다.
제5도. 옆집에서 살림을 부수며 싸우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를 인(仁)이라 한다.
제6도. 말리는 사람이 있어도 과감히 주먹을 날린다. 이를 용(勇)이라 한다.
제7도. 맞은 쪽보다는 때린 쪽에서 먼저 달래야 한다. 이를 예(禮)라 한다.
제8도. 살림을 부수더라도 값나가는 것은 아낄 줄 아는 것을 현(賢)이라 한다.
제9도. 주먹을 날리면서도 설마 나를 정통으로 때리진 않겠지 하는 마음을 신(信)이라 한다.
제10도. 싸움이 끝난 후 잔해처리와 맞은 곳을 함께 주물러주는것을 의(義)라 한다.
화가 난다고 다 집어던지고 상대방을 모욕하고 할 말 못할 말 다해서야 어찌 되겠는가. 부부 싸움할 때는 시원할지 몰라도 그 후유증은 오래 갈 것이다. 이 원리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소중하게 사용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