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금잔디 (3)
♥ 짝사랑 ♡
그 일이 있은 후 박양을 만나지 못했는데, 동석이 역시 왠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중에 가을철 농번기가 돌아와, 모두가 바쁘게 돌아갔는데.
우리집은 농사가 많은 편이라, 가을 걷이와 벼타작들이 항상 남들 보다 늦게 끝났다.
그렇게 가을 추수를 끝내고, 이른 아침에 하얀 서리가 내릴 즈음,
쌀쌀한 저녁 시간에 갑작스레 박양이 찾아 왔다.
오랜만이고 반가운 생각도 들어, 두터운 외투를 위에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고, 읍내에 갔다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들렸다고.
나는 그녀의 외딴집 방향으로 발길을 잡았다.
늦었는데 저녁을 안 먹었다 하는데다, 어차피 또 바래다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읍내에서 동네까지는 길이 넓고, 가로등이 있어서 밤에도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동네에서 외딴집은 오솔길이고 가로등도 없었다.
자주 다니면 모르지만, 어쩌다 가는 사람은 길이 안 보여 장애물에 다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난 잘 아는 양 터벅터벅 앞장서 가는데, 박양이 조금 쉬었다 가자고....
어디 앉아 쉴 곳도 마땅치 않은데다, 밤 공기가 차지 않은가?
그러나 박양이 할 이야기가 있는 듯하여, 근처 풀밭을 찾아 잠시 앉았다 가기로 했다.
깜깜한 밤!
달빛이 없어 별빛이 더욱 초롱초롱 한 밤....
어디선가 이름 모를 동물들의 소리가 간간히 들려 오는데.....
박양은 계속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춥다고.
난 외투를 벗어 걸치라고 주었다.
그러면 내가 추워서 안 되니까 옆에 그냥 기대게 해 달라고.....
나는 그때 박양에 대한 마음 정리가 끝나 있었다.
무엇보다 아직 나이가 어린 상태이고, 그래서 할일이 태산 같이 많은 입장인 것이다.
이제 겨우 고1 학생,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처지 아닌가?
난 읍내 친구들과 달라서, 틈틈이 집안 일을 많이 거들어야 했는데.
우리집엔 큰 황소 한마리가 있었고, 그 엄청난 하루 먹거리가 완전히 내 담당이었다.
그래서 매일 많은 풀을 뜯어다가 쇠죽을 끓여 주어야 했다.
그 일은 하교후 어둘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 한 눈을 팔면서, 어떻게 해야 할 일들을 다 할 수가 있겠는가?
박양은 분명 무지무지 예뻤지만, 난 지금 그런 일에 신경 쓸 입장이 아니다 생각했다.
게다가 아버지 꾸중도 걱정이었고, 집안 명예? 훼손 또한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만 보면, 거의 납작 엎드려 절 하다시피 하는 박양 아버지.
그러한 그 분을, 어떻게 아버지와 사돈관계로 맺어 드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박양과 결혼을 꼭 하겠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아야만 한다.
그러니까, 집과 완전히 결별해야 가능한 일.
그럴 수는 없으므로 머리 아프게 고민할 것 없이, 단호히 마음 정리를 끝내 버렸다.
그래서 오늘 박양을 만나고 부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지 그것만 생각했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자기 만나 준비가 안 된데다, 마땅히 좋은 말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어깨에 박양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 오는데.
생각하면 박양이 매우 불쌍하다 생각되어,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어께를 안아 주었다.
그 때 박양이 물었다.
앞으로 어떤 여자와 결혼할 것이냐고.
난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는 문제라, 벌써 그런 것이 왜 필요하느냐 며 되 물었다.
그랬더니,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 것 같다며 웃었다.
요즘도 남자들이 귀찮게 구느냐에, 동석이는 아니고 다른 몇명이 계속 찾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큰 도움이 되어 고맙다고.
그리고 나서, 알듯 모를 듯한 이상한 말을 하는데.....
자신은 열심히 살 것이며, 남편을 위해서 어떤 일이든 절대 몸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
가난은 정말 지긋지긋 하므로, 돈 많이 벌어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그런데 엄마가 몸이 안 좋아, 부모님과 동생들이 걱정이라고.....
난 적당히 위로 해 주며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왔다.
그리고 기말 시험등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다가 겨울방학을 맞았다.
그런데 방학하자 마자, 동석이 자살하려고 약을 먹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병원에선 다행히 생명은 지장 없다고 했다.
다른 친구에게 그동안 일을 물었더니, 언젠가 부터 계속 집에만 박혀 있었다고.
가을철에 잠시 들녘에서 보았을 뿐, 동네 사랑방에 발 끊은지는 오래 되었다고 했다.
그의 고민이 박양 문제인 줄 알지만, 친구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모두가 조금도 의심 없이, 박양은 내 애인이라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은 동네는 물론, 아랫동네와 옆동네까지 한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동석이는 이틀만에 퇴원을 했는데.
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생각하고 동석이를 찾아 갔다.
키가 큰데다 건장하던 동석이는, 거의 송장이나 다름없이 바싹 마른체 누워 있었다.
나는 네 목숨 보다 박양이 더 중요하냐고 따졌다.
녀석은 대뜸, 박양 없는 세상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리고 박양 말을 믿지 않았는데, 직접 확인한 이상 믿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은 계속 박양 말을 의심했다고 했다.
나의 여러가지 사정들이, 절대 박양과 맺어 질 수 없으므로 은근히 기다렸던 것이라고.
그러나 이제는 버려선 안 되고, 죽을 때까지 데리고 살아야 한다며 충고까지 했다.
이제 자신의 꿈은 모두 끝났으며.
그래서 일할 마음도, 밥먹고 싶은 마음도 없고, 오직 죽고만 싶다는 것이었다.
왜 계속 숨기고 있었는가 물음에, 박양의 말 모두가 거짓이라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그래도 미심쩍어서, 그 말이 진짜인지 보려고 소문낸 것 뿐이며.
소문은 모두 자신이 냈어도, 박양이 한 말에 보태서 한 것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뜻 밖의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지금은, 진구도 크게 실망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가 모른 것이 희한하다며, 그동안 진구도 박양을 열심히 쫓아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진구를 라이벌로 생각해 왔으며, 나는 애초부터 아니라고 생각했었다고.
진구 이야기는 난 그날 처음 들었다.
박양도 진구 이야기는 한번도 말한 일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나는 동석이 일도 모르고 있었으니, 응큼 대장 진구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알고 보니 친한 친구끼리, 웃기는 3파전을 벌이고 있었던 모양.
진구는 동석이 처럼 난리는 안 쳤지만, 대단한 관심과 열정을 가진 것은 확실했다.
이 상황에서 동석이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그런 다음 동석이는, 앞으로 난 어찌 할 예정이냐고 물었다.
난 반대로, 너 또 약을 먹을 것이냐고 물었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도저히 박양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힘 없이 말했다.
이미 내가 찍어 버렸다고 알고 있으면, 그만 잊어야 하는 게 아니냐 했더니.
그래서 희망도 없고 살 마음이 없다고, 그래서 죽으려 했는데 미치고 환장하겠다고...
진구 일은 정말 사실인가 거듭 확인하니 틀림 없다고 했다.
박양 집에 오는 것을 직접 여러번 보았다는 것이다.
진구도 내 친구였는데 고2 선배, 형편이 너무 어려워 간신히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 학교는 읍내 변두리에 있었고 몇 학급 안 되는 모양.
나는 인근 대도시의 이름 있는 학교, 진구와 비교는 애당초 안 되는 상황이다.
대도시 고교생이 한명 더 있고 3학년이지만, 학교는 우리 학교와 비교가 안 되었다.
나는 그 친구와 함께, 아침 저녁에만 운행하는 기차로 통학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학생으로선 내가 제일 대우?를 받고 있었다.
여하튼 진구는 명색이 고교생인데도, 너무 가난하여 모두에게 무시 당했다고 할까.
나는 한숨을 푹푹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석이의 일이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박양은 비록 초등이고 매우 가난했어도, 눈이 매우 높아 만만치가 않다
고교생인 진구까지 보이콧 했다면, 농사꾼인 동석이는 보나마나 물어 볼 것도 없다.
그런데도 박양 아니면 못 살겠다며, 죽으려 했고 약을 또 먹을지 모른다지 않는가....
생각할수록 이건 여간 큰 고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또 약을 먹게 해선 안 되는 일, 그럼 대체 어떤 방법이 있단 말인가?
이제는 내가 살이 빠지며, 바짝바짝 속이 타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댓글 1
여복인지,,여난인지,,하여튼 친구분들이 무척 부러웠겠습니다..ㅎㅎ
