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착한 목자이다 (펌)

2009. 6. 27. 오전 10:35:50

글자
요한 복음  나는 착한 목자이다 (10,1-21)
 
 
구약성경에서 ‘목자’는 하느님을 지칭하는 중요한 용어이다(시편 23,1; 예레 31,10 참조). 그러나 ‘착한 목자’란 칭호는 신약성경에서 요한 복음 10장에만 나타난다. 많은 화가들이 착한 목자 상을 그렸으며, 부활 제4주일(착한 목자 주일)에 이 복음을 읽는다.

팔레스티나에서 양 떼는 공동 우리에서 밤을 지낸다. 목자들은 아침에 자기 양들을 제각각 불러내어 목초지로 인도한다. 산간벽촌에서는 돌담으로 양 우리를 만드는데, 문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담의 한 부분을 터놓아 입구를 대신한다. 밤이 되면 목자는 자기 몸으로 입구를 가로막고 자는 것이 상례였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를 따른다. 목자는 양들을 앞장서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은 울타리가 없는 목초지에 여기저기 흩어져 풀을 뜯는다. 양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기에, 유다 광야 같이 길이 분명치 않은 곳에서는 목자가 꼭 필요하다.

‘목자의 비유’는 비유 자체(1-6절)와 해설(7-18절), 그 가르침 때문에 일어난 유다인들의 분열(19-21절)로 구성되어 있다. 비유의 내용은 누가 참 목자이며 참 목자의 특징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7-10절은 “양들의 문”과 관련하여 구원과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역할을 제시하고, 11-18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왜 “착한 목자”인지 이유를 밝힌다.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양들의 문”과 “착한 목자”에 대해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께로 데려갈 때 자신을 문이라 하고, 우리를 돌보실 때 목자라 칭한다”고 설명했다.

1. 목자와 도둑(1-6절)
양 우리에 어떻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목자는 도둑(강도)과 대조된다. 우리에 들어가는 이유는 양을 돌보거나 해치기 위해서다. 목자는 강도와 달리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며,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반면에 낯선 사람이 우리에 들어가면 양들은 그를 피해 달아난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비유(paroimiva)’라고 일컬으면서 당시 사람들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전한다(6절). 양들은 목소리를 알아들으나 바리사이들은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눈먼 상태다.

요한 복음사가는 ‘비유’라는 말로 파라볼레(parabolh: 마태 13장; 마르 4장 참조) 대신 파로이미아(paroimiva: 10,6; 16,25.29)를 사용한다.2) paroimiva는 보통 ‘격언’을 뜻하며 살짝 돌려 말하는 ‘우의적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씀하시면서 도둑과 강도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또 눈을 뜨게 된 사람과 유다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2. 나는 양들의 문이다 (7-10절)
7-10절에서는 "도둑" (1.8.10절)과 대조되는 "문"이 언급된다. "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등이 모두 강도이며 도둑이라는 말인가? 도둑과 강도는 자신들을 구원의 중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아마 당시에는 거짓 예언자를 가리키거나, 요한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적대자인 바리사이와 유다 당국자일것이다. 유다의 지도자인 바리사이나 사제는 눈먼 이나 백성에게 목자가 되어야 했건만, 목자는 커녕 눈먼 이를 박해하고 회당에서 쫓아냈다 (9장 참조). 그들은 양들에게 강도와 같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도자들을 단호하게 심판하신다.
 
9절에는 "양들의 문"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양이 생명을 얻는데 필요한 것을 주시는 중재다다. 양은 문을 통하여 우리에 들어가고 나간다. 문을 통해 목자는 양에게 다가가고, 양은 우리에 드나든다. 여기에 요한 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문의 이중적 의미가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구원과 목초지를 제공하고, 양들에게 풍부한 생명을 준다(10절).  당신을 문이라고 표현한 것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 (14,6) 와 일맥상통한다. 예수님은 생명의 하는님나라에 들어가는 문이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라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구원하시는 예수님' 을 나타낸다. 양이 안전하게 생명에 접근하는 수단이다. 또 하나 그분께서는 풍부한 생명,  즉 충만에 이르는 생명을 주신다. 반대로 도둑은 생명을 주지않고,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한다. 양의 문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연상시킨다. 유다인들은 하늘에 문이 있는것으로 생각했다. (묵시 4,1 참조). 구원의 상징인 문은 시편 118의 메시아 해석과 관련된다: "이것이 주님의 문이니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네"(20절), 또 민수 27,17 과 미카 5,4 에서 목자는 구원론과 연관된다. 

댓글 2

  • 2009년 6월 27일 오후 12:34

    이번주일 특송 "주님은 나의 목자'에 맞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09년 6월 27일 오후 12:35

    개신교에서는 '착한 목자'를 '선한 목자'라고 부르는데...대학교 때 부르던 CCM 중에 '선한 목자 (Shepherd of Love)'라는 곡이 생각나서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습니다. 음악감상실에 올려볼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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