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바라기와 합창대회

2009. 12. 27. 오전 8: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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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아랫글은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님께서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하는 '경향잡지' 2008년 6월호 [정민의 온고지신]에 쓰신 '주바라기와 합창대회' 라는 글입니다.
정민 교수님께서는『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한시미학산책』등 수많은 저서를 통해 한시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계시는 분이시며, 우리 광장동성당 교우이기도 하시지요.
 
 
[정민의 온고지신]
 
주바라기와 합창대회
 
2006년 봄, 미국 동부 프린스턴에 방문교수로 머물 때 일이다. 학기 말이 되었다. 중학교 다니던 아들의 음악발표회가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갔다. 발표는 합창과 기악으로 나눠 이뤄졌고, 미술 등 특별 활동에 대한 전시도 있었다.
예쁜 옷을 차려 입은 소녀들과 정장을 한 소년들이 무대 양편으로 갈라섰다. 키가 큰 선생님이 중앙에 자리를 잡고 섰다. 지휘봉이 힘차게 올라가면서 합창이 시작되었다. 몇 소절이 지나고부터 객석이 조금 동요하는 기색을 느꼈다. 무언지 모를 불협화음이 자꾸 돌출하다 사라졌다. 지휘봉의 포물선을 따라 소리가 일제히 잦아들 때도 그 목소리는 아랑곳 않고 큰소리를 내질렀고, 소녀들만의 코러스에도 끼어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쫓아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도 긴장해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맨 뒷줄 가장자리에서 세 번째 서있던 남학생이 그 불협화음의 주인공이었다. 합창의 조화는 그 학생의 돌출한 목소리 때문에 수시로 깨졌다가 고음에 다가서서야 다른 소리에 묻혀 겨우 무마되었고, 그렇게 몇 번을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가만 보니 그 남학생은 지체가 있는 장애우였다. 어찌나 열심히 부르는지 노래에 몰입해서 다른 것은 돌아볼 겨를이 없는 듯이 보였다. 사태 파악이 되고 나자 객석의 동요도 차츰 평온을 되찾았다.
그를 유심히 살피다가 그제서야 무대 커튼 바로 뒤에 서있던 인도 여성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남학생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코러스를 방해하고 나서면 손짓을 해서 그를 제지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다. 하지만 그 제지가 먹힐 리 없었다. 이내 그녀도 통제를 포기했다. 그리고는 하도 들어 아예 외어버린 그 노래를 그녀까지 합창단의 일원이 되어 열심히 부르는 것이 아닌가?
오래 동안 연습한 코러스가 한 사람 때문에 다 망쳐져 속상할 법 한데도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전혀 개의치 않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합창이 끝났다. 우렁찬 박수가 강당을 흔들었다. 발표회가 끝나고 나오는데 문제의 그 남학생이 꽃다발을 품에 안고 부모와 함께 걸어 나왔다. 사람들이 금세 알아보고 모두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는 의기양양해져서 만면에 가득 웃음을 띠었다. 부모도 아들이 대견한 지 자랑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땠을까?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 난리가 났을 텐데, 그 부모는 얼굴도 들지 못해 자리를 피하기 바빴을 텐데. 대뜸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그런 여유를 지닌 그들이 부러웠다. 이후로도 이 장면은 오래동안 내 기억 속에서 생생했다.
내가 나가는 광장동 성당의 주일날 9시 미사는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미사다. 제대 앞쪽 왼편의 대여섯 줄은 늘 주바라기들의 지정석이다. 주바라기는 지체가 있는 장애우 그룹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처음 이들이 미사에 합류했을 때 여러 번 소동이 있었다. 성가의 화음은 이들의 괴성으로 깨지기 일쑤였고, 미사 도중 막무가내로 소리 지르거나 우는 돌출행동으로 통제가 어려운 경우도 몇 차례 있었다. 학생마다 도우미 선생님들이 한분씩 끼어 앉아 보살펴도 난감한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처음에 영문을 몰라 상을 찌푸리던 일반 신자들도 모두 적응이 되어 이들과 함께 나누는 미사의 기쁨을 차츰 즐기게 되었다. 아름다운 공존이랄까? 헌금을 하러 나갈 때나 영성체 때 그들이 성가 부르는 모습을 눈여겨본다. 시력이 나빠 돗수 높은 안경을 껴서 부엉이 눈을 한 윤호는 온몸을 들썩이며 전심전력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 음정이 좀 안 맞기로소니 그게 대순가. 그 열정적인 찬송을 대하면 보는 이까지 절로 감사가 넘친다. 사람 좋은 웃음을 잃는 법 없는 선근이, 예쁜 안경을 낀 새침데기 보라는 신자들의 기도도 함께 참여해서 읽는다. 성가를 부르다 신이 나서 아예 두 손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뛰며 부르는 까불이도 있고, 제 인형을 누가 뺏어 갈까봐 선생님의 만류에도 꿋꿋하게 미사 내내 복도에 서있는 녀석도 있다.
하지만 강론 도중 신부님의 물음에 목청을 돋워 대답하는 건 주바라기들 뿐이다. 중고등학생들이 꿀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입도 뻥끗 하지 않을 때, 이들의 우렁찬 대답을 들으면 어느 쪽이 문제가 있는가 싶을 정도다. 이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통해 장애우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본당 신자들이 생각지 않게 얻은 큰 선물이다. 그들의 천진한 행동을 보면서 체면 따지고 생각만 많은, 그래서 이웃에 선뜻 손 내밀지 못하는 우리네 삶을 부끄러워하게 된 것은 보너스에 해당한다.
세상 일이 항상 그렇다. 베푼다고 생각한 쪽이 도리어 넘치게 받아 감사하게 된다. 사회 봉사를 다녀온 대학생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다. 전에는 전혀 몰랐는데, 낮은 자리, 어려운 형편에 놓인 이웃, 장애가 있어 돌봄이 필요한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지 온 몸으로 깨닫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들의 순수한 행동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이 더 부끄러워지더라는 것이다. 아직은 저만치서 지켜볼 뿐이지만 이런 나눔과 만남의 자리 때문에 매주 주일 미사가 은근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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