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설립과 의의
서 론
교회의 쇄신과 현대화를 모토로 내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과거와는 달리 교회의 중앙집권화를 지양하고 지역교회를 활성화하며 "지방분권화"를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각 지방 교회의 중심이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여야 하는 주교회의의 기능과 역할을 검토하여 활성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비록 교회내에서 설립된 역사는 길지 않지만 현대세계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주교회의의 설립과 그 의의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깊다 하겠다.
본 론
1. 주교회의의 설립
1) 설립배경
* 각 교구는 비록 각기 고유한 환경과 독립성을 갖고 있지만 지리적, 문화적으로 동일한 지역에 있는 일정한 곳에서는 가끔 유사한 영적 문제들이 제시되어 마땅히 공동 사목활동으로 대처하여야만 효과적인 해결을 이룰 수 있는 일들이 있다(교회법전 제431조 1항 참조).
이러한 연합적인 사목활동을 이행하는 것이 지역공의회이다. 즉 해당 지역의 하느님의 백성의 신앙을 증진시키고 공동 사목활동을 조화있게 이행하여 풍습을 개혁하고 규율의 일치를 이루어 보존하며, 이들을 보장할 수 있도록 준수하여야 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지역공의회의 특별임무이다.
그러나 지역공의회는 '규율과 입법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고, 또 '드물게 열린다는 점' 때문에 급변하는 현대세계의 필요성에 대응하기에 충분하지가 못하다.
* 그래서 교회는 이미 과거에도 주교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지리적으로 일정한 지역의 주교들이 공동의 문제에 있어서 협력하였던 점을 중시하여 현대에 보다 적합한 조직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즉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비오 베네딕도 법전 제292조를 확대 개편하여 법적 인격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 성청의 승인으로 탄생되었으며 '국가 주교회의'라는 이름으로 제시되었다.
2) 역사적 발전
* 역사적으로 주교들의 이러한 정기적인 모임은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 블란서 대주교들은 1561-1788년까지 정규적인 모임을 가졌으며 교회와 국가의 관계, 교회 규율과 주교들과 사도좌와의 관계 등을 다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은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것이었다.
- 비정규적이기는 하지만 이와 흡사한 모임이 독일과 북이탈리아에도 있었다.
* 그러나 본격적인 의미의 지역 주교회의의 성격을 띤 모임은 19세기부터 성좌의 권유와 승인하에 여러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 벨기에 주교들은 1830년 국가가 독립한 시기부터 정규적인 모임을 시작하였으며, 1842년 특별한 규율을 정하였다.
- 독일은 1848년 뷰르츠부르크에서 의미있는 회합을 가졌으며, 1867년 풀다에서 정규회기를 시작하였다.
- 오스트리아 주교들은 정부 주도로 1849-1856년까지 정규적인 모임을 가졌다. 성좌는 정부의 역할을 반대하였으나 그 뒤 레오 13세 교황 때 오스트리아 주교들의 모임을 다시 갖도록 종용하였다.
- 미국 교회는 1884년 발티모아 전국 공의회 후 대주교들의 모임이 정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 1917년 비오 베네딕도 법전이 반포되었으며 제292조에서 이러한 주교들의 모임을 한 관구내의 모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 전세계 국가의 대략 반수는 한 관구로 이루어져 국가 주교회의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나, 그외의 지역에서는 관구의 범위를 뛰어넘는 주교들의 모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 그러므로 일부 지역이 아니라 전국적인 본의미의 국가 주교회의의 새로운 형태의 발전은 제1차 세계대전과 비오 베네딕도 법전 반포 후에 찾아볼 수 있다.
- 미국 교회는 제1차 세계대전중 "전국 가톨릭 전시위원회"(National Catholic War Council)를 구성하였다. 전후 1919년 전국주교들이 모임을 갖고 그 명칭을 "전국 가톨릭 사회복지위원회"(National Catholic Welfare Council)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성청은 교회의 중앙집권화를 해친다는 이유로 해체를 결정하였다. 그래서 1923년 다시 "전국 가톨릭 구제회"(National Catholic Welfare Confernece)란 명칭으로 교회법적 단체가 아닌 협의회의 형식으로 재건되었다.
- 블란서는 1919년 추기경들과 대주교들의 정규적인 회합을 다시 가졌고, 벨기에와 독일 주교들도 전후에 정규적인 모임을 계속하였다.
*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교회는 각 교구들간의 협조가 이루어져야 할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었으며, 1947년 스페인에서는 관구주교회의가 정규적인 모임을 갖게 되었다.
더욱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여러나라 주교들로 하여금 개회 첫 주간에 그들의 모임을 구성토록 하였다. 또 주교들은 공의회에서 시작된 일들을 계속하기 위한 실천적인 기구로 이러한 협조기구의 형태를 받아들였다.
...... 나머지 전문은 첨부 파일에 있습니다.
<신학교 때 종합시험을 앞두고 준비한 자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