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성음악 - 백남용 신부

2006. 3. 5. 오후 6:40:43

글자
  2005년 6월 25일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에서 개최된 한국 천주교회 전례위원회 주최 제 1차 전례음악봉사자 전국대회에서 주제 발표로 주신 백남용 신부님의 글 전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보는

전례와 성음악

 

백남용 신부/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 대학원장

 

 

서 론

 

  현재의 가톨릭 신자들 중 약 80%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세례를 받았다. 이런 현상은 지난 40여 년 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세대교체로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70년대부터 시작하여 80년대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두 차례 한국방문으로 야기된 선교열기와 입교열풍이 주원인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근저에는 민주화의 중심에서 한국교회가 주역을 했다는 우리나라 사정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교회 안에 새로운 생명력이 용트림하였다는 교회의 내적 에너지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이 교회의 내적 에너지는 무엇보다도 전례의 변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났으니, 지금까지 라틴어로 집전하던 알아들을 수 없는 전례를 우리말로 하면서 신앙이 신자들의 피부에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런 변화는 우리나라 교회에 순기능과 다소의 부작용도 가져왔다. 신자들이 성서를 읽기 시작하였고 전례의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변화되었다. 소품 성직자들에게 한정되었던 전례 봉사직은 평신도들에게 이관되어 요즈음 말하는 ‘전례 봉사자’들이 생겼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기능에 묻어서 부작용도 없을 수 없었다. 라틴어로 드리던 장엄미사(Missa solemnis)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서 주교 미사나 신학교 미사조차도 창미사(Missa cantata)가 고작이었다. 심지어 60년대 말에는 신자들의 성가 개창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성가대를 해체시킨 본당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우 전문 음악인들은 교회 안에 설 자리를 잃고 개신교회를 찾아갔으니 가톨릭 교회음악은 이때부터는 지리멸렬 상태였다. 박해 시대에도 천주가사라는 우리 토착화된 성가를 고안하여 불렀고 또 그레고리오 성가와 오르간 음악을 통해서 서양음악을 우리나라에 일찍 소개하기도 했던 한국 가톨릭 교회음악의 생명은 거의 소멸되었다. 현재도 우리나라 음악계의 주도권을 개신교회가 확보하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가대 운동은 다시 조금씩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지만 이미 전문가들을 잃은 채 비전문가들의 독무대였고, 90년대에는 비전공자 복음성가인들이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러니 당연히 전례음악에서도 복음성가들의 영역이 확대되며 앞으로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몰아가고 있다. 그러니 수만의 전문 음악인들이 이끌고 가는 개신교 음악과 몇 명의 비전문가들이 이끌고 가는 가톨릭 교회음악은 비교할 수 없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우스꽝스러운 일은 제법 많은 사례비를 받는 비전문인 지휘자가 무보수의 전문 오르가니스트에게 큰소리 지르며 성가대를 지휘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정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기현상들을 자각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우리는 사목자건 평신도건 간에 교회의 지침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에 관한 가르침 요지

 

  전례, 특히 미사(감사의 제사, Eucharistia)에서는 예수님의 구원사업이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미사의 집전자로서 당신 살과 피를 우리 구원을 위하여 내어주시는 것이다. 전례를 거행할 때 교회 밖의 사람들은 교회가 구원을 나누어주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신자들은 한 공동체로서의 유대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전례헌장 2항) 따라서 전례를 다른 신심행사와 같은 단순한 신자들의 집회 정도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전례가 완전한 효과를 거두기 위하여 성직자는 다만 유효하고 가합한 집전을 위한 법규를 준수할 뿐 아니라, 신자들이 잘 이해하고 능동적이며 효과적으로 전례에 참여케 하도록 유의하여야 한다.(11항) 이 ‘능동적 참여’와 ‘모국어 사용’이야 말로 전례헌장에서 양대(兩大) 표제어라 할 수 있다. 이는 불과 60년 전인 교황 비오 10세의 자의교서(Motu proprio 1903)에까지 교회의 가르침에서 강조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전례 거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공의회는 ‘성경’을 꼽았다. 그 이유는 봉독되고 강론에서 설명되는 글과 노래로 불리어지는 시편들이 성경에서 취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부르는 전례성가들이 그날 전례문과 전례에 사용되는 성서구절에 음악을 입힌 것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복사, 봉독자, 해설자, 성가대원들을 전례적 직무수행자로 지정하여 평신도의 신분으로도 전례의 한 몫을 담당하게 하였다.

  공의회는 이런 전례 정신 아래서 전례음악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하여 전례헌장의 제6장(112항-121항)을 온전히 성음악에 관한 가르침으로 할애하였다. 그리고 성음악 유산의 보존과 육성문제, 성가대 육성문제, 그레고리오 성가문제, 토착화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이런 포괄적인 가르침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겨 예부성성에 위임하여 그 시행세칙을 마련하게 하였다. 이 시행세칙을 ‘전례에서의 성음악에 관한 훈령’이라고 하며 서론과 9장(章) 69항(項)에 걸쳐 매우 자세하게 성음악의 현실과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또 40여 년이 지나서 이 훈령의 현실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래도 아직 유효하며, 모든 성음악 봉사자들이 연구하고 숙지해야 한다.

 

 

2. 훈령에 의한 성음악의 정의

 

  훈령에서는 역대 교회의 가르침에 비교해 볼 때 특이하게도 성음악에 관한 정의(定意)를 내리고 있다. 서론 4항을 보면

 

  1) 성음악이란 하느님께 예배를 올리는 식전을 위해서 작곡되고 신성과 우량성을 지닌 양식의 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2) 교회음악은 아래와 같이 이해되고 총괄된다. 즉 그레고리오 성가, 여러 가지 종류의 고전 및 현대의 신앙적 다음곡(多音曲)들, 파이프 오르간과 전례 안에 합법적으로 허용된 그 밖의 악기들을 위한 교회음악곡, 그리고 또한 신앙적 대중노래 즉 전례적이며 교회적인 대중노래 등이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1)은 전례를 위한 음악에 한하여 성음악이라고 하고 기타 신심행사를 위한 음악과는 구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 무슨 노래든지 신앙적 내용이 조금이라도 담겨져 있으면 미사 중에 부르는 시도들이 남발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3. 훈령에 의한 성음악에 관한 지침 요약

 

1) 백성들의 능동적 참여

  위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전례에 있어서의 백성들의 능동적인 참여는 공의회의 전례 분야에서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래서 전례음악도 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성음악의 종류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백성들의 능력도 고려해야 하며(9항), 그날의 장엄성과 모임의 장엄성에 의하여 집전의 형태 및 참여의 계단도 바꾸거나 조절할 수 있다(10항)고 했다. 또 백성의 노래 참여가 전혀 제외당한 채 미사의 고유기도문과 통상기도문 전체를 성가대에게 일임하는 것을 금했다.(16항 3)

 

2) 성가대의 직무와 위치

  성가대나 악대는 이제는 전례적 직무를 부여받는다. 따라서 주교좌성당이나 큰 성당과 신학교 혹은 수도원 성당에서 최선을 다하여 합창단이나 악대를 육성토록 권유하고, 작은 성당에서도 작은 성가대를 갖기를 권유하고 있다.(19항) 또 오랜 역사적 합창단들을 보호 육성하되, 신자들이 쉽게 노래할 수 있는 부분에 참여하는 배려를 하도록 권고한다.(20항) 아주 작은 공동체에서는 몇 명의 가수라도 두어 백성들의 노래를 이끌어가기를 권한다.(21항) 때때로 성가대가 ‘미사곡’이라고 불리는 다음곡(多音曲)을 부를 경우 악대나 그 밖의 반주를 동반해서 부를 수도 있다. 하여튼 백성이 노래참여에서 온전히 배제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더라도 신경(Credo)은 신자 전체가 하거나 적절한 참여를 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성가대의 위치는 전례적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나야 하니, 성가대도 신자모임의 한 부분이면서 특수한 임무를 행하고 있음이 뚜렷해야 한다. 그리고 전례적 직무수행이 용이한 곳이어야 하며, 완전한 미사참여가 편리해야 한다. 그러나 성가대가 여성들로만 구성되는 경우엔 지성소 밖에 배치한다.(23항)

 

3) 침묵의 중요성

  전례 중에 끝없이 기도나 성가의 소리가 이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아주 합당한 때에는 거룩한 침묵도 지켜야 한다. 침묵은 오히려 집전 사제와의 내적 일치를 밀접하게 하기도 한다.(17항) 특히 어린이 미사나 중고등부 미사에서도 이 침묵은 교육되어야 할 것이다.

 

4) 모국어 사용에 따른 라틴어 미사와 그레고리오 성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따른 전례에 있어서의 충격적 변화라면 누구나 라틴어 독점 전례에서 각 나라 모국어 전례로의 허용을 꼽는다. 그러나 라틴어의 완전 추방은 원치 않아서, 미사 통상문 가운데서 일부분은 신자들이 라틴어로 낭송 또는 노래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서는 라틴어 미사를 부분적으로 존속시키기를 바란다. 이에 따라서 라틴어 미사에서 그레고리오 성가에 우선권을 부여했다.

  가끔씩 우리나라에서 성가대원들 간에 논쟁이 되고 있는 ‘라틴어 가사로 작곡된 곡을 라틴어 가사로 노래하는 문제’에 대하여도 공의회는 무방하게 보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언어의 특수성 때문이 문제가 될 뿐이다.(51항)

  공의회는 새로 열리는 모국어 가사의 성음악 세계에도 관심이 깊었다. 그래서 라틴어 전례문이나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함에 있어서 ‘성가에 적절하게 번역할 것’(54항)을 주문하였고, 지금까지 사용하던 라틴 전례의 선율들과 모국어 가사와의 융합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할 것을 희망했다.(56항) 그리고 이런 모든 시도들은 관할 지방 주교단의 인준 하에 사용하도록 조절권을 위임하였다. 그러니까 각 개인들의 무분별한 시도는 조심하여야 하겠다.(57항)


맺음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근대의 교회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 외적인 변화는 무엇보다도 미사전례에서 느낄 수 있다. 이 전례에서의 변화는 당연히 전례음악(성음악) 분야에서도 따라야 했다. 그래서 성음악 훈령이 반포되었다. 이 훈령에서 대단히 세세한 부분까지 지침을 주었으나 우리나라의 성음악 봉사자들은 이를 접할 기회가 부족하였고, 따라서 아직도 성음악의 정의에 대하여조차 설왕설래하고 있다. 이 훈령을 잘 배우고 또 훈령의 정신에 따라 실천함은 오늘날의 성음악 봉사자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요, 이를 통해서 성음악 봉사자들이 전례적 직무수행에 성실하게 한 몫을 차지하는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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