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12.29) -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2007. 12. 29. 오후 11:08:40

글자
2007년 12월 29일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제1독서 요한 1서 2,3-11

사랑하는 여러분,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 마태오 2,22-35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두 마리의 염소가 좁은 산길을 가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위로 오르려 하고 다른 한 마리는 내려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길이 너무 좁아서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자리가 있을 뿐이었지요. 그리고 길옆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고요. 결국 두 마리는 도중에서 만나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두 마리는 서로 바라보다가 꼿꼿이 서서 마치 한 판 싸움이라도 벌일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두 마리의 염소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싸울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두 마리의 염소 중의 한 마리가 길옆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한 마리만 무사히 그 길을 지나가던지, 아니면 싸우다가 두 마리 모두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래쪽에서 올라가던 염소가 길 위에 누었거든요. 아래로 내려가던 염소는 그 등을 딛고 내려갔고, 그제야 누운 염소는 일어나서 제 길로 올라갔습니다.

싸움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싸워서 힘들게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낮춤으로 인해 더 쉽게 쟁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힘없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그것도 가장 초라한 마구간의 구유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들이 만든 법칙인 정결례를 따르는 모습까지 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느님이 힘이 없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힘으로는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사랑’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낮추는 하느님의 사랑에 시메온 예언자는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제가 신학생 때 가장 존경했던 영성지도 신부님이 계십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신부님의 영성지도 방법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영성면담을 하는데, 신부님께서는 도무지 말씀을 안 하세요. 말씀 좀 하셔서 제가 올바른 영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으면 하는데, 신부님께서는 저 혼자만 말을 하게 합니다. 당시 저는 신부님의 이 모습을 직무유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지요. 사실 말로 지도하는 것처럼 쉬운 것이 없거든요.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올바르게 인도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말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들어만 주실 뿐이었던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말을 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데 있다는 것. 즉 사랑의 마음으로 끊임없이 낮추어 상대방을 받아들이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내 자신을 계속 낮추어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 주님의 사랑이 뿌리 내릴 수 있습니다.



말하기보다는 들어주세요.



비워야 채워지는삶(‘좋은 글’ 중에서)

예전엔 몰랐습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삶을 어제보다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려고 발버둥만 치는 삶이었습니다.

항상 내일을 보며 살았으니까요
오늘은 늘 욕심으로 채워 항상 욕구불만에
남보다 더 갖고 싶은 생각에 나보다 못가진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닫습니다.
가득 차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현실을..
이제 마음을 비웠습니다.
또 욕심이 찬다면 멀리 갖다가 버리겠습니다.

무엇이 필요 하다면 조금만 갖겠습니다.
그리고 나누겠습니다.
가식과 허영을 보며 웃음도 지어보이겠습니다.

내 안의 가득 찬 욕심을 버리니 세상이 넓어 보이고
내가 쥔 게 없으니 지킬 걱정도 없어 행복합니다.

예전에 헌 자전거를 두고 새 자전거를 사서
잃어버릴까 걱정하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마음하나 비우면 세상이 달라지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댓글 2

  • 2007년 12월 30일 오후 4:08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성서를 읽다보면 걸리는부분이 있습니다^^아마 내기 원하지만 잘 않되는부분이 아닐까요? 늘 주님안에서 살고 주님을 내안에 모시고 산다면 어두움이 없을텐데, 나는 가끔씩,,내안의 나로인해 어두어지곤 합니다^^ 그 어둠이 더짦은 시간이 되도록 오늘도 나자신을 돌아보곤 합니다^^

  • 2007년 12월 30일 오후 7:46

    항상 자신이 남보다 덜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보다 조금더 가졌으면 하고 청하기도 한것이 새삼 부끄러워지네요.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은 것을 갔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감사할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감사한다는것 가진것이 너무 많다는것 너무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것이 얼마인지 보면서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
새벽을 열며(07.12.31) -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07.12.31조회 65새벽을 열며(07.12.30)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07.12.30조회 81새벽을 열며(07.12.29) -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2]07.12.29조회 72새벽을 열며(07.12.28) -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07.12.28조회 61새벽을 열며(07.12.27) -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07.12.27조회 62새벽을 열며(07.12.26) -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1]07.12.26조회 126새벽을 열며(07.12.25) - 예수 성탄 대축일07.12.26조회 122새벽을 열며(07.12.24) - 대림 제4주간 월요일07.12.24조회 69새벽을 열며(07.12.23) - 대림 제4주일 가해07.12.23조회 56새벽을 열며(07.12.21) - 대림 제3주간 금요일[1]07.12.21조회 106새벽을 열며(07.12.18) - 대림 제3주간 화요일[1]07.12.18조회 95새벽을 열며(07.12.17) - 대림 제3주간 월요일07.12.17조회 63새벽을 열며(07.12.15) - 대림 제2주간 토요일07.12.15조회 104새벽을 열며(07.12.14) -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07.12.14조회 69새벽을 열며(07.12.13) -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07.12.14조회 73새벽을 열며(07.12.12) - 대림 제2주간 수요일07.12.12조회 71새벽을 열며(07.12.11) - 대림 제2주간 화요일07.12.11조회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