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평의회의 성격
서 론
교회의 쇄신과 현대화를 모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세계에 적합한 사목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기존 기구들의 활성화와 아울러 몇 가지 새로운 제도와 기구들을 설립하였다.
더욱이 새 교회법전은 과거와는 달리 중앙집권화를 지양하고 지역교회를 활성화하며 지방분권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 아래 새로 설립된 기구들로 세계 주교대의원회의, 각 지방교회의 주교회의, 교구의 사제평의회, 그리고 본당의 사목위원회 등을 들 수 있다.
특별히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모든 교구에 설립하도록 되어 있는, 사제평의회는 한 지역교회를 맡은 교구장 주교와 함께 하나의 사제단을 이루며, 교구행정에 있어 주교의 유일한 원로원이 되고, 주교와 사제간의 긴밀한 사랑의 대화를 이룰 수 있는 대화의 조직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제평의회의 성격과 의의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그 기원을 이루는 초기교회의 옛 사제단과 그 이후 역사적으로 발전된 주교좌참사회와 교구참사회를 간단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본 론
1. 사제 원로원의 발전
1) 초기교회의 옛 사제단
옛 사제단은 그 개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미 사도시대에도 있었다. 초기교회의 장로들은 현재의 주교, 사제, 평신도의 성격을 모두 포함하는 듯 하지만, 사도들이 그들 교회 공동체에 이러한 장로를 두었음은 확실하다. 이들은 한 곳에 머물며 그곳 공동체를 다스리는 데 사도들을 돕고, 복음전파와 가르침에 있어서 사도들의 직무를 계승하고 있었다.
신약시대에 이미 이들 장로들은 사실상 예루살렘교회를 다스리고 판단하며 입법해 왔다고 보인다. 즉 예루살렘 공동체는 처음에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12사도에 의해 다스려졌고, 그 후에는 사도들과 장로들에 의해, 더 뒤에는 야고보 사도와 그의 장로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그러면서 이들은 차차 으뜸을 중심으로 하나의 단체를 이루었으며, 특별히 지역공동체에서 그들의 전체성과 합치성을 성찬전례에서 잘 드러내었다.
신약성서 시대 이후 차차 성직계가 오늘날의 "주교-사제-부제"로 정착되어 갔다. 이 시대 초기에는 사제단의 단체성이 상당히 부각되었으나, 후에 디치우스의 박해로 인해 사제들이 주교좌를 떠나 개별적으로 미사성제를 제헌하고 생활하게 됨으로써 주교와 사제단이 공동집전하는 전체 공동체의 미사성제가 한 때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 후 교계가 정착되어 가고, 특히 종교자유 이후에 그리스도교의 급속한 확산은 사제단의 단체성을 다시금 무너뜨렸고, 사제 각자가 이행하는 직무도 분할되었다.
...... 나머지 전문은 첨부 파일에 있습니다.
<신학교 때 종합시험 앞두고 준비한 자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