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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
The Adoration of the Trinity - DURER, Albrecht 1511.Oil on lindenwood,
삼위일체 三位一體 라틴어 Trinitas 영어 Trinity 삼위일체는 하나의 실체(實體) 안에 세 위격(位格)으로서
하느님의 육화(肉化)와 은총(恩寵)과 함께 내재적 삼위일체(內在的 三位一體, Trinitas immanens)와 내재적 삼위일체는 구체적 인간 역사와의 관계를 고려치 않고 구세경륜적 삼위일체는 인간 역사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의 실재를 지칭한다.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이 삼위일체임을 제시하기 위해서 성서로부터 출발한다. 성서는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계시사(啓示史) 안에서 이러한 구세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와 별개의 실재가 아니라,
삼위일체는 있을 수 있고 생각될 수 있는 지복(至福)의 그리스도인들이 삼위일체의 신비성을 깨닫지 못한 채 삼위일체 교리를 대할 때,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며, 사변적 삼위일체 교리가 신자들로 하여금 이 신비에 대한 오늘날에는 삼위일체 신비에 대해 사변적 고찰을 시도하는 전통적 입장과 대조적으로 역사(歷史)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이 신비를 구원의 신비로 제시하려는 그래서 전통적 삼위일체론과 현대 신학의
![]() ①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계발되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심화된 이른바 ’심리학적 삼위일체론’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라는 그는 모상이 원형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그는 하느님 본질의 단일성과 세 위격들의 구별성을 이해하는데 그래서 기억(mens), 인식(notitia), 사랑(amor)이 그는 기억하고 인식하고 사랑하는 영혼의 유비속에서 그래서 하느님의 기억이 성부에, 인식이 성자에,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 실제로 구별되면서 하나의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아우구스티노를 따라 인간 정신생활의 그는 하느님의 발출(發出, processus)의 성격을 이 발출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의 두 기능, 인식(認識, cognitio)과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 안에서 말씀[知性]과 사랑[愛志]의 그는 하느님의 발출의 성격을 지성과 의지의 성취양식을 그는 지성의 발출이 유사성(類似性, similitudo)의 근거에 출산자는 자신과 유사한 것을 출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지의 발출은 유사성의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러므로 하느님에게 있어서 말씀을 산출하는 지성작용은 하느님에게서의 의지작용은 유사성의 출산행위가 아니라 이 심리학적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의 내적 신비를 구명하는데 기여하였다. 이 신학의 기본 통찰들은 학설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② 현대 신학적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의 내적 본질 구명에 역점을 두는 전통적 삼위일체론과는 달리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계시되는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의 여기서는 전통적 삼위일체론의 일방성이 지양되고, 내재적 삼위일체와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의 동일성이 강조되면서 인간과 조물 일반을 그래서 삼위일체론이 인간 역사로부터 분리된 신적 실재에 대한 사변적 이론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안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는 하느님의 역사에 관한 실천적이고 전통적 삼위일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양자택일적 입장을 정립하고자 시도하는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와 위르겐 몰트만 J rgen Moltmann, 1926-)의 라너는 삼위일체를 구원신비로 이해하려는 취지로써 삼위일체론을 전개한다. 그는 구원이 하느님의 자기전달(Selbst-mitteilung Gottes)인 은총 안에서 성취되는데, 이 은총이 삼위일체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로서 당신을 자신 안에 폐쇄시키지 않고 외부로 건네준다. 그런데 이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외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수취자가 바로 정신과 육신의 합일체인 인간이다. 라너에 따르면,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참으로 인간에게 인간의 역사성에서 비롯하는 전 인류사는 하느님의 하느님이 자기전달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의 근원으로 작용하면, 하느님의 자기전달의 제공이 인간에 의해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기전달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육화를 ’ 그리고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초월적으로 작용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여기서 성령의 고유성이 사랑(Liebe)이라는 통찰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자기전달이 사랑으로 발생하는 한,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역전시킬 수 없이 나타나는 "한 분 하느님이 자기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가운데 그리고 당신 자신을 인간의 초월성을 주도하는 원리로 전달하는 한, 하느님의 이 자기전달은 역사 안에서 현현되는데 한 분 하느님의 자기 전달의 세 측면이 동일시되거나 그리고 말씀(진리)과 성령(사랑)의 두 파견은 인간과 세계를 향한 하느님의 자기전달 속에서 상호 긴밀한 관계를 하느님의 자기전달은 초월적으로 성령 안에서, 그런데 라너는 이 이중 파견이 바로 하느님 자체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느님 성부가 자기전달을 통해서 당신을 전달하고, 그리고 전달된 것이 ’전달자’로서의 하느님과 ’전달된 것’으로서의 바로 하느님의 ’본질’로 표시될 수 있다고 라너는 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내재적 삼위일체가 인간의 충만으로서 전달됨으로써 라너는 성자와 성령의 파견과 발출을 하느님의 (내재적이고 구세경륜적) 자기 전달의 발생으로
삼위일체를 정관적으로 사유하지 않고 그는 삼위일체를 궁지에 처한 조물들의 자유를 위한 십자가의 신학이 삼위일체론이며, 그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하느님 아버지 사이에서 아들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을 위하여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서 그의 아버지되심의 죽음을 고통 당한다는 것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아들의 버림받은 상태 속에서 그리고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진술된다. 이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희생의 성령으로서 버림받은
몰트만은 십자가 사건을 종말론적 삼위일체 사건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사랑의 현재적 성령 가운데서 사랑하는 그리고 몰트만은 하느님의 역사는 바로 그리스도의 인간의 모든 역사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어서 역사의 역사라고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죄와 죽음의 성격을 지니는 인간의 모든 역사가 그래서 인간고난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고통이 아닌 고통이 없고, 몰트만에게서 삼위일체가 고통에 찬 조물의 몰트만이 삼위일체론을 하느님과 조물 일반, 그리스도 신앙의 하느님 이해뿐만 아니라 신앙의 창조 이래의 역사과정은 성령 안에서 부활한 성자를 통하여 조물, 성령에 의해 이끌린 인간과 세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체적 경위는 신비로 머무르지만, 인간과 세계의 완성된 구원이 모든 것 안에서 -가톨릭 대사전에서-
♬Jesus Joy of Mans Desiring-Johann Sebastian Bach
The St.Philip’s(libera)Boys’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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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
2006. 11. 28. 오후 1: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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